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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민주주의 개혁 1순위…시민들 ‘검찰’ 전문가 ‘불평등’

등록 2017-02-13 10:07수정 2017-02-13 11:32

[1987~2017 광장의 노래]
시민 1000명 전문가 23명 설문

시민 생각
검찰 공정성·독립성 확보 시급
“검찰은 힘없는 약자만 때려잡아”
“상명하복으로 제 식구 감싸기 급급”
두번째 과제 ‘직접민주주의 강화’

전문가 생각
경제 불평등이 최대 걸림돌
“다수 국민 고통 임계치 다다라”
불평등 원인으로 ‘재벌’ 지목
“여야 막론하고 재벌 의제 실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검찰의 권력이 너무 강하므로 수사권은 경찰에게로 이양할 필요가 있다.”(37·대전·공무원)

“경제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절망이 한계를 넘어서 사회의 해체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위급한 상황이다.”(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한겨레>는 촛불 이후 한국 사회에 필요한 개혁과제를 선정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다양한 세대, 지역, 직업의 시민 1천명과 전문가 23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은 최우선 개혁과제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19.9%)를 꼽았고,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 완화’(30.4%)를 선택했다. 시민들은 두번째 과제로 ‘시민의 직접 정치참여’(13.7%)를 택했고,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 완화의 필요충분조건인 ‘재벌개혁’(17.4%)을 골랐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해 권력을 견제해야 하며,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해 고장난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반해 전문가들은 민주주의 왜곡의 근본적인 원인인 경제적 불평등과 재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민들이 검찰을 개혁 대상 1호로 지목한 이유은 ‘권력의 시녀’ 노릇을 자임했던 과거의 행적 때문이었다. “현재는 힘없는 약자를 때려잡는 그런 검찰이지 않은가?”(47·서울·기타) “국민 누구라도 다 알 듯한 일을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본인들만 아니라고 하는 게 참 우습다.”(42·경기·주부)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대통령이 잘못한 일을 검찰이 제대로 파고들어 조사할 수 있을까.”(32·경기·주부) “상명하복의 위계 구조 속에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40·세종·기타) 대안으론 검찰총장 직선제와 경찰 수사권 독립, 견제·감시 기구 창설, 권위적 조직문화 개선 등을 제시했다.

촛불 이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국민투표, 시민의회 등 다양한 제도적 변화 요구도 많았다. “(시민이) 직접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대통령이든 단지 대리인일 뿐이다.”(46·부산·자영업) “국회의원, 시장들과 에스엔에스 등 온라인에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23·서울·대학생) “직접 국민투표를 시행해 중대한 일들은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32·서울·사무기술직) “국민(참여)재판이 있는 것처럼 어떠한 (국가) 정책을 실시하고자 할 때 일정 비율의 국민이 참여해 찬반 의견을 내고 반영해야 한다.”(30·경기·기타)

반면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민주주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했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는 유사 파시즘적 상황은 결국 경제 불평등의 심화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박탈감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다수 사람들의 고통은 임계치에 왔고 분단이라는 특수성, 중국과 미국의 부상 등의 문제로 한반도의 상황은 바야흐로 일촉즉발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국민의 민주적 참여 의지는 퇴보한다”고 말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으로 재벌을 지목했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삼성을 위시한 재벌들이 대통령 최측근을 관리하면서 대가성이 명백한 자금을 지원하고 동시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허가와 법률 제정 등을 챙긴 것”이라며 “(지금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주류 정당들은 사실상 다 재벌의 의제를 실현해왔고 그 과정에서 각종 (경제·사회적) 격차들이 악화일로로 향했다”고 말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도 “재벌독재로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의 정글이 됐다”고 동의했다.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은 “광장의 촛불이 여야가 서로 경쟁하면서도 대의제 민주주의와 친자본 경제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 협력해왔다는 걸 꿰뚫어봤다”며 “이제 새로운 사회·경제 구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4·19세대의 부끄러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철학자 김만권씨 기고

