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뭔가요?” 지난해 11월~12월초 강릉·광주·대구·대전·서울 등 전국 5곳에서 20대 대학생 30여명에게 물었습니다. 단군 이래 가장 높은 학력, 치열한 경쟁과 높은 사회 진입 장벽, 그러함에도 가장 돈이 없는 세대. 20대는 답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내게 피였던 적이 없다.” “알바비는 수혈이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나’를 바탕으로 가상의 대학생 한 사람을 추출했습니다. 1993년생, 24살, 대학교 4학년, 취업준비생, 여자, 이름 김혜민. 김혜민의 언어 한 문장, 한 문단마다 각기 다른 20대 서른 명의 언어가 담겨 있습니다. 김혜민들입니다. ‘1987~2017 광장의 노래’ 3부 2회는 ‘김혜민들’의 언어를 볼륨 높여 듣기로 했습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밥이 아니었습니다. “먹고살기 바쁜데 나라까지 구해야 하느냐” “대통령 바뀌면 나아지느냐”는 항변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대의)민주주의는 결국,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살 수 있도록 인류가 고안해낸 제도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민주주의가 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한겨레>는 스토리펀딩 ‘헬조선 리모델링 해볼까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책배틀’ 시민배심원단으로 참여해 더 나은 대한민국을 설계할 분들을 기다립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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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봤자, 인생 좋은 거 하나도 없단다. 너만 다치고 엄마, 아빠 고생하고 식구들만 슬프단다. 네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아빠는 다 보았어.’
“아버지는 1989년에 대학을 다녔다. 열혈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그 시대를 좇아다닌 사람. 대학을 다니던 1989년에 부산 동의대 사태가 터졌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빠 친구가 감옥을 갔다 나왔다고, 그때 다쳤다고. 시위가 있다고 하면 친척들까지 서울로 전화를 걸어와. ‘나서지 마라, 걱정된다. 네가 나설까봐.’ 아빠에겐 강한 혐오가 있다, 보상받지 못했으니까.
예전에 만난 학원 선생님이 연대인가, 고대 출신이었는데 이런 이야길 해줬어. ‘선생님이 대학 다닐 때 운동을 했었다.’ 집회에 자주 나갔는데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다고. 시위 나갔다가 친구가 짱돌 맞아서 넘어졌는데, 울고불고 경찰에 화염병 던졌는데, 알고 보니 그 짱돌은 뒤에서 던진 거였다고. 시위대가 던진 돌을, 경찰이 던졌다고 뒤에 있는 학생이 거짓말을 했다고. ‘다 그렇게 속고 속이는 거니까 절대 믿지 마라, 선동되지 마라.’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20대는
왜 민주주의에 무관심하거나 냉소하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알게 된다
기성세대가 만든 ‘정글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민주주의도 밥이 돼야 한다는 걸
나에겐 세상을 뒤집을 용기도, 시간도 없어. 부모 피 빨아먹고 사는데, 부모님이 도와줘서 서울에서 살고 있잖아. 한 친구는 알바비가 통장에 들어오면 수혈받는 기분이 든다고 했어. 돈이 피 같은 거야. 민주주의가 나한테 단 한 번 피였던 적이 있었나? 어떤 이득을 주는데? 왜 숭고한 가치인데? 정말 싫은 건, 그렇게 물으면 지성인이 아닌 사람으로, 민주 시민이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는 거야, 짜증 나게.
생활도 생존권도 보장돼 있지 않은데, 태평하게 시위에 적극 참여한다고? 가서 옳은 소리, 좋은 소리 하겠다고? 생계가 안 되는데 집회에 가는 건 정신 빠진 소리야.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고. 알바랑 집회랑 겹치면 당연 알바 가야지. 먹고살기 힘든데 정치적 행위를 기대해. 너네, 왜 정치적으로 나서지 않아? 왜 연대 의식이 없어? 왜 공동체에 관심을 갖지 않아? 시간이 없으니 관심을 못 갖지. 의식 없는 것으로 취급되면 되묻고 싶어. ‘좋은 소리 많이 하셔서 세상 뭘 바꾸셨는데요?’
