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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알림] 대통령 부인 존칭을 ‘씨’에서 ‘여사’로 바꿉니다

등록 2017-08-25 07:53수정 2017-08-25 10:58

한겨레가 독자에게

한겨레신문사는 대통령 부인 이름 뒤에 붙이는 존칭의 표기를 ‘씨’에서 ‘여사’로 변경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요구와 질책, 시대의 흐름에 따른 대중의 언어 습관 변화 등을 심각하게 고민한 결과입니다. 신문사 내부의 토론, 독자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조언 등도 두루 거쳤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1988년 창간 이후 유지해온 표기 원칙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대통령 부인을 ‘씨’로 호칭하는 것에 대한 많은 독자분들의 오해였습니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씨’는 ‘사람의 성이나 이름에 붙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독자분들께서는 한겨레가 대통령 부인 이름 뒤에 ‘씨’를 붙이는 것에 매우 마음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대통령을 무시한다’는 억측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저희의 진의와 달리 한겨레가 독자들과 대립하고 불화하는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번 결정의 첫번째 이유입니다.

사실 ‘씨’는 사전적 의미와 달리 점차 존칭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비판은 이런 언어 습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권위주의적 표현이었던 ‘여사’의 쓰임새도 3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호칭은 옳고 그름의 ‘문법’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에 가깝다”는 한 원로 국어학자의 조언은 저희의 결정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대통령 부인 호칭 문제에 대한 성찰을 계기로 독자 여러분과 더욱 소통하고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어의 탈권위화, 성차별적 표현의 배격,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언어의 추방 등은 여전히 저희의 의무이자 숙제입니다. 달라진 대중의 언어 습관 속에서도 바람직한 언어문화가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더욱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한겨레신문사


좌담회

“한겨레 창간 때부터 존칭 ‘씨’로 통일…권위적 표현 걷어내”
“시대가 변해…많은 국민들이 이젠 ‘여사’가 무난하다 생각”

대통령 부인 존칭,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대통령 배우자 이름 뒤의 존칭 표기 문제는 <한겨레>의 고민이다. 시대에 맞는 새 합의점을 찾기 위해 조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 4명의 전문가가 마주앉았다. 최인호 전 한겨레 교열부장은 창간 초기부터 한겨레 표기법의 기초를 닦은 한겨레 교열의 산증인이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오랜 기간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으로 젠더 관점의 미디어 언어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문화관광부 표기법분과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언론운동가 출신인 최민희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말을 깊이 이해하고 한겨레에 대한 사랑 역시 남다른 이 네 사람이 2시간 가까이 대통령 부인의 신문 표기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의견을 나눴다. 김종구 <한겨레> 편집인이 사회와 진행을 맡았다.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부터),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 최인호 전 <한겨레> 교열부장,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부터),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 최인호 전 <한겨레> 교열부장,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사회 한겨레는 창간 이래로 대통령 부인 이름 뒤에 붙는 존칭을 ‘씨’로 해왔는데 그동안에도 간간이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여사’라고 표기하지 않는 데 대한 독자들의 항의가 적지 않았는데,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항의가 더욱 거세졌다. 한겨레 안에서도 이 사안을 둘러싼 논의가 많았다. 최근 독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도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결론 내리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자 모셨다. 오늘 이 자리는 누가 이기고 지고 하는 토론회라기보다는 한겨레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는 자리다. ‘씨’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최인호 전 한겨레 교열부장과 강혜란 여성민우회 공동대표를 모셨고, ‘여사’로 변경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최민희 전 의원, 김하수 교수를 모셨다. 먼저 최 전 부장이 ‘씨’로 썼던 이유를 정리해주셨으면 한다.

최인호(이하 최) 1988년 창간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이름 뒤에 붙여 쓸 만한 존칭이 몇 가지 없다. 남녀 불문하고, 신분을 가리지 않고, 큰 높낮이 없이 보통 존중하는 말이 ‘씨’로서, 아시다시피 이는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두루 쓰는 말이다. 원칙에 예외가 있을 수가 없어서 대통령 부인도 자연스럽게 ‘씨’로 표기했다. ‘영부인’이나 ‘여사’가 권위적인 말이란 반성도 있었다. 더구나 신분을 표시해주는 설명이 앞에 붙는다. ‘○○○ 대통령 부인 아무개씨’라고. 이 정도 하면 충분하다고 봤다. 이름 뒤에 붙는 건 호칭이 아니라 존칭이다.

