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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순간] 쫓겨난 내 고향에… 미군이 들어왔다

등록 2017-08-04 13:19수정 2017-08-04 19:54

대추리·도두리를 지켜내려
얼마나 치열하게 저항했던가
그러나 끝내 미군의 땅으로…

힘없는 우리는 밀려났고
지도에서 마을은 지워졌지만
내 고향, 추억은 선명하다
철조망 너머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스의 새 건물들이 보인다(양쪽 사진). 가운데 사진은 2006년 11월8일 황새울 들녘에 군인들이 철조망을 추가 설치하는 모습이다. 그날 국방부는 경찰 45개 중대 4500여명과 200여명의 군 병력을 동원해 팽성읍 도두리에서 대추리 마을회관 진입로 인근 논의 경작을 막고자 총 3㎞ 구간에 걸쳐 철조망 작업을 벌였다.
철조망 너머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스의 새 건물들이 보인다(양쪽 사진). 가운데 사진은 2006년 11월8일 황새울 들녘에 군인들이 철조망을 추가 설치하는 모습이다. 그날 국방부는 경찰 45개 중대 4500여명과 200여명의 군 병력을 동원해 팽성읍 도두리에서 대추리 마을회관 진입로 인근 논의 경작을 막고자 총 3㎞ 구간에 걸쳐 철조망 작업을 벌였다.

주한미군이 64년 용산 시대를 마감하고 평택 시대를 열었단다. 미8군이 이주할 이곳 캠프 험프리스는 1961년 작전 도중 헬기 사고로 사망한 미 육군 장교 벤저민 K. 험프리 준위를 기념해 1962년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여의도 면적(둑방길 안쪽) 80만평의 5.5배에 이르는 총 444만평 땅에 기지가 꾸려졌다. 그 안에는 여러 군 시설물 외에도 철도가 놓였고 그들의 학교와 ‘다운타운’ 등 생활시설이 자리 잡았다. 10여 년 동안 총 107억 달러를 들여 꾸민 이곳은 미 국방부의 해외 육군기지 중 최대 규모다. 토머스 밴들 미8군 사랑관은 “이 사업이야말로 미국과 한국이 계속 힘을 합쳐 주어진 모든 임무를 어떻게 완수해왔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례”라고 추켜세웠다.

한복판에 우뚝 선 미군기지 물탱크가 시선을 끄는 이곳은 옛 대추리와 도두리 황새울 들녘이다.
한복판에 우뚝 선 미군기지 물탱크가 시선을 끄는 이곳은 옛 대추리와 도두리 황새울 들녘이다.
지난달 11일 주한미군이 언론에 평택 기지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한 관계자가 지도를 보며 시설물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주한미군이 언론에 평택 기지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한 관계자가 지도를 보며 시설물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국민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대추리에서 제주 강정으로, 다시 성주 소성리까지 국가가 뜻을 세우면 실행되었다. 그 뜻이 세워지기 전부터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던 사람들의 삶이란 건물처럼 허물고 다시 세우면 되는 일로 취급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주변부의 힘없는 작은 마을들이 가늠자 뒤에 세워질 뿐이다. 자유·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쉽게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치환된다. 그렇게 마을이 지워졌고, 사람들이 밀려났다.

대추리를 지켰던 사람들의 초상화가 팽성읍 노와리 이주단지 안에 마련된 대추리 기념관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대추리를 지켰던 사람들의 초상화가 팽성읍 노와리 이주단지 안에 마련된 대추리 기념관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대추리 투쟁 당시 노인정에 걸려 있던 태극기 아래에는 ‘정부와 억울하고 서러운 4년을 싸우면서도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대추리 투쟁 당시 노인정에 걸려 있던 태극기 아래에는 ‘정부와 억울하고 서러운 4년을 싸우면서도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저들이 지워버린 2006년 가을을 기억한다. 생전 처음 국가와 싸우느라 모내기는 꿈도 못 꿀 처지였던 농부들의 마음을 헤아리듯 마른 땅에 뿌려진 볍씨들은 씩씩하게 자라 이삭을 맺었다. 이 들판에서 얼마나 치열한 저항과 싸움이 이어졌던가. 2007년 3월25일, 935일째 촛불행사를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마음마저 거두지 못한 이곳,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이곳-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 우리 땅, 우리 고향이다.

팽성읍 노와리 이주단지 대추리 기념관에 옛 마을을 담은 그림지도가 걸려 있다.
팽성읍 노와리 이주단지 대추리 기념관에 옛 마을을 담은 그림지도가 걸려 있다.

평택/이정아 김정효 박종식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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