“동성로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했는데 부모님께 이야기했더니 ‘너 할 일도 많은데 뭐하러 거기까지 가냐?’고, 친구들은 ‘나 하나 살기 바빠 죽겠는데 그럴 시간이 어딨냐’고. 울산대가 시국선언을 하긴 했는데 준비 과정에서 나오는 반응이, ‘그럴 바에는 자기소개서 한 줄이라도 고쳐 써라’ 그런 이야기가 되게 많이 나오더라고요.”(대구대 ㄱ)
월세 내야 하고 학점 받아야 하고 스펙도 쌓아야 해. 정치를 접하려면 뉴스를 봐야 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물리적 시간이 안 돼. 시간이 없어.
48만원을 내면 사흘간 모의 면접을 보는 어마어마한 학원이 있는 거 알아? 이런 돈을 내야 하는 거, 우리 탓이 아니잖아. 우리를 취직시켜 주지도 않을 거잖아. 그래도 인생을 모험으로 살 수는 없어. 고층 건물 층층마다 최종면접을 앞두고 답을 찾는 우리 같은 애들이 있어. 합격을 하느냐고? 알 수야 없지. 내가 안 다녔으니까. 고액 면접학원까진 다니지 않았지만, 공부해서 정답을 말하면 채용 마지막 단계까진 가. 최종면접 합격은 안 돼도.
최종면접을 준비하느라 월세방 계약이 끝났는데도 다음 방을 알아보지 못한 적이 있어. 계약이 끝난 날, 급하게 막 돌아다니고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어. 할아버지가 위독하니까 집에 내려오라고. 전화 끊고 5분 뒤에 다른 전화가 왔어.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고. 와, 진짜. 바닥에 떨어졌어. 한 달 뒤에 또 다른 회사 최종면접을 갔어. 뭐라도 해야겠더라고, 절박하니까.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어. ‘위독한데도 왔습니다. 제발 뽑아주세요.’ 근데 떨어졌어.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거야. 다른 대답을 찾으려 실험을 하기 시작했어. 면접에서 내가 갑질을 한다면? 가고 싶었던 직종의 회사는 아닌데, 작은 회사 최종면접에 가서 ‘채용 시스템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왜 채용공고랑 다르냐고, 이거 알려지면 어떻게 되느냐’고. 면접 끝나고 인사팀장이 날 따라왔어. 쫄았나보지. 신기하게 합격이 되더라고. 가고 싶었던 직종의 회사는 아니라서, 안 간다고 했는데 갑질이 먹힐 수도 있네? 싶었어. 나중에 가고 싶었던 회사 면접장에 가서, 핏대 세우면서 내 이야길 했어. 정치적 문제를 물었는데, 내 생각대로 말한 거지. 떨어졌지만 너무 통쾌했어. 굴복하지 않았다는 거.
최근에 또 다른 회사에 원서를 냈거든? 사장님을 웃기면 합격이라는 소문을 들었어. 최종면접장에 가서 보니까 서울대, 해외 명문대, 미모가 대박인 애, 이런저런 애들을 빼면 내가 졸업한 대학으로 갈 수 있는 자리는 딱 한 자리. 사장님을 웃겨야 하니까 성대모사를 준비했지. 사장이 날 보자마자 첫마디가 이랬어. ‘얼굴이 왜 그래?’ ‘네?’ 완전 얼어갖고. 첫 질문에 다 말린 거야. 납득이 전혀 안 됐어. 입사와 얼굴의 인과관계가 뭐지? 지금은 면접관 표정을 보면서 그때그때 답을 바꿔.
대학에 와서 보니까 시키는 대로 했던 때가 더 좋더라고. 고등학교 때보다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스무살이 되면 책임질 게 너무 많이 생기니까. 제대하고 나서도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중압감과 부모님 은퇴하기 전에 빨리 자리 잡아서 결혼도 해야 한다는 것도 의무감이 들잖아.
성공에 대한 환상도 좀 있지. 어릴 때부터 대학 잘 가면 성공한다고 배웠어. ‘그러려면 외고를 가야 한다, 놀지 말고 공부만 하면 된다.’ 인생에서 다른 얘기를 들어본 경험이 없어. 대학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그러더라고. ‘풍물패 같은 데 들어가지 말아라.’ 상징하는 바가 엄청 크지 않아, 풍물패라는 게? 정치외교학과에 지원하겠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그랬어. ‘기업에서 안 좋게 보는 게 아니니?’