광장 이후 어디로 갈 것인가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 /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 몇 개의 마른 잎 (…)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시인 김광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혁명 이후 새로운 삶을 두고 결론을 내지 못한 4·19 세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어쩌면 우리에게 혁명은 늘 그런 것이었다. 변화를 원하는 분노한 사람들의 허망한 마무리. 혁명이 끝난 자리에 경멸했던 정치엘리트들이 다시 돌아와 제자리를 찾고,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는 일의 반복.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이끌어낸 ‘시민들의 광장혁명.’ 그런데 가는 곳마다 들리는 우려의 목소리는 시절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광장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김만권 정치철학자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지난 12월 광장은 시민들에게 해방의 공간이자 자유의 공간이었다. 가는 곳마다 공공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공적 영역은 촛불 아래 환하게 밝혀졌다. 일상에서 엘리트들에게 정치를 맡겨 놓고 있던 시민주권자들이 깨어나 박근혜와 최순실 무리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 성과는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 소추로 이어졌고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뿐이다. 탄핵 인용이 되고 나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단도직입적으로, 고장 난 나라를 고쳐 쓰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시티즌십(citizenship)이라 부르는 시민권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시민들(citizens)이 타고 있는 낡고 삐걱거리는 이 대한민국이란 배(ship)를 고쳐 쓰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배를 만들어 갈아타고 싶은 것일까?

만약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가 12월을 성공한 시민혁명이라 부르고자 한다면, 새로운 배를 만들어야만 한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이 그러했듯 성공한 혁명은 새로운 헌법을 쓴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지금의 개헌 논의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그 개헌에 나설 이들이 결국 낡은 배를 이끌고 있던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87년의 실패 역시 엘리트들이 급조해 헌법을 썼다는 사실이고, 87년 헌법은 민주적 유산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일까? 만약 개헌에 반대한다면 여전히 낡은 배에 남아야 하고, 최선의 선택은 이 낡은 배를 고쳐 쓰는 일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모두에 관여했던 토머스 페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 국가를 구성하는 일은 정부(government)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정부를 구성하는 인민(a people)의 행위다.” 페인의 지혜를 빌리자면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인민 스스로가 하나가 되어 나서야 한다. 쉽게 말해 헌법은 새로이 만드는 수준이 되어야 하고, 전면적인 시민참여를 통한 개헌이어야 한다. 헌법을 기술적으로 쓰는 일은 법에 탁월한 엘리트들의 몫일지 몰라도, 헌법에 필요한 헌법의 본질들과 그 조항을 만드는 일은 시민들의 몫이어야 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스스로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가?

현실적이라 자부하는 이들, 심지어 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이 헌법을 만드는 일에 참여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아직도 스스로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가?” 아날로그적 정치형태로만 본다면 우리 시민들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 및 법 엘리트들이 쳐 놓은 전문지식의 장벽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시민들에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여 ‘온프’(onff)라는 새로운 정치공간을 열어가고 있는 ‘디지털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은 권력의 밖에서 활동하며 시민들과 협력하길 원하는 정치 및 법 전문가들을 시민들과 연결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곁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지식인들과 협력할 수 있는 개방된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시민들 곁에서 우리가 가야 할 바를 제도와 정책으로 제안하고 함께 논의하고자 하는 지식인들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다만 광장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사회적 약자들과 평범한 시민들의 옆에 서야 하는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광장 이후, 과거와 미래 사이

광장 이후 시민혁명을 원했던 이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탄핵심판과 특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듯 과거에 남고자 하는 세력들의 결사적인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 선 정치엘리트들은 고개를 조아리고 낡은 시스템을 제대로 고쳐놓겠다는 약속으로 비난을 피하고 있다. 이들 말대로라면 정권교체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저항을 과소평가하고 이런 약속을 너무 믿는 순간, 여전히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모는 사람들은 세월호에 이어 국가 시스템을 침몰시키거나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질 것은 과거뿐이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면 수구세력과 재벌들이 다시는 점령할 수 없는 정부의 형태를 구성하고 이들이 발들일 수 없는 새로운 선거제도를 만드는 일부터 해야만 한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주체는 결국 변화를 원하는 시민들이다. 만약 4·19 세밑에 모여서 결론을 내지 못했던 젊은이들처럼 되고 만다면, 우리의 혁명은 또다시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탄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낡은 과거에 남을 것인가? 새로운 미래로 갈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면 이 일은 정부가 아닌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야 한다. 실패의 두려움은 현상유지에 적합할지 몰라도 변화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애물일 뿐이다. 변화는 용기 있는 자의 몫이고 미래는 현재의 행위에서 시작된다. 이제 도래할 미래를 위해 우리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릴 또 다른 ‘광장’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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