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1900~1932)
1932년 10월10일, 사형당하다
1920년대 말의 경제위기 탓일까. 일본은 빠르게 우경화했다. 1931년에 만주를 침공, 나치 독일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협. 이봉창의 거사는 이 무렵의 일이다. 일본 임금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날이 1932년 1월8일. 폭탄 힘이 약해 암살은 실패. 그래도 중국의 반응은 뜨거웠다.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서도 뜻있는 사건.
정치적 의미를 떠나 개인의 드라마로 보아도 인상 깊다. 이봉창은 개인적 성공을 바라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조선과 일본 땅에서 일본 사람처럼 출세할 꿈을 꾸었다. 한때 향락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에 시달리며 마음을 바꾸었다. 식민지 현실에 눈을 뜬 것이다.
“지금껏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몸을 바치겠다”는 그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본 임금의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이 일로 중국의 여론이 움직였다. 장제스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윤봉길이 같은 해 4월 거사를 벌인 것도 이봉창의 영향. 이봉창은 1932년 10월10일에, 윤봉길은 12월19일에 처형되었다. 해방 뒤 이봉창을 기리는 추모 사업을 맡은 것도 윤봉길의 유족이었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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