씨는 존칭…하대로 보는 건 잘못
남녀·신분 구별 않는 ‘~님’ 써볼만

최민희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왜 이 문제가 이렇게 오래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는 송건호 선생님을 모시고 <말>지 창간에 참여했고, 거기서 이어진 것이 한겨레다. 한겨레를 친정이라고 생각하고 무한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으로 만들어진 한겨레가 어찌 보면 별것 아닌 문제로 일파만파를 만드는 느낌이다. 애정으로 말씀드리자면 방금 말씀하신 대로 1988년에는 그 존칭이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2017년 지금에 1988년의 원칙을 그냥 가지고 가면서 이게 상식적이라는 말은 설득이 되지 않는다. 청와대에서 논란을 일으킨 것도, 외압을 가한 것도 아니다. 열성적 지지자들의 문제제기다. 청와대에서도 여사 표기를 원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자유당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자유한국당에서 한국당으로 약자를 쓰든가 아니면 풀네임을 써달라고 해서 자유한국당으로 쓴다. 호칭은 사회적 의미가 붙기 전에 본인이 이렇게 불러달라고 했을 때 들어주면 되는 것 아닐까. 원칙을 지킨다는 한겨레의 태도가 고루하다. 수용적 태도로 넘어가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생각한다. 세상이 바뀌었고 엘리트주의가 다 깨졌다. 권위는 시민에게 있을 수밖에 없는 시대다.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한겨레 ‘김옥숙 여사’ 쓴 적 있어
실수 인정하면 되는데 대응 미숙

강혜란(이하 강) 2007년에 <미디어 오늘>에 썼던 칼럼(아직도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십니까?)이 10년 만에 제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환되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당시 제가 그 칼럼을 썼던 배경을 말씀드리면, 지금과 유사한 문제가 촉발되었고, 당시 박찬수 한겨레 정치부장이 ‘권양숙씨가 뭡니까?’라는 칼럼을 썼다.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한겨레가 출범 때부터 씨라는 존칭을 써왔다는 내용이었다. 부끄럽게도 그 전까지는 그게 한겨레 교열 원칙인지 몰랐다. 페미니스트인 저는 한겨레가 언론매체로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자부할 만한 일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는 이 시점에 다시 이 문제가 촉발되는 것이 놀랍고, 이번 좌담회에서 한겨레는 뭘 하고 싶은 것일까 궁금해서 참석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식이 결론 중심의 논의가 아니라 우리 언론이 어떤 방향으로 바람직한 원칙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면 좋겠다. 최 의원께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물론 언론과 독자들의 소통이 중요하다. 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호칭이 또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되어야 한다. 여성의 지위를 배우자의 직업이나 지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우리는 이미 편부모를 한부모, 미혼을 비혼이라고 바꾸는 캠페인을 통해 대안적 문화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오늘의 논의가 두 가지 가치, 독자들의 문제의식에 대해 언론이 어떤 소통태도를 가질 것인가, 또 언론이 호칭을 통해 어떤 대안적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창간 때 탈권위 정신 여전히 유효
성별화된 언어 개선 계기 됐으면

