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황금연휴의 여운을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이어간다. 올해로 22번째인 부산국제영화제가 12일부터 21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을 포함한 5개 극장 32개 상영관에서 열린다. 집행위원장 사의 표명 등 ‘다이빙벨’ 사태로 촉발된 여진이 남아있지만, 영화인들의 참여가 지난해 보다 느는 등 정상화를 향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75개국에서 오는 300편 초청작 가운데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는 99편, 자국 이외에서 최초로 상영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는 31편이다. 일본, 인도, 필리핀 등 다양한 아시아 영화는 물론 비아시아권과 영미권 거장 감독들의 수작, 한국영화를 이끌 차세대 감독들의 신작들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 여성감독의 개·폐막작 이번 영화제는 여성감독의 작품으로 문을 열고 닫는다. 개막작은 <명왕성> <마돈나>등을 만들었던 신수원의 <유리정원>, 폐막작은 대만 실비아 창의 <상애상친>이다. 개·폐막작 모두 여성 감독이 선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리정원>은 숲속의 유리정원에서 인공혈액을 연구하다 아이템을 도둑맞은 과학도 재연이 현실 속 모순과 부딪히고 세상을 외면한 이후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미스터리 영화다. 투병생활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문근영이 재연역을 맡았다. <상애상친>은 임종을 맞이한 노인 곁에 있는 노인의 아내, 둘째 부인과 그의 딸 등 세 여성의 삶을 통해 부모와 자식 세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배우 출신의 실비아 창 감독은 <마음의 속삭임>(2015) 이후 2년 만에 부산을 찾는다.
■ 믿고 보는 프로그래머 추천작 300편의 개성 넘치는 영화들 속에서 어떤 작품부터 봐야할지 고민된다면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추천작이 도움이 될 듯하다. 아시아영화 담당인 김영우 프로그래머는 “80, 90년대 청춘들을 뒤흔들어놓았던 우위썬(오우삼) 감독이 미국을 거쳐 다시 원류로 돌아왔다”며 <맨헌트>를 추천한다. 2014년 세상을 떠난 일본 원로영화배우 다카쿠라 겐에 대한 헌사의 의미로 1976년 일본영화 <그대여, 분오의 강을 건너라>를 리메이크했다. 억울한 누명을 쓴 변호사가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는 홍콩 시절 우위썬 감독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쌍권총과 날아오르는 하얀 비둘기 등이 등장한다. 하지원, 장한위, 후쿠야마 마사하루 등 한·중·일 배우가 출연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월드영화 담당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레즈비언 로맨스와 도시 전설, 성장 영화와 고딕 호러가 결합된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라며 <굿 매너스>를 추천한다. 빈민가 출신 흑인 보모 클라라와 부유한 가정 출신의 백인 미혼모 아나, 늑대인간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이었던 <중노동>(2011) 등을 함께 작업한 줄리아나 호헤스, 마르코 두트라 감독의 작품이다.
이수원 프로그래머(월드영화 담당)의 추천작은 이번 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하는 프랑스 작품<새벽의 약속>(에릭 바르디에 감독)이다. 러시아 출신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모자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다. “여러 국가를 오가며 촬영한 원대한 스케일과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피에르 니네의 호흡이 뛰어난 작품”이다.
한국영화 담당인 남동철 프로그래머의 추천작은 “방은진 감독이 잘 아는 세계인 연극과 연기의 세계를 개성있게 그린” 신작 <메소드>다. 배우 재하와 스타 영우가 최고의 무대를 위해 서로에게 빠져들면서 연극과 현실의 경계에서 욕망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 세계 3대 영화제 입소문작 세계 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작품들도 준비됐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다운사이징>이다. 인구 과밀로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려 과학자들이 사람들을 손가락 크기로 축소한다는 독특한 소재를 다뤘다. 맷 데이먼이 순박한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다. 언어장애를 가진 연구소 청소부와 물고기 인간의 이야기로 황금사자장을 받은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도 기대작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더 스퀘어>(루벤 웨스틀룬드 감독)는 잘 나가는 미술관 큐레이터가 겪게 되는 기이한 일들을 다룬 블랙코미디다. 경쟁 부문 진출작인 <두 개의 사랑>(프랑수아 오종 감독), <원더스트럭>(토드 헤인즈 감독), 심사위원상을 받은 <러브리스>(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도 관객들을 기다린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관객상을 받은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대안가족과 성소수자 이슈를 담았다. <카모메 식당>(2006)을 만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작품으로 특유의 따뜻함이 돋보인다. 노래하는 트랜스젠더 이야기를 흡인력있게 표현해내 각본상을 받은 <판타스틱 우먼>(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도 놓치면 아까운 작품이다.
■ 한국영화계 이끌 신인 감독들 국내 신인 감독의 패기있는 신작을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하는 ‘한국영화의 오늘-비전’에서는 11편의 독립영화를 볼 수 있다. 지난해 관객상 수상작 <환절기>로 초청됐던 이동은 감독은 두 번째 연출작 <당신의 부탁>으로 다시 영화제를 찾는다. 2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효진(임수정)이 죽은 남편과 전 부인 사이에서 홀로 남겨진 열여섯 살 아들과 함께 하는 낯선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이외에도 이환 감독의 <박화영>, 이원영 감독의 <검은 여름>,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정가영 감독의 <밤치기> 등을 상영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