대학 입학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는 정치 참여하는 걸 불온시하는 분위기였어. 입학했을 때 이미 운동권이 쓰러져 가고 있었고. 친구들이나 한두 학번 선배들이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공정성이 명백하게 침해됐다고 느낄 때지. ‘나는 이렇게 노력했는데 보상받지 못하는구나.’ 어떤 친구는 (서울) 강북에서 외고 나온 애들의 정체성이라고.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나 강북에서 외고 나온 애들이 공정성이 침해되는 걸 못 참는다고.
사실 다른 부분은 그렇게 보수적이진 않지만, 교육 문제에는 보수적이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돼. 좋은 대학 가면 성공한다고 배웠으니까. 이번 최순실 사태 때 공직자 아닌 사람이 공직자도 휘두르지 못하는 크기의 힘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불공정하다고 느끼잖아. 대학 얘기를 하면, 공정성의 문제도 있지만 나는 보수성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 이번 사태에서 분기점이 된 것도 정유라잖아. ‘우리가 왜 저런 애랑 수업을 같이 들어야 해?’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입학했는데 내 위치를 깎아내려?’ 미래라이프대 사업 철회 요구하면서 이화여대 본관 90일 점거가 가능했던 것도 그런 거 아닐까?
“(특정 정치인들을 지칭하며) 두 쪽 다 좋은 사람들 아닌 거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을 했냐고요? 선거 때 고등학교 선생님한테 누구 뽑을 거예요? 물으니까 선생님이 ‘그래 봤자 진흙탕 싸움인데, 다 나쁜 놈들이지’라는 한마디에….”(전남대 ㄱ)
정치에 대해서도 혐오가 있지. 그냥 싫은 거? 내가 이용당하는 느낌? 정치적인 것은 위험해. 운동권은 치고 들어왔다가 책임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 다치게 해. 이런 인식?
운동권을 차단해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이 대학엔 있지. 불순하니까.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만 봐도 그래. 고려대는 시국선언을 했는데 총학이 시국선언문에 ‘백남기는 죽이고 최순실을 살렸다’고 썼다가 난리가 났어. 고파스(고려대 학생 커뮤니티), 대나무숲에서. ‘백남기 (농민) 건을 왜 엮냐, 우린 너희와 정치색이 다르다.’ ‘너네가 총학으로서 대표성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정치적 주입을 하느냐?’ ‘총학을 탄핵하자’는 얘기까지. 세월호 노란 리본을 금지한 대학도 있고. 이대는 첫번째 기자회견인가? 그때 노동자연대 소속 애가 인터뷰하려고 올라갔다가 난리가 났잖아. 다들 마스크 썼는데 걔 혼자 마스크를 안 꼈다고. 밑에서 내려오라고 난리가 났어. 니가 왜 올라가냐, 운동권인데. 나머지 학생은 ‘순수한’ 이화인인데. ‘정치적’이라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배제하라는 거야. ‘순수’하게 가라는 거지.
“군대 가면 사상 교육을 엄청 해요. ‘우리 주적은 누구인가?’ 질문을 해요. 저는 미국이라고 써서 냈는데 미국 쓰는 사람만 계속 질문이 되돌아오더라고요. 결국 알아서 북한으로 바꾸게끔 하는 거죠. 그 기억이 아직도 강해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그런데 이런 얘기 하면 ‘빨갱이’ 되는 거죠.”(강릉대 ㄱ)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난 참 별로거든. 민주화 단계부터 지금껏 여전히 진정성 싸움이야. 누가 더 순수하고, 누가 더 진정성 있느냐? 정치를 우리는 글로만 배웠고, 관념적으로 알고 있고, 경험도 없고, 어떤 건지 모르는데. 사람들은 정치를 ‘순수성 싸움’이라고 믿는 것 같아. 순수한가, 아닌가? 독재냐, 아니냐? 국가랑 결혼한다고 말을 해야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니까. 그렇게 순수성을 검증받아야 하는 세상도 불행한 것 같아. 봉건 사회도 아니고 선명성 경쟁만 하는 거지.
