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밀양 송전탑 투쟁 주민·위안부 피해 할머니
해고 언론인·블랙리스트 연출가 등 ‘절절한 한마디’
해고 언론인·블랙리스트 연출가 등 ‘절절한 한마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쌓여있던 적폐를 청산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를 나라답게’ 공약집을 통해 밝힌 1호 공약이다. ‘적폐청산’이 화두로 떠오르기 전, 오랜 시간 살아있는 ‘적폐’에 맞서온 시민들이 있었다. 11일 <한겨레>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이들의 기대를 들어봤다.
■ 노동계 “굶고 죽고, 높은 데 올라가지 않도록…”
노동자들은 ‘굶지 않고, 죽지 않고, 고공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랐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영도 조선소 크레인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당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등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는 노동자들이 높은 데 안 올라가도 되고, 단식한다고 굶지 않고, 자살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파업으로 국가와 회사로부터 손해배상(손배) 소송 폭탄을 맞았던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은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은 법전 안에만 있다. 손배·가압류 소송이 노동 탄압을 위한 신종 무기로 사용되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국가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상태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해고자들에 ‘국가에 11억 3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있다. 한 위원장의 어머니 임선복씨는 “남 좋은 일도 아니고, 없이 사는 사람들 위해 고생한 건데 우리 아들 좀 (감옥 밖으로) 꺼내주면 좋겠소. 우리 아들처럼 고생한 사람들도 다같이 (옥 밖으로) 내주시면 좋겠소”라고 말했다.
■ 정부 국책 사업 반대하면 다 빨갱이·종북좌파?
‘불도저식 국책사업’의 피해자들도 새 정부에 ‘주민 의견에 귀 기울여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주민 반대에도 해군기지가 건설된 제주 강정마을의 강동균 전 마을회장은 “국책 사업 반대한다고 ‘빨갱이’, ‘종북좌파’로 몰아가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는 “‘사드 배치 문제’도 그렇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달라. 국민이 자기 주권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노무현 정부 말미에 시작된 사업이다. 문 대통령은 제주해군기지 공사 지연을 이유로 해군이 강정마을 주민 등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소송의 철회와 형사처벌 대상자 사면, 공동체 회복 사업 지원 등을 약속한 상태다.
10년째 ‘밀양 송전탑’ 문제로 싸워온 경남 밀양 평밭마을 주민 한옥순씨도 “주민들이 반대한다면, 현장에 찾아가서 왜 사람들이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좀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신고리 원전 준공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주민과 합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됐다. 2008년 공사에 착수한 이후 공사에 반대하는 마을 주민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주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4대강 사업’도 적폐로 거론된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 시절 추진된 ‘4대강 사업’도 면밀히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08년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대운하 계획’이라고 양심선언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박사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데 있어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숙려기간도 없이 전문가의 조언도 무시한 채 국책사업을 밀어붙였다. 보 해체 등 4대강을 재자연화할 때도 급작스럽게 단기간에 성과를 보려고 하면 이명박 정권 때와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물대포·간첩 조작… 공권력 오·남용 해결해야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 백도라지씨는 “아버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 수사만 제대로 되면 책임자 처벌은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새 행정부가 물대포를 퇴출해야 한다. 물대포가 존속하는 이상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희생자는 또 나올 수밖에 없다”며 “공권력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는 “국정원은 정권교체기 때마다 간첩 조작 사건을 통해 이슈를 만들어왔다.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을 개혁하고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불법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을 당시,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바 있다. 대법원은 2015년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유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 조작에 가담한 국가정보원 직원 등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 역사·문화·언론 제멋대로 주무르지 않도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참말로 새 대통령이 나왔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박근혜는 역사를 팔아먹은 대통령이다. 새 대통령은 하루라도 빨리 일본과 협상해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주고,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우러나와 사죄·법적배상·명예회복에 나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언론 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해고된 노종면 전 와이티엔(YTN) 엥커는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를 개혁하고 문제 경영진은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은 사실상 큰 권력을 가진 집단이다. 언론 개혁 움직임에 저항하려 들기 전에, 정면 돌파를 통해 적폐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 언론 개혁에 대한 방향,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생각하고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이해성 연극연출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유린한 사건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이뤄지고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기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설사 본인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의 공연이라도 오히려 그런 공연을 더 지원해줄 수 있는 열린 정부가 될 거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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