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의 한 도로에서 직진 차량과 좌회전하려는 차량이 얽혀 혼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마포구에 사는 노아무개씨는 2015년 10월 ‘아파트 입구에 좌회전 신호를 설치해달라’며 경찰에 민원을 넣었다. 시내에서 집으로 차를 몰아 오면 아파트 입구가 왼편에 보이는 데도, 무려 300m를 돌아야 진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164가구가 산다. 애오개역 주변 마포대로 중앙선을 잘라 좌회전 진입을 허가해달라.” 민원을 접수한 서울지방경찰청은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를 꾸려 이 안건을 심의했다. 심의위는 “마포대로 정체가 가중된다”며 부결했다. 노씨가 좌회전 신호 설치를 요청한 곳에서 300m 남짓 떨어진 곳에 마포대로 중앙선을 자른 좌회전 신호가 하나 있다. 마포경찰서로 진입하는 신호다.
좌회전 허가엔 명확한 기준이 없다.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판단하라’(경찰청 훈령 ‘교통안전시설 등 설치·관리에 관한 규칙’)가 전부다. 누군가의 시간은 줄여주지만, 누군가는 더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좌회전 신호에 설치 기준은 없고, 방법만 있는 셈이다. 마포경찰서로 진입하는 좌회전은 특혜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특혜 시비와 불만이 싹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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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매출에 직결 좌회전을 허용하는 ‘행정처분’은 경찰이 한다. 두 가지다. ‘중앙선 절선’과 ‘좌회전 허용’. 중앙선 절선은 중앙선을 자르고 좌회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처분이다. 이때 신호를 부여하지 않으면 ‘비보호 좌회전’이 된다. ‘좌회전 허용’은 이미 중앙선이 절선되어 있지만 좌회전을 금지해놓은 곳에서 좌회전을 허용하는 처분이다.
중앙선 가로지르는 좌회전
이용자는 편리해지지만
반대 차로 정체 일으켜
설치해달라 잇따른 민원
경찰서는 허용에 신중
신청 70%는 받아들여져
대부분 경찰서 입구 근처엔
진출입용 좌회전 신호 설치
승인 여부 기준 불투명
특혜시비·시민 불만 싹터
대형마트 같은 큰 상업시설은 좌회전 승인 여부가 매출과 직결된다. 부산시 부산진구에 있는 이마트 트레이더스 서면점은 “휴일에 교통 정체가 심하니 이면도로에 있는 주차장 출구 앞에 좌회전을 허용해 달라”며 지난해 3차례 부산지방경찰청과 부산진경찰서에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부산청 심의위는 지난달 열린 회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유턴을 할 수 있다”며 부결시켰다. 이마트 관계자는 “주변에 웨딩홀이 세 곳 있어, 주말엔 일대 교통체증이 심각하다는 주민 민원이 많았다. 이를 전달하는 차원에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의 도로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인천 계양구의 홈플러스 작전점도 2014년 10월 인천지방경찰청에 ‘서쪽 진출부 중앙선을 절선해 좌회전을 허가해달라’고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천청 심의위는 “홈플러스 동쪽에 나들목 사거리와 부평나들목이 있어서 교통량이 많다. 해당 지점에 좌회전을 설치하면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아진다”며 신청을 반려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일부 고객들이 ‘좌회전이 안 되니까 골목길로 들어가서 무리하게 차를 돌려야 한다. 오히려 주민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이야기해서 민원을 넣게 됐다”며 “중앙선이 절선되면 고객 차량이 큰 사거리까지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교통 정체가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대근 경찰청 교통운영계장은 “좌회전 허가는 신청자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대형마트 주변 도로엔 좌회전 수요가 많기 때문에 허가가 잘 나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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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셀프 특혜? 약 6㎞인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는 시내 방향 차로에 좌회전 신호가 두 번밖에 없다. 마포대교를 건너자마자 ‘마포음식문화거리’ 방향으로 한 번, 그리고 마포경찰서 방향으로 한 번이 전부다. 공덕오거리에도 좌회전 신호는 없다. 마포대로 시내 방향의 왼편 마포경찰서 주변에는 6개 단지 6609가구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그런데도 좌회전은 마포경찰서 진입용 하나뿐이다. ‘경찰만 특혜를 받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 대부분 경찰서 입구 근처엔 진출입용 좌회전 신호가 있다. <한겨레>가 이재정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살펴보면, 전국 경찰관서 270곳 중 236곳(87.4%)에 진출입용 좌회전 신호가 있다. 이면도로나 일방통행로에 면해 있어 물리적으로 좌회전 설치가 불가능한 곳만 좌회전 신호가 없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범인 검거 등을 위해 긴급하게 출동해야 하고, 민원인이 많이 드나들기 때문에 좌회전 진출입로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긴급히 ‘진출’할 경우는 많아도, 긴급히 ‘진입’할 일이 많은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했다.