대학에 입학한 뒤 처음 집회에 나간 적 있어.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치 어쩌구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는데 입학한 지 두달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판단해? 선배가 옆에서 ‘넌 왜 안 해?’ 말하더라고. 그 질문이 폭력적으로 느껴졌어. 집회에서 쓰는 그들의 말은 일상 언어가 아니야. 울부짖으면서 얘기하고, 집회하면 민중가요 부르면서 핏대 올리고 목 쉬고, 대자보를 쓸 때는 명조체로 써야 하고. 진지충이지.
근데 잘 모르겠더라. 집회에 나가면 이야기, 서사가 없이 결론만 있어.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그 속에 있다는 안온감이 들었어. 그게 참 어색하고 싫어서 며칠 나가다 가지 않았어. 나중에 운동권 아닌 친구들이 묻더라고. ‘왜 해?’ 근데 내가 설명이 안 되는 거야. 엄청 당황이 되더라고.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운동하는 사람들은 전체주의적이고, 하지 말라는 사람들은 하지 말라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이들은 다르지만 같은 모양이야. 이게 민주주의인가?
“행사 진행 아르바이트처럼 한 적이 있어요. 서울 출장 간다고 해서 지원했다가, 어느 진보단체 창단식에서 진행요원으로 일한 거죠. 우리나라 진보 세력이 정말 별로라고 느낀 게, 시민의식이 결여됐다고 해야 하나? 참여한 사람들 중에 그 안에서 높은 사람 중심으로 비벼대느라 바쁘더라고요.”(충남대 ㄱ)
시민사회계에 대한 거부감도 크지. 어느 진보단체 창단식에 진행 요원으로 일하러 갔다가 진보 세력이 정말 별로라고 느낀 게, 시민의식이 없더라고. 단체의 장이나 당 대표 같은 사람들한테, 높은 사람 중심으로 참여자들이 비벼대느라 바쁘더라고. 일반 회원은 뒤쪽에서 멀찍이 그냥 앉아 있고 앞에는 원탁에 음식 놓고 유명한 사람들 대접받으면서 앉아 있고. 권력자에 대한 태도는 다 똑같구나. 거기서 전자 투표기를 돌리고 회수하는 일이 내 역할인데, 일반 회원들은 스스로 수거도 하고 일도 도와주는데 브이아이피(VIP)들은 자리에 투표기 놓고 화장실에 가거나, 그 집계기도 비싼 거였는데, 브이아이피 자리에서 집계기 하나가 분실됐어. 재야 인사나 운동권도 고루하거나 자본화되어서. 자유주의적 가치도 없고. 거칠게 말하면, 자기들 좋은 걸 하는 거지. 본인이 독재와 싸웠던 경험만 갖고, 그 시간에 아직 사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설득이 안 돼. 386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독점해버렸다고 생각해. 민주화 단계에선 독재 정권이라는 큰 적이 있었겠지만 그 이후는 목표를 조정하고 싸움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방식도, 내용도 발전이 없어. 내가 학교 일원으로 퉁쳐지는 게 아니라 ‘나’로 살고 싶은데 그걸 못하고 있어. 내가 멍청해서 그런가?
아버지 세대나 내 세대나 시대는 다르지만 똑같은 것 같아. 떠들면 맞고 튀어나오면 때려서 집어넣고. 이런 것은 고쳐주지 않으면서 민주주의라는 말만 하고 있어. ‘입 진보’도 똑같지. 운동하는 청년들, 박정희 대통령 엄청 싫어하잖아. 내가 물었어. 너, 박정희 대통령 때 살았어? 정책 뭐 아는데? 잘 몰라. 몇 번째 대통령인지, 집권기가 언제인지도 몰라. 긴급조치 9호도 몰라. 모르면서 싫어해. 모르면서 하는 ‘입 진보’가 제일 싫지.
“텔레비전 ‘슈스케’(슈퍼스타K) 보면 13만명이 지원해서 1명만 1등 하고, 나머지 12만명은 다 탈락하는 시스템인데. 탈락자들은 자신의 기량을 아쉬워하고 탓하지만 1명만 성공시키는 것에 대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잖아요. 우리 사회에 이게 녹아들고 이제 우리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전남대 ㄴ)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는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어. 서울대 애들이 면접에서 나를 떨어뜨리고 합격하는 것 같고. 학벌 때문에 떨어진 것 같고. 민주주의 가치를 얘기하는 친구들한테 어설픈 민주주의보다 애정어린 독재가 백배 낫다고 입에 달고 살았어. 책에 나온 얘기야. ‘니네가 민주주의 얘기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얘기해봐야 의견 조율 안 되고 인생 망한다.’ 팀플(팀플레이어) 하다 보면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 알게 되지. 그런 자조 정도가 현실에서 인식하는 민주주의야. 나는 애초에 강의 계획서를 보고 팀플을 하는 수업은 다 빼는 편이야. 차라리 혼자 과제를 일주일에 2~3개 내고 말지.