김하수(이하 김) 기본원칙은 최인호 부장이 말씀하셨다. 한겨레의 첫 입장에는 동의를 하는데, 이런 문제가 계속 나오면서 다시 들춰보니 최근에 우리 사회의 변화가 굉장히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언어가 굉장히 대중 중심으로 가고 있고, 많이 통속화됐다. 그러면서 세대간 소통은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다. 아시겠지만 ‘여사’라는 호칭도 옛날 같지 않다. 프란체스카 여사, 육영수 여사 할 때 여사와 요즘 ‘여사’는 다르다. 속된 말로 가벼워지고 흔해졌다고 할까. 비정규직 여성들에게도 많이 쓴다. ‘씨’도 많이 평가절하가 되어 버렸다. 젊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이름 석 자 다음에 씨를 붙이면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씨, 여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호칭 자체가 평가절하되고 통속화됐다. 대통령 부인에 대해 ‘여사’를 안 붙여주냐 하는 항의에는, 한겨레가 오만한 거 아니냐, 대통령 위에 서서 시대의 심판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어 있다. 학교 서열화, 젠더 문제 등에 대해 그동안 한겨레가 쌀쌀맞다고나 할까, 답답하다고 여기는 여론이 있었다고 본다. 이런 것이 한꺼번에 요동친 것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해본다. ‘여사’로 써도 창간 때 우려했던 문제는 안 생길 거라 본다. 창간 정신을 살리면서 어떻게든 시민적 호칭을 정리해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신문글, 곧 보도기사에서 쓰는 ‘씨’를 하대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신문기사는 높임말을 쓰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생각하여 취재 대상을 `께서’, `하십니까’ 따위로 높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논문, 법률 등 사무적이고 공적인 글이 두루 그렇다. 신문에서 성명 앞뒤에 직함이나 씨를 붙인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신문> 즈음이 아닌가 한다.

사회 최근 우리 기사의 호칭을 분석해보니, 사실 한겨레에서도 전체적으로 ‘씨’를 안 쓰는 경향으로 가고 있다. 예컨대 기사 처음에 ‘시인 김아무개씨’라고 쓰고 그 뒤부터는 ‘김씨’로 표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김 시인’ ‘김 배우’ 이런 식으로 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걸로 압축이 되는 것 같다. 대통령 부인만 공식 직책이 없다 보니 ‘씨’로 표기하고, 그분만 손해를 보는 셈이다. ‘씨’가 낮춤말로 인지되다 보니 대통령 부인에게 씨를 붙이는 것이 ‘너희가 대통령을 우습게 보고 싫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오해를 낳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김 영부인’이라고 쓰면 어떨까 하는 궁리까지 해봤지만, 그런 언어관습이 없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굳이 영부인을 쓰자면 ‘영부인 ○○○씨’가 맞다. 호칭이나 존칭이 갈수록 어지러워진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직함, 존칭 거품이라고 할까. 공적이고 사무적인 글이 아니라 말로 주고받을 때는 씨가 ‘대접해서 높이는’ 느낌보다 낮추는 느낌을 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긴 하다.

사회 입말이 점차 전이되는 현상이라고 본다.

김정숙 여사도 청와대에서 기자들이 부를 때 ‘여사님’이라고 입말로 부르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그러나 기사에서 여사가 아니라 씨라고 쓴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씨에 대한 지나친 오해 아닌가.

언어 문제는 문법적인 현상과 문화적인 현상이 있다. 문법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으나 문화적인 것은 아니다. 합의해서 공동의 선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호칭은 문화에 가깝지 문법에 가깝지 않다. 항상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제가 보기에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호칭을 딱딱 정해서 말할 상황도 아니다. 당사자의 의견이 우선이고 문화적인 문제로 풀어야 한다. 최인호 부장이 말한 한겨레의 대의를 무시하지 않더라도 풀 방법은 있다고 본다. 지금 정보산업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모든 소통이 동기화되고 있다. 그러면 감정이입이 빨라진다. 통속화가 일어나고 공감대가 중요해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열화와 같은 뜨거움이 굉장히 빨리 전달된다. 거부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여건을 보더라도 아까 우리가 언급된 대의만 말하면 자칫 교조적이게 된다. 대의를 살리면서,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전략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

사회 호칭을 둘러싼 여성주의 시각도 있다. 그 대목에 대한 강혜란 대표의 의견이 궁금하다.

