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한 사람들. 빈민촌에 모여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높으신 분들은 그 모습이 싫었나 보다. 서울 근교에 신도시를 꾸며 이들을 이주시키기로 했다. 당시 서울시장은 김현옥. 세운상가를 짓고 고가도로를 올리는 등 원조 ‘불도저 시장’으로 유명한 사람. “십만명만 모아놓으면 저희들끼리 알아서 살아갈 수 있다”며 집단 이주를 밀어붙였다.
그렇게 삶터를 옮긴 이가 십오만. ‘선 입주 후 개발’이라며 개발도 안 한 땅에 이사부터 시켰다. 부동산 투기까지 끼어들어 상황은 더 고약해졌다. 서울시는 헐값으로 토지를 매입했는데, 입주민은 비싼 불하가격을 물어야 했다. 먹을 것이 없어 닭 사료를 훔치거나 쓰레기통을 뒤졌다고 한다. 참다못해 들고일어난 날이 1971년 8월10일. 정부 수립 뒤 처음 있는 대규모 빈민 투쟁이었다.
원인을 제공한 김현옥은 그때 서울시장이 아니었다. 1970년에 물러났다. 판자촌을 대신할 시민아파트 건설에 힘을 쏟던 차, 그의 ‘야심작’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시공 기간을 무리하게 줄인 부실공사 때문이었다. 불도저 시장의 “빨리빨리” 정신이 이쪽저쪽에 참사를 부른 셈.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