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1926~1980)
1980년 5월24일, 김재규 사형 집행
1979년 10월의 부마항쟁. “캄보디아는 삼백만을 죽여도 까딱없는데 우리도 백만쯤은.” 대책회의 자리에서 이런 말로 차지철이 박정희를 부추기더라고, 김재규는 회고한다. 10월26일에 자기가 둘을 쏜 것은 이 때문이란다. 사실일까. 그렇다면 김재규는 독재자를 제거하여 더 큰 참극을 막은 셈이다. 김재규가 민주주의에 공이 있다는 쪽의 주장.
반면 민주주의와 관계없다고 보는 쪽도 있다. 김재규 역시 누릴 것 다 누리던 독재정권의 일원이었다고.(김형욱을 살해한 것도 김재규의 지시.) 그저 욱하는 성격 탓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김재규는 차지철한테 피해의식이 컸다. ‘차지철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고 김종필은 회고한다.
어느 쪽 생각이 맞을까. 한때 살갑던 김재규와 박정희는 왜 멀어졌을까. 최근 새로운 견해가 주목받는다. 최태민의 정체가 알려지면서부터다. 유신정권 말기에, 최태민을 조심하라고 김재규는 건의했단다. 그런데 박정희는 박근혜를 핑계 삼아 최태민을 내버려두었다. 이 일 때문에 김재규가 회의를 품었다는 것. 이 의견은 사실일까? 아무려나, 김재규는 곧 체포되어 신군부에 보복당했다. 그가 처형된 날이 1980년 5월24일이다. 김태권 만화가, 일러스트 오금택
일러스트 오금택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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