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식 (1871~1910)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 소식에 자결하다
금산에서 군수를 지냈다. 한일병합 소식을 듣고 객사에서 자결하려 하는데 사람들이 통곡하며 뜯어말렸다. 역정을 내며 빠져나온 홍범식, 쫓아오는 사람 눈에 모래를 뿌리고 홀로 소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1910년 8월29일은 나라를 잃은 날. 이 무렵 목숨을 끊은 사람이 여럿이다.
아버지 홍승목은 ‘친일파’였다.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였으나 국권을 팔아넘기는 일에 일찍부터 열심이었다. 아들 홍범식이 죽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을까? 천만의 말씀, 한일병합 이후에도 잘 먹고 잘 살았다. 훈장을 받고 감투를 쓰고(스무명밖에 안 뽑는 중추원 찬의를 지냈다) 재산을 불렸다.
홍범식의 아들은 홍명희. “내 아들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 아버지의 유서에 따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3년에는 해외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에서 활동했고 1919년에는 고향의 3·1운동을 이끌었다. 소설 <임꺽정>을 쓴 것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단다.
최근 홍승목의 땅 51만㎡가 국고에 환수. 재판부는 “아들 홍범식과 손자 홍명희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만으로 홍승목을 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홍승목, 홍범식, 홍명희. 삼대의 엇갈린 선택을 보며 생각이 많다.
김태권 만화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일러스트 오금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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