앞서 두 분 이야기에 대해 먼저 이어서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씨’나 ‘여사’의 의미가 하락되고 문화 속에서 의미 없음으로, 혹은 더 낮은 위치로 정리되는 이유가 뭘까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그 원인은 우리 사회가 굉장히 서열화되고 위계적이어서일 것이다. 끊임없이 높은 호칭에 대한 요구가 생긴다. 모든 사람이 ‘씨’가 되고, 더 많은 여성들이 ‘여사’가 되는 문화가 계속 만들어져 왔다.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여사’로 쓰고 아니고의 문제를 넘어, 과연 언론사 한겨레가 호칭과 언어에 대해 어떤 전략과 메시지를 드러낼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주의 입장에서는 성차별적 호칭, 위계를 강화하는 언어에 반대해왔다. ‘부인’ ‘부군’보다 ‘배우자’라는 표현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처럼, 가치 지향적 언어 사용에는 훨씬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기준이 없으니까 당사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게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입말, 곧 대화를 할 때의 존칭이어서 별문제가 안 된다. 기사는 다르다. 입말과 글말이 같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 이를 이해하면 문제가 풀린다.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각하’라는 말을 쓰지 않고 ‘대통령님’ 정도로 쓰는 줄 안다. 영부인과 여사는 쓰임이 좀 다른데, 영부인은 지체 높은 이의 부인을 일컫는 ‘호칭’이지만, 여사는 그냥 성명 뒤에 붙는 존칭이다. 사람이름이나 직책 같은 것은 당사자가 써달라는 대로 존중해 쓰는 게 마땅하다.

최민희 정확히 하자면, 김정숙 여사는 호칭에 대해 직접 말한 적이 없고, 청와대에서 논란이 되니까 정리한 것이다. 일부 지지자들이 상처 입어서 문제제기를 하는데, 한겨레의 대응이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

본질은 그게 아니라는 말에 공감한다. 예를 들면 ‘유쾌한 정숙씨’라고 부르면 지지자들이 비난하지 않는다. 맥락에 대한 우려이지, 이것을 자로 잰 듯이 호칭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지지자가 시민사회의 수평성을 강화하는 호칭 문화에 동의한다고 본다. 좌담회를 위해 어제 트위터를 돌아보니 그러한 항의의 배경에는 한겨레의 일관성과 형평성이 문제가 있었다. 한겨레가 그런 부분에 대해 설명 책임을 갖고 좀더 개방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면 대안적 가치에 대한 그동안의 노력이 충돌되는 가치라고 이해되지는 않는다.

최민희 원칙이 있다고 하고 밀고 나가면 된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이런 논의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면 된다. 한겨레에서 김옥숙 여사, 아베 부인은 여사라고 쓴 적이 있다. 실수였다고 쿨하게 인정하면 되지 않느냐. 답은 안 하고 계속 받아치고 논란의 과정 관리를 잘못한 게 문제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걸 심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씨’를 ‘여사’로 변경하면 그동안 지켜온 내부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한겨레 안에서 가슴 아픈 분들이 있겠지만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그런데도 이걸 계속 논쟁을 한다.

실수나 잘못은 그때그때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맞다. 이참에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한다. 원칙에서 부분적인 예외를 두는 정도가 아니라 좀더 기틀을 흔드는 방식이다. 이왕 ‘씨’가 말썽을 부리고 있으므로, 씨를 대신할 만한 말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지금도 즐겨 쓰는 말에 ‘님’이 있다. ‘씨’보다 느낌도 좋고 사람을 높이는 힘이 세지 않나. 물론 한겨레의 결단이 따라야 할 터이다.

직함 뒤에는 ‘님’이 맞을 수도 있지만 이름에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다만 인터넷에서 아이디에는 ‘님’이 잘 붙는다.

사회 신문으로서는 표기원칙이 일관돼야 하는데, 대통령 부인 호칭을 여사로 바꾸면 지난 대통령의 부인들 호칭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또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장관 등의 배우자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그런 문제들도 결코 간단치 않은 것 같다.

여사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문제다. 전직일 때, 후보자일 때, 다 붙여줘야 하는지. 경계를 긋기가 어렵긴 하다.