물론 경찰도 지구대나 파출소 단위에선 좌회전 설치가 불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해 9월 “출동시간이 지연된다”며 강남구 역삼동 도곡지구대 앞 도로의 중앙선 절선을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지방경찰청 심의위는 “언주로는 이미 극심한 교통 정체를 겪고 있다”며 부결했다. 같은 시기 상봉파출소장이 서울중랑경찰서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에 신청한 중앙선 절선 건도 “교통사고 위험이 있다”며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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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청탁 소재였던 좌회전 좌회전 허용은 특혜 논란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말 전남 목포시에선 시의원 소유의 빌딩 앞 2차선 도로에 빌딩 진입용 좌회전이 허용된 것을 두고 ‘건물주인 시의원이 직접 민원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목포경찰서는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좌회전 때문에 주변 소방서와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지 재조사해 심의위를 다시 열기로 했다. 해당 시의원은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변 식당에서 나온 민원인데 내 빌딩 앞에 좌회전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고 말했다.
2002년 경찰청은 ‘교통안전시설 등 설치·관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면서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그 이전엔 경찰이 도로교통공단의 자문을 거쳐 허가 여부를 판단했다. 청탁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한 경찰관은 “과거엔 경찰청 간부에게 자신이 사는 가구수 적은 고급 아파트로 바로 들어오는 좌회전을 설치해달라는 권력자의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며 “하지만 2002년 심의위가 생기면서 부당한 외압이 걸러질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졌고, 이후론 청탁 자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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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회전 요청 70%는 받아들여져 좌회전 허가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비율은 대략 70% 정도다. <한겨레>가 경찰청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보면, 2012~16년 5년간 전국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에는 1만7631건의 좌회전 심의 안건이 상정됐고, 이 중 71.2%(1만2548건)가 가결됐다. 부결은 28.4%(5010건)였다.
서울 지역 안건 665건만 살펴보면, 부결된 103건의 사유는 △사고 위험(50건) △정체 가중(33건) △통행량 적음(8건) △추후 논의, 기재 안 됨(12건) 등이었다. 사고위험이 첫손에 꼽힌 부결 이유였다. 실제 정희원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연구교수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연구를 보면, 차량이 좌회전할 때 일어난 사고가 우회전할 때에 일어난 사고에 비해 2.3배 많았다.(경찰청·현대해상 사고데이터베이스 중 2014년 서울 지역 ‘차 대 사람’ 사고 2540건 분석)
좌회전 신호등뿐 아니라 교통 시설을 설치해 달라는 민원은 끊이지 않는다. 개개인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점도 이들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인이다. 경남 양산 단독주택에 사는 한 주민은 ‘좌회전해 집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게 중앙선을 잘라달라’는 민원을 연거푸 3번이나 냈다. 경남 양산경찰서 심의위는 그때마다 부결했다. 또 제기되면 일단 상정한 뒤 부결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 심의위는 부결된 안건이라 해도 민원이 접수되면 반드시 재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려시킬 수 있는 규정이 없다.
경찰은 이에 이미 부결한 민원이 달라진 내용 없이 다시 들어오면 접수를 거부할 수 있도록 오는 7월 관련 행정규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최대근 경찰청 교통운영계장은 “결과가 달라지기 어려운 민원 건을 심의위가 또다시 검토하느라 행정력이 낭비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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