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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역사다] 목포형무소 학살’ 증언한 4·3 생존자

등록 2017-09-13 21:05수정 2017-09-13 21:10

김두황 (1926~)
1949년 9월14일, 목포형무소 수감자의 집단 탈주
4·3도민연대 제공
4·3도민연대 제공
“남로당인지 북로당인지 알지도 못한다. 남로당이란 말도 들어본 적 없다. 가입하지 않았다고 하면 죽일 것 같아서 허위 자백했다.” 4·3항쟁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제주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잡아가던 시절. 1948년 12월, 김두황도 잡혀가 고문을 당했다. 재판도 없이 뭍으로 실려 가 목포형무소에 갇혔다.

형무소는 터질 듯 붐볐다. 수백명이 들어가는 목포형무소에는 1400명이 갇혀 있었다. 견디다 못한 재소자 500여명이 감옥을 부수고 탈주한 날이 1949년 9월14일. “첫째 원인은 죄수들에게 대우를 잘못한 점이다. 잘 때도 누울 처지가 아니었다. 기왕 죽을 바에는 어떠한 일이든 하자고 해서 이런 일을 한 것 같다.” 당시 법무부 장관도 인정한 사실.

일러스트 오금택
일러스트 오금택

탈주자 대부분은 사살당했다. 남아 있던 사람 상당수도 훗날 감옥에서 죽임을 당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권이 광주·전주·목포형무소에서 수감자들을 학살한 것이다. 김두황은 제주에 돌아왔다. 탈주에 가담하지 않았고 전쟁 직전에 출소했기 때문. 살아서 당시의 일을 2006년에 증언하였다. “마지막 소원은 명예회복뿐.”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 4·3 사건에 대해 밝혀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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