최인호 부장이 만든 교열원칙, 차별의 감수성을 바꿔나가려고 하는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그러하기에 언론이 촛불혁명의 정신과 평등한 대안문화에 주목하기보다 특정한 호칭을 수정하는 것에 골몰하고 있는 현실은 좀 안타깝다. 과연 지지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이런 방향일까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호칭의 일관성이나 형평성으로 인해 무시당했거나 모욕당했다는 것에 상처받은 것이지, 당시 탈권위, 탈가부장주의로 가자는 한겨레의 정신을 문제 삼았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는 가치지향적인 대안적 호칭들을 더욱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최민희 한겨레 표기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을 지지자들이 기가 막히게 알고 정서로 치환해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름 뒤에 직책을 고수하는 것도 이상하다. 사회적인 성공의 정도가 직책으로 정해진다. 그럼 취업준비생, 청년실업자는 뭔가? 탈권위와는 상관없이 편의적인 원칙이다. 이것처럼 남성중심적인 원칙도 없다. 직책 있는 주부들이 어디 있나? 직책을 붙인다는 것도 재논의돼야 한다.

직함 뒤에 ‘님’을 지나치게 많이 붙여 쓰는 편이긴 한데, 이름이나 성 뒤에 쓰면 존칭하는 느낌이 확연하다. 직함이나 직책 인플레나 거품을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씨’도 마찬가지인 것이 자리에 따라 ‘국회의원 최민희씨’라고 해도 괜찮지 않나. ‘대통령 문재인씨’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본다.

최민희 그렇다면 김정숙 여사는 책을 세권 썼으니 ‘김정숙 작가’ 아닌가. 한겨레 표기법에는 빈틈이 많다.

우리나라는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아서 시민적 호칭이 없다. 전근대적 호칭과 외래의 호칭밖에 없다. 그래서 선택이 괴로운 것이다. 이걸 갑자기 만들어내 봤자 어색하고 놀리는 말 같고, 해서 안 되는 거다. ‘님’ 같은 것도 만들어낸 말 기분이 든다. 북한도 초장기에 나온 것을 보면 동무와 동지로만 하게 했는데 나중에 이것만으로 안 되더라. 하다보면 중대장 동무처럼 길어지고…. 북한은 정치적 혁명을 달성했다고 하는 것은 인정할 만하지만 과연 문화적인 혁명을 이루어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본다. 과잉 호칭이 계속 나오는 것은 꼭 우리만 부끄럽게 생각할 치욕 현상이 아니다. 언어적으로 치유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님’이 꽤 쓰이는 말이지만,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남녀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 존중’ 정신에서 ‘씨’보다는 자연스럽고 나은 존칭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씨를 일부 여사로 바꾸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 원칙대로 하는 것이 옳되, 이참에 한겨레에서 ‘씨’를 ‘님’으로 대체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말씀이다. 그러자면 상당한 논의와 준비를 해야 할 터인즉, 시간을 두고 검토했으면 한다.

최민희 대통령 부인에 대해서는 ‘여사’라는 호칭이 무난하다고 많은 국민들이 생각할 거라고 본다. 혹시 한겨레 내부에 독자를 가르치려고 한다거나, 독자들과 대결의식이 있다거나, 문제제기 한 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그것을 패배라고 생각하는 흐름이 있다면 그게 더 위험하다고 본다. 사안을 단순화시켜서 가라고 권고하고 싶다.

여러 차례 말씀드리는 것처럼 한겨레가 창간 때 표방한 탈권위, 탈가부장주의, 차별적 표현 지양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구체적 표현에 있어서 일부를 수정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과연 그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오히려 지금의 논란을 계기로 탈권위주의적 문화, 성별화된 언어 환경 개선 등을 제2의 창간처럼 고민하길 바란다. 언어는 그 자체로 미디어인 만큼 배제된 사회구성원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수평적 문화 확산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호칭뿐 아니라 장애인과 일반인, 이주민과 한국인같이 누군가를 소외시켜온 언어를 비장애인, 선주민과 같은 용어로 전환해가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란히 만날 수 있는 언어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항의는 일관성과 형평성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측면이 적지 않다.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기 위해 정리를 너무 서두르는 방식이 아니면 좋겠다. 더 나은 가치 지향적 교열원칙을 고민해야 한다.

시대 흐름과 조율해가면서 보면 좋지 않을까. 80년대 당시 시대와 가장 선진적으로 호흡을 맞춘 것이 한겨레였다. 그러나 지금은 과연 그런가? 그동안 사회와 스킨십이 약해진 것 같다.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민희 격하게 공감한다.

