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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역사다] 4·3사건 평화적 해결 위한 노력과 좌절

등록 2017-04-02 18:12수정 2017-04-02 19:02

김익렬(1921~1988)
1947년 제주. 경찰이 3·1절 시위에 총을 쏴 사람이 죽고 다쳤다. 서북청년단 사람들이 뭍에서 건너와 우익 테러를 저질렀다. 민심이 들끓자 이번에는 좌익 남로당이 편승했다. 1948년 4월3일, 무장대가 경찰서를 습격. 4·3사건의 시작이었다.

경남 하동이 고향이던 김익렬 연대장. 4월22일, 직접 경비행기에 타고 전단을 뿌렸다. 평화회담을 제안하는 내용. 4월28일, 김익렬은 참모 이윤락과 무장대를 만나러 간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였단다. 네 시간 만에 협상은 타결. 평화가 돌아올 것 같았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 5월1일, 오라리 마을에서 의문의 방화사건. 범인 박아무개를 잡고 보니 우익청년단 사람. 무장대의 짓으로 꾸며 휴전을 깨려 했다는 것이다. 5월5일, 미군정 수뇌부가 참석한 회의에서 경무부장 조병옥은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주장했다. 조병옥은 가족사까지 끄집어내어 김익렬을 인신공격했고, 회의는 주먹다짐으로 끝이 났다. 5월6일, 김익렬 해임.

얼마 후 ‘초토화작전’이 시작되었다. 제주 사람 삼십만 가운데 삼만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 3분의 1은 여성과 노인과 어린이, 전투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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