16일 오후 3시11분 포항시 북구 포항역에 도착했다. 대합실 천장은 마치 그곳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듯 삼분의 일가량이 뜯겨져 나가 있었다. 분주한 발길의 코레일 관계자들이 사다리차를 동원해 천장을 수리하고 있었고 가이드라인 바깥에 선 시민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해외 지진 소식을 전할 때나보던 재앙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자 ‘이런게 지진 현장이구나’하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어서 다행이에요. 튼튼하게 지은 역 천장이 이렇게 나가떨어지다니 지진이 무섭긴 무섭네요.”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기자에게 현장 보수를 맡은 포항역 관계자가 다가와 설명했다. 그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천장재가 금방이라도 사람들을 덮칠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포항역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었다.
지진 피해를 입은 포항역사에서 직원들이 청소를 하고 업무를 보고 있다.
역무실과 매표소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마치 수해 현장같은 ‘물폭탄’의 흔적이 눈을 덮쳤다. 지진이 났을 때 천장 위 방화수가 터진 것 같다고 역무실 관계자들이 설명했다. 놀란 마음 상태를 간신히 다스리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의 역무원 정아무개씨는 “지진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더니 매표소와 사무실 천장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무실과 매표소 사무실 바닥에 발목 부근까지 물이 차고 컴퓨터와 장비들이 마비되어 아찔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역무원 박아무개씨도 “4~5명이 붙어도 안 움직이는 책상이 움직였고 천장이 조금씩 어긋났다. 진짜 건물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며 “아직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무원들은 대걸레를 들고 눅눅하게 젖은 매표소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한 탓에 매표업무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곧장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포항시 흥해읍 흥해 실내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땅의 흔들림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느끼셨어요? 제가 지금 몸을 흔들고 있나요?” 흥해 실내체육관으로 대피온 이아무개(66)씨가 갑자기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흔들리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누가 뒤에서 발만 굴러도 지진인가 싶어 심장이 두근거려요. 이런 사람들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이씨는 자신이 느끼는 ‘지진 멀미’를 설명하려 애썼다. 15일에 견줘 강도가 다소 덜한 여진을, 포항 주민들은 외부에서 찾아온 기자보다 더욱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미 땅의 흔들림이란 게 무엇인지 주민들은 온몸으로 익힌듯 했다.
운전 중 지진을 경험했다는 직장인 김아무개(34)씨도 울렁증을 호소했다.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1차선, 2차선을 좌우로 왔다 갔다 했어요. 처음에는 타이어 바람이 빠진 줄 알았는데 긴급문자를 보니 지진이었죠. 여진도 자꾸 겪다보니 아무런 일이 없을 때도 자꾸 속이 울렁거려요.”
오후 4시30분께 흥해체육관 근처의 흥해중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매케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찔끔하고 나왔다. 기분 나쁜 냄새의 정체는 포르말린이었다. 지진 때 과학실에 전시해둔 생물 표본이 지진으로 넘어져 깨지면서 포르말린이 쏟아져 나온 것이라 했다. 현장 사진을 찍으려 해봤지만 너무 눈이 매워 몇장 못찍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대신 119 특수구조단 생화학구조대 10여명의 포르말린 제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제거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흥해중학교 교사 김종대씨는 “그래도 지진 당시 청소시간이라 피해자가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진이 학교에 남긴 생채기는 외부인의 시선으로도 분명했다. 학교 건물 뒤쪽의 외벽은 4층 부근서부터 와르르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건물 내부 곳곳에는 크고 작게 균열이 가있었다. 학교를 떠받히는 중앙 기둥은 일부가 소실된 채 골조를 드러내고 있었다. 보이는 급수실, 화장실마다 수십 개의 타일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학교 행정실 관계자도 “나도 대피할 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학교에 들어와 내부 상태를 보고 정말 놀랐다”며 “아직도 충격으로 멍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누구보다 지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흥해중학교 학생 이민영(16)양은 “당시 학교 4층에 있었는데 천장에 우지직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선풍기가 흔들리고 떨어지려고 해서 바로 운동장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무섭다고 울면서 학교 밖으로 빠져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를 다니는 이경예(18)양은 지진을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초점이 안 맞는 안경을 낀 것처럼 어지러웠다. 침착 하려고 노력해도 막상 지진이 나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경주 지진 때도 경험해봤지만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다.” ‘규모 5.4’라는 추상적인 숫자가 담지 못하는 것은 이 ‘익숙해질 수 없는’ 두려움인 듯 보였다.
17일 포항시 북구 환영동의 한 가정집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있다.
17일 오전 10시 포항시 북구 환영동으로 달려갔다. 가장 지진피해가 심각한 동네로 알려져있는 곳이었다. 한눈에도 무너지기 직전의 3층 짜리 낡은 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빌라 안으로 들어가보니, 방안 곳곳 마루에는 깨진 벽돌들이 널부러져 아수라장이었다. 옥상은 천장이 뻥 뚫려 마치 포크레인으로 내려 찍어 철거하는 집처럼 느껴졌다. 계단 곳곳은 금이 갔고 창문틀도 뒤틀려 건물은 전체가 ‘지진의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또 여진이 올지 몰라 황급히 건물 밖을 빠져나왔다. 건물 주변에는 대여섯명의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흥해중학교 대피소를 내일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데 저희는 아예 집이 무너져서 갈 곳이 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아직 구청에서도 별 말이 없어요.”
이곳이 전쟁터도 아닌데 난데 없이 집이 무너져 내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포항시 곳곳의 현재 풍경이다. 다만, 포항 시민들은 질서를 지켜가며 가급적 평상시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편의점과 마트 어느 곳에서도 사재기는 없었다.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고 집이 내려앉아도, 삶은 계속 된다.
포항 글·사진/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