사회 오랜 시간 귀중한 말씀에 감사드린다.

정리 신윤동욱 기자, 녹취 시민편집인실 허정윤 syuk@hani.co.kr


좌담회 후기

애정어린 조언 쏟아진 2시간…더 나은 대안 찾아가는 과정

이기고 지는 토론이 아니라 조언을 구하는 자리였다. 참석자 네 분은 ‘<한겨레>가 결정할 문제’라고 하면서도 애정 어린 조언을 2시간 가까이 쏟아냈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다르다’는 만화 <송곳>의 명대사처럼 국어학자, 여성주의 활동가, 언론운동가 출신의 정치인, 한겨레에 평생 몸담은 전직 기자는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대통령 부인 호칭 문제의 논점을 짚어냈다. ‘호칭’과 ‘존칭’의 구분에서부터 시작해, 대중의 언어 관습의 변화, 언론과 독자와의 소통, 호칭에 깃든 성차별적·위계적 질서의 문제 등 대통령 부인 호칭 문제에 깃든 온갖 사안이 대화 테이블에 올랐다. 견해가 서로 다르면서도 ‘말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라는 지점에서는 같이 만났다.

미디어와 대안적 언어의 문제를 오래 천착해온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씨’와 ‘여사’가 반드시 대립하는 관점이 아니며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이 논쟁을 계기로 한겨레가 더욱더 성평등적이고 대안적인 언어를 고민하기를 희망했다. 최민희 전 의원은 열성적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전하면서, 한겨레가 오늘 부딪히고 있는 벽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최인호 전 한겨레 교열부장은 ‘씨’ 호칭에 담긴 진보적 의미를 소상히 설명하면서, 이제는 ‘씨’를 대신해 ‘님’을 사용하는 운동을 벌이는 문제를 고민해보라고 제안했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는 언어 문제를 문법적인 현상과 문화적인 현상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호칭 같은 문제는 언론이 형해화된 원칙론이 아니라 변화하는 대중의 언어문화와 함께 호흡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일깨웠다.

좌담회 이후 한겨레는 깊은 고민 끝에 대통령 부인 이름 뒤의 존칭을 ‘씨’에서 ‘여사’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씨’ 유지를 조언하신 강 대표와 최 전 부장께는 죄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하지만 두 분의 조언에 깃든 정신은 한겨레가 더욱 온전히 발전시켜나갈 것임을 다짐한다. 이날 좌담은, 오늘의 변화가 과거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일깨운 소중한 자리였다. 호칭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깃든 사람의 정서와 사회의 숨결을 생각하는 시간을 한겨레와 독자들께 선물한 네 분께 감사드린다.

김종구 편집인 kjg@hani.co.kr


독자 여론조사

한겨레 독자 56% “김정숙 여사로 써야”

<한겨레> 독자들은 대통령 부인의 호칭을 ‘여사’가 아닌 ‘씨’라고 표기하는 데 원칙적으로 더 동의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에 대해선 ‘여사’로 써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신문사가 여론조사기관 엠알씨케이(MRCK)에 의뢰해 지난달 6~7일 <한겨레> 구독자 507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 부인 호칭을 ‘씨’라고 표기하는 것에 대해 ‘<한겨레>가 고수해온 원칙인 만큼 앞으로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49.5%로, ‘시대적 상황 변화를 고려해 바꿔야 한다’(36.3%)는 의견보다 많았다. 그렇지만 김정숙 여사에 대한 표기는 ‘여사가 적절하다’는 응답이 56.0%로, ‘씨’라는 응답(12.6%)보다 4배 이상 많았다. ‘뭐라고 써도 상관없다’는 응답은 28.6%였다. ‘여사가 적절하다’는 응답은 대전·충청(67.7%), 광주·전라(68.0%), 부산·울산·경남(66.7%)과 40대(60.0%), 60대 이상(64.6%), 2년 이하 구독자층(60.4%)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전직 대통령 부인 표기와 관련해선, ‘전·현직 모두 여사로 써야 한다’는 응답이 37.7%로 조사됐다. ‘모두 씨로 써야 한다’와 ‘대통령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각각 26.4%였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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