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낮 서울 여의도 봄꽃축제 현장에서 경찰관이 마스크를 쓴 채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황금비 기자
남편과 4살 딸아이 손을 잡고 9일 서울 여의도 봄꽃축제를 찾은 전해린(40·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씨는 집을 나서기 전 까만색 마스크를 착용했다. 어린이용 미세먼지 마스크도 챙겼다. 창밖으로 내다본 하늘이 뿌옜기 때문이다. 오전 경기도 등 일부 지역은 미세먼지 ‘나쁨’ 수준일 거라는 날씨 예보도 신경쓰였다. 전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아이가 ‘하얀 콧물’이 아닌 ‘노란 콧물’을 흘려서 걱정이 크다. 매년 벚꽃 보러 여의도를 찾는데 올해는 ‘와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바깥나들이가 즐겁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8~9일 주말 동안 유모차를 몰고 나온 가족 단위 나들이객, 연인의 손을 잡고 온 커플 등이 1.7㎞에 이르는 여의도 윤중로를 가득 메웠다. 1일 시작한 여의도 봄꽃축제가 주말에 절정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짝 핀 벚꽃 아래에서도 시민들은 축제를 만끽할 수 없었다. ‘미세먼지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주말 이틀 서울 영등포구 대기오염물질 농도 등급은 한때 ‘좋음’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보통’(31~80, 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 기준, PM10 수치) 수준이었다. 하지만 윤중로 곳곳엔 까만색, 하얀색 마스크를 한 나들이객이 많았다. 미세먼지 농도를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 네 단계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31~80을 ‘보통’, 81 이상을 ‘나쁨, 매우 나쁨’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는 50 이상이 ‘나쁨’이다. 시민들이 미세먼지 ‘보통’이라는 기상예보를 믿지 않는 이유다.
8일 남자친구와 윤중로를 찾은 정향은(29·서울 관악구)씨는 습관처럼 마스크를 챙겨 나왔다. 정씨는 “평소에도 출퇴근할 때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닌다. 최대한 야외활동을 자제하려고 하는데 꽃구경은 하고 싶어서 나왔다. 오늘도 공기가 매캐한 것 같아 남자친구 마스크도 샀다”고 말했다. 김소라(27)·정상윤(31)씨 커플도 마냥 꽃구경을 즐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집에 아예 10개들이 마스크 한 상자를 사뒀다. 미세먼지 예보에 ‘보통’이라고 떴는데 수치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니까 너무 높게 나와서 마스크를 썼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저마다 ‘미세먼지로 인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8일 어머니와 함께 봄나들이 나왔다는 장희선(39·서울 신도림동)씨는 “미세먼지에 너무 민감해 오늘처럼 공기가 텁텁하고 뿌연 날은 밖으로 나오기도 싫다. 하지만 꽃구경 가자는 엄마 부탁 때문에 나왔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이면 학교 지시가 없어도 9살 딸 등교를 말린다. 엄마 입장에서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나온 권용준(62·인천 검단)씨도 “은퇴한 뒤 산책을 자주 하는데 마스크를 항상 끼고 다닌다. 대기 질이 너무 안 좋아서 창문도 잘 열지 않는다. 인천도 발전소가 있어서 서울 못지않게 미세먼지가 많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공포’는 시민들의 일상에 자리잡은 지 오래다. 연일 이어지는 미세먼지 예보에 시민들은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지은(33)씨는 지난달 집 베란다 쪽 창문에 ‘차량용 에어컨 필터’를 여러 개 연결해 부착했다. 미세먼지 탓에 일주일 넘게 환기를 못 하다 ‘우울해서 안 되겠다’ 싶어 마련한 대책이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마음이 조금이라도 놓이는 건 사실이다. 이씨는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세워주길 기다리다가 답답해 죽어버릴 것 같아서 고안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웃들과 ‘미세먼지 대책 카톡방’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구매한 미세먼지 측정기를 이용해 하루에도 수십번 미세먼지를 측정해 카톡방에 올리고 환기하기 좋은 시간대를 공유한다.
차량용 에어컨 필터 여러 개를 잇대어 창문에 붙인 모습. 이지은씨 제공
김보향(38)씨는 얼마 전 공기청정기를 사서 5살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기증했다. ‘공기청정기를 설치해달라’고 건의했지만 비용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무리 신경써도 당장 숨쉬는 공기가 탁하면 아이한테 바로 증상이 나타난다. 잠깐 외출했는데도 열이 나고 기침감기가 심해지는 걸 보고 특단의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며 “앞으로 유치원에도 보내야 할 텐데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황금비 박수진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