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2016년 9월30일 강제해산되고 난 뒤 청산업무를 맡은 사무처가 당시 야당 추천 위원과 유가족 때문에 특조위가 파행적으로 운영됐다는 내용을 부록으로 담은 청산백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한겨레21>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산백서’(이하 청산백서)는 2016년 12월께 작성됐다. 그해 9월30일 특조위가 강제해산된 뒤 해양수산부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조직 청산작업을 진행할 무렵이다. 청산백서는 ‘본문’과 ‘부록’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중 부록에 포함된 ‘운영보고서’는 당시 여당 추천위원들이 작성했다. 대표 집필자는 황전원 전 특조위 상임위원이었고,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조대환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석동현·차기환 변호사 등 당시 여당 추천위원이 공동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운영보고서엔 유가족과 특조위를 비난하는 내용이 가득 들어차 있다. “희생자 유가족은 특조위 출범단계부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러한 태도는 이후 특조위 활동기간 내내 지속되었다” “남탓으로 허송세월한 낭비 특조위” 등 특조위 활동을 비하하는 노골적인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
운영보고서는 특조위의 주된 문제로 ‘예산 낭비’와 ‘대통령의 숨겨진 7시간에 대한 조사’ 등을 꼽았다.
먼저 예산 낭비 부분을 보자. 2015년 2월 특조위 설립준비단은 정부에 198억원의 예산을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 추천위원들은 예산요구액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집단 퇴장한다. 예산이 너무 많고, 예산액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위원장의 독단적 진행이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더해 여당 추천위원들은 기획재정부,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등에 ‘예산과 조직을 줄여달라’는 취지의 협조 요청서까지 보냈다. 자신이 활동할 조직의 예산을 스스로 깎아달라고 요구한 셈이다. 이후 특조위는 예산 요구액을 159억원 까지 줄였지만 같은 해 8월 최종 확정된 금액은 애초 요구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9억원이었다. 깎인 예산은 주로 진상 조사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참사실태 조사·연구’ 항목은 3억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진상규명 실질조사’ 항목은 13억4천만원에서 4억3천만원으로 대폭 깎였다. 청문회 비용은 3억원에서 1억6천만원으로, ‘피해자 지원 대책’ 항목은 8억원에서 3억6천만원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해 운영보고서는 “여당 추천 위원들의 예산 절감을 위한 독자적 노력”이 있었으며 “상당한 혈세를 절약”했다고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두번째 대통령의 7시간 부분이다. 운영보고서는 ‘대통령 7시간’에 대한 행적을 조사하려는 특조위의 노력을 “정치적 행태의 절정”이라고 깎아내렸다. 여당 추천 위원들은 2015년 11월 특조위가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하려 하자, ‘즉각 사퇴도 불사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이들은 조사를 막은 이유에 대해 “특조위가 진상조사가 아니라 정치적 공세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며 “(7시간 조사는)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 공세에 다름 아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조사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의 사령탑이 되는 청와대가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 유사한 일이 다시 벌어졌을 때 대통령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 지 등을 정리하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세월호 특별법) 제1조에서는 특조위가 “세월호가 침몰함에 따른 참사의 발생원인·수습과정·후속조치 등의 사실관계와 책임소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수습의 컨트롤 타워였던 청와대, 특히 대통령이 언제 보고를 받았으며, 어떤 동선에 따라 움직이고, 수습 및 후속조치와 관련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당 추천위원들은 운영보고서에서 “대통령에 대한 조사라는 상징적 성과에 집착한 정치적 제스처”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운영보고서의 대표 집필을 맡은 황전원 전 특조위 상임위원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2016년 9월께 특조위에서 ‘중간점검보고서’ 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당 추천위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들 입장이 담긴 보고서를 기록으로 남겨 이후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성했다”고 말했다. 유가족에 대한 비난 부분과 관련해서는 “내가 사무실에 있다가 유가족에게 강제로 끌려 나온 적이 있다. 국기기관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국회에서 선출되어서 간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가족이) 그렇게 한 것에 대해 특조위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아다. 그런 부분 등이 아마 운영보고서에 들어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청산백서의 문제는 부록뿐만이 아니다. 우선 문서 자체가 부실하다. 2016년 9월 특조위는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는 161쪽 분량의 ‘중간점검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위원회 의결을 거쳐 발행했다. 그런데도 특조위가 강제해산 되고 난 뒤 사무처가 석달 뒤인 12월 별 명분 없이 청산백서를 낸 것이다. 분량은 130쪽으로 ‘중간점검보고서’보다 적다. 심지어 청산백서 집필진에 참여한 최아무개 박사와 전아무개 작가는 특조위 활동과 무관한 인물들이다. 또 당시 특조위 사무처에는 세월호 참사 조사 활동에 직접 참여한 조사관이 없었다. 애초부터 특조위 활동에 대한 제대로 된 정리를 할 수 없는 조건에서 무리하게 청산백서를 작성한 것이다.
