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1886~1947)
1947년 7월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피살되다
청년 시절에는 대륙을 누비던 혁명가였다. 레닌을 만나러 모스크바도 갔다. “조선 사람과 일본 노동자가 힘을 모아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라”는 취지로 레닌은 조언했다. 좋게 보아 원칙을 강조, 나쁘게 보면 하나 마나 한 이야기였다.
중국 땅에서 일본 경찰에게 잡혀 한국에서 옥살이를 했다. 중년이 되자 대중적인 사회운동에 힘을 쏟았다. 당시 적지 않은 운동가들이 “지하혁명가의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여운형은 예외였다”.(장석준) 신문사를 경영하고 체육계 활동을 했다. 마흔여덟에 웃통을 벗고 사진을 찍은 일도 있다. <현대철봉운동법>이라는 책을 위해 피트니스 모델을 선 것.(몸이 좋다.) 다양한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이렇게 쌓은 인맥으로 해방을 맞을 준비를 했다. 일본으로부터 권력을 인수하기 위해 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했으나, 미군정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해방 정국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분단을 막기 위해 좌우합작 운동을 벌였다. 좌파도 우파도 두루 만나 대화하는 그의 친화력을, 권력을 독점하고 싶은 자들은 두려워했던 걸까. 여운형이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한 날이 1947년 7월19일. 오늘은 몽양의 70주기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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