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해법’을 주제로 한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정책배틀’에 참가한 시민정책배원단과 패널, 스태프들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토론을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진보적 기술과 참여 민주주의가 만나 시민을 정책 주체로 만든 뜻깊은 행사였다.”(오지원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정책배틀’(정책배틀)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은 정책배틀의 특징으로 ‘시민정책배심원단’과 ‘실시간 투표 프로그램’을 꼽았다. 기존 토론회에선 ‘관람객’에 머물렀던 시민들이 ‘정책결정권자’로 변신하면서, 살아 있는 토론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또 실시간 투표 프로그램이 패널의 긴장감과 배심원단의 집중도를 한층 높였다고 했다. 정책배틀을 이끌었던 사회혁신 프로젝트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의 백승헌 이사장은 “광장의 촛불이 불타오른 이유는 우리 사회 의제를 결정하는 기관과 시민들 사이의 괴리, 불통 때문이었다”며 “시민이 사회 의제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쌍방향 정책개발 모델이 필요했다”고 정책배틀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손우정 바꿈 이사는 “민주주의가 국민의 선택권인 주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정책도 역시 국민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책배틀은 민주주의를 현실 모델로 실험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정책배틀은 박근혜 탄핵 촛불이 한창 불타오르던 지난해 11월 중순께 기획했다. 정권 교체를 넘어 대한민국의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시민이 함께, 시민이 직접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데 몇몇 시민단체가 뜻을 모았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민변, 비례민주주의연대, 참여연대, 빠띠, 바꿈이 참여했다. <한겨레>는 다음 스토리펀딩 ‘헬조선 리모델링 해볼까요?’를 열어 배심원단을 모집하는 등 후원자로 나섰다.
시민배심원단 방식은 바꿈이 제안했다. ‘숙의형 여론조사’라 불리는 공론조사와 추첨 민주주의 모델을 본떠 시민의 실질적 토론 참여를 보장해보자는 취지였다. 짧은 모집 기간(1개월)과 좁은 행사 장소(미디어 카페 후)를 고려해 배심원단은 신청자 중 50명을 무작위로 뽑기로 했다. 다만 나이와 성별, 지역 등을 고려해 다양성을 확보했다. 정책결정권자가 된 배심원단은 다른 토론회의 방청객과는 확연히 달랐다. 박선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사전에 정책에 대해 꼼꼼히 살핀 흔적이 분명했다. 패널 질문은 날카로웠고 배심원 심의 때도 논리정연하게 의견을 밝혔다. 다른 의견에 대한 공감도 매우 컸다”고 말했다. 장예정 비례민주주의연대 활동가는 “각종 토론회 중 가장 열띠고 활발한, 살아있는 토론회였다”고 평했다. 박영민 바꿈 활동가는 “갑자기 참여하지 못한 배심원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미리 상황을 알려 다른 배심원이 대신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참여도와 책임감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배심원단의 실시간 투표 프로그램은 민주주의 확산을 꿈꾸는 기술 개발 벤처 ‘빠띠’가 개발했다. 빠띠는 ‘투표하면 실시간으로 집계해 보여준다’를 원칙으로 세웠다. 스마트폰을 통해 수시로 투표를 바꿀 수 있도록 하고 댓글을 남기면 그 내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권오현 빠띠 대표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선 선거와 투표에 무관심한 회색 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참여를 이끄는 게 중요하다”며 “작은 기술이지만 직접 민주주의를 재밌게 체험하면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투표로 실시간 의견을 밝히자 전문가 패널들과 배심원단이 모두 바뀌었다. 패널들은 자신의 쪽으로 표를 끌어오기 위해 배심원의 눈높이에 맞춰 더 설득력 있게 정책을 설명했다. 배심원은 양쪽 패널과 다른 배심원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더 진지하게 판단을 내렸다.
오지원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선 국회의원이나 전문가 일부만 개헌이나 정책에 참여하는데 유럽에서는 전자정부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최대한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정책배틀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백승헌 바꿈 이사장은 “정책배틀은 수동적인 여론조사보다 훨씬 우월한 시민참여 방법이라는 게 입증됐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계속 발굴해 정책배틀을 꾸준히 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