이 청산백서의 집필은 연구용역 형태로 디자인 회사 ㅇ사에 맡겨졌다. 박주민 의원실에서 입수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산백서 작성에 관한 연구용역 계약체결 의뢰’ 문건을 보면 전체 계약액수는 4천만원이다. 하지만 ㅇ사는 연구용역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백서의 디자인과 출판만 맡았다. ㅇ사의 대표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우리 회사가 청산백서 내용 부분에 관여한 것은 하나도 없다. 디자인 회사가 세월호 관련 내용을 어떻게 쓰겠냐. 집필진도 특조위 쪽에서 섭외했다. 다만 집필료 등을 기술적으로 우리 회사를 통해 지급했다”고 말했다.
청산백서 작성의 전 과정을 주도한 이들은 해양수산부 등에서 특조위에 파견된 공무원들이었다. 특조위 사무처 사무처장으로 청산백서 작업을 총괄했던 이아무개 서기관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정부기관이 폐지가 되면 기록을 남긴다. 그런 필요성 때문에 청산백서를 작성했다. 여당 추천위원들의 ‘운영보고서’는 그쪽에서 연대서명을 한 뒤 기록에 남겨 달라고 공문을 보내와서 포함시켰다. (파견 공무원으로) 누구의 말이 옳다 그르라고 판단하기 어려워 청산백서의 부록으로 첨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똑같은 이유로 “특조위 ‘중간점검보고서’도 함께 부록으로 담았다”고 덧붙였다. 또 청산백서 작성에 “위로부터 별다른 지시는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서기관은 “지금 작성된 청산백서가 세월호 특별법의 절차에 따른 공식적인 청산백서가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는 “그렇긴 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무처가 임의로 청산백서를 만들면서 특조위의 공식 의결을 거쳐 작성된 ‘중간점검보고서’와 여당 추천위원들이 임의로 작성한 ‘운영보고서’가 전체 청산백서의 ‘부록’이라는 동급 위상을 갖게 됐다. 실제 청산백서 본문에는 “중간점검보고서에 실린 내용들 대부분은 여당 추천 위원들이 위원회 활동과정에서 겪었던 내용들과도 많이 다르고 사안별 입장도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여당 추천 위원들이 ‘운영보고서’ 형태로 자료를 작성했다. 이를 위원회 잔존사무를 처리중인 사무처에 제출하면서 정보의 공식기록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요청해 옴에 따라 동 내용을 이 백서의 부록으로 추가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서 운영보고서로 중간점검보고서의 내용을 덮은 물타기에 성공했다.
대한변호사협회장 추천으로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장을 맡았던 박종운 변호사는 “(청산백서가 만들어진 것은) 특조위가 종합보고서와 백서 작업을 할 시간도 없이 강제해산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중간점검보고서 밖에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청산 과정에서 마치 뭔가 쓸게 있었던 것처럼 위원장도 위원도 없는 상황에서 특조위 사무처가 임의로 이 같은 청산백서를 냈다. 심히 불쾌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2기 특조위가 만들어지면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이같은 청산백서가 만들어졌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산백서를 검토한 한 전직 특조위 조사관도 “중간점검보고서에 정부가 특조위를 방해한 내용 등이 담겨있어 이 내용을 공식적인 평가로 남기기 싫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4천만원이나 들여 절차에도 안 맞는 청산백서 작업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특조위 강제해산 과정에서 과거 정부를 대변했던 사람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청산백서 작업을 총괄했던 이 서기관은 지금 해수부 장관 비서실장으로 영전했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키고, 그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후세를 위한 기록에까지 손을 댄 해수부의 인사들이 여론의 관심에서 비껴서 있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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