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양승태 대법원장이 16일 문재인 정부 첫 대법관 후보로 임명 제청한 조재연 변호사와 박정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모두 비서울대 출신의 현직 변호사와 여성 법관이다. ‘서울대·50대 남성·고위 법관’ 출신이 대부분인 현재의 대법원 구성과는 확연히 달라, 대법원 구성이 큰 틀에서 변화될 것임을 알리는 일종의 ‘예고편’으로 볼 수 있다.

조 변호사는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일하며 성균관대 법학과를 야간으로 다니다 22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판사로 11년간 일하는 동안 시국사건에서 여러 차례 소신 판결을 내려 ‘반골 판사’도 불렸다. 1985년 이른바 ‘민중달력’ 사건의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고, 야당 의원의 국회 발언 속기록을 모은 <민주정치1>를 출간한 출판사 대표를 즉심에 회부한 사건에서 ‘유언비어 유포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987년 납북어부 간첩 혐의 사건에서도 증거 부실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변호사로는 조세·민사·가사·부동산 사건을 주로 담당했으며, 법무법인 대륙아주에서 대표변호사를 맡기도 했다.

박 부장판사는 고려대를 졸업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행정법원 부장 등을 지냈다. 행정법원에서는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당한 쌍용자동차 직원 해고가 부당하다고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 직업이 없는 구직자가 포함된 노동조합 설립도 적법하다는 판결 등 노동관계 법률의 해석기준을 명확히 하는 판결을 다수 했다. 먼저 신고된 집회가 형식적인 유령 집회라면 나중에 신고된 집회라고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도 있다. 지식재산권법, 노동법 등 분야에서 여러 편의 논문과 평석을 내는 등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2015년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제청된 두 사람은 모두 전·현직 법관이어서, 순수 재야 출신 변호사 등 법률적 가치관과 성장 배경이 다른 법조인들의 대법관 진입까지 포함한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는 이번 제청이 다소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노동·인권 전문가이자 법조계 안팎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김선수(56·17기)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가 최종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두고 나온 반응이다. 대한변협은 이날 논평에서 “변호사 중에서 대법관을 임명해 대법관이 고위 법관의 최종 승진자리로 운영되어 온 종전의 관행을 타파하고, 여성을 제청하였다는 점을 환영한다”면서도 “오랫동안 순수 재야 변호사로 활동한 김선수 후보가 제외된 점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대법관 임명을 시작으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중 13명을 임명하게 돼, 현재 보수적으로 평가받는 대법원 지형도 이번 인선을 시작으로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 조재연 변호사 △61세, 강원 동해 △덕수상고, 성균관대 법대 △22회 사법시험 △서울민사지법 판사 △서울가정법원 판사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 △대한변협 장애인법률지원변호사 △언론중재위원회 감사

◇ 박정화 부장판사 △51세, 전남 해남 △광주 중앙여고, 고려대 법대 △30회 사법시험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광주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