민주주의가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먹고살 만하니까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좋은 대학교 다니는 친구들 보면 대부분 가정환경이 좋아. 그들은 부모님 양쪽이 모두 대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 정치 교육을 받았어. 그런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진지하게 할 수 있지? 저게 가능한 생각인가? 싶더라고. 어떻게 돈보다 민주주의가 소중하다고 할 수 있지? 계속 물어봤어. 있어 보이는 척 그러는 거 아니냐, 책에 나온 얘기 말고, 니 마음의 목소리를 얘기해봐라. 그 친구 얘기를 들으면서 교육에 따라 다를 수가 있구나, 싶었어.
대학에는 진보적 가치를 숭고하게 생각하는 집단이 있는 반면 자본을 숭고하게 생각하는 집단이 있지. 반지성주의라고 해야 하나? 우리 세대에겐 그런 게 있어. 모르면 어쩌라고? 나보고 어쩌라고? 그런 거. 뭔가를 배우라고 하면 우리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선비질, ‘십선비질’에 대한 거부감이 많지. 좋은 말, 옳은 말, 바른 소리 듣기 싫은 거. 최순실-박근혜 사태 터지고 시국 선언문이 대학별로 쭉 나왔는데 다운을 받아서 평가를 해 봤어, 진지하게. 얘들은 알고 쓰나? 서울대 총학이 공화국, 공화정을 제대로 구별해서 썼는지 아닌지. 어떤 대학이 표현을 잘못 쓰면 ‘아는 게 없네, 알지도 못하면서 선비질 하네’ 싶지.
‘언피시’(unpolitically correct·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에 대한 환호가 있어. 커뮤니티에서 장애인이나 여성 혐오 관련 글에 웃지 않고 ‘여성 혐오 아니냐’라고 정색하면 ‘십선비질하네’, 그러잖아.
민주화 운동은 대부분 90년대 초반에 끝났고 나는 정리가 됐을 때인 90년대 초반생이잖아. 아주 어릴 때 아이엠에프(IMF) 터졌고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압박도, 환상도 있어. 내가 노력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입신양명할 수 있겠구나. 공정성에 대한 환상이 있지. 경제적 압박을 거치면서 살았기 때문에 돈에 대한 욕심이 있어. 내 것을 뺏기면 안 되잖아. 정치가 나한테 해준 것은 없지 않아? 우리가 민주화 운동 한가운데 있었으면, 운동을 하면 민주화가 되는구나 알았겠지만.
“한국방송진흥공사라는 공공기관에서 대학생 기자단을 했었는데,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아이템을 다뤄보려고 하면, 위에서 안 된다고 하면서 전부 ‘킬’ 당했거든요. 알아서 눈치 보기, 이런 게 너무 심한 것 같아요. 학생들도 그 분위기에 금방 적응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관종’(관심 종자)이라 여기고, ‘쟤는 일상에서 왜 저런 이야기를 해?’ 반응하니까.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정치 이야기를 하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숙명여대 ㄱ)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사익은 안 챙기고 공익만 챙길 수 있어?’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공익만 챙길 것 같다고 얘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왜나면, 솔직히 말해서, 금수저도 아니고, 집에 뭐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좀 더 돈이 많아지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 타면 행복해지는 거니까.
나는, 삶이 알바야. 영어 학원에서 강사 알바 하나 하고 있고, 과외는 한 명 가르치는데 일주일에 3시간씩 2번 해. 방학 때는 마트 행사 알바도 뛰고. 그게 시급이 세거든. 과제에 알바에 취직 준비 하다보면 한 학기는 금방 가지.
내년에는 연애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취업 준비를 제대로 할 거면. 연애가 병행이 안 되니까. 예전에는 주변에 공부한다고 연애 포기하는 애들 보면 ‘왜 저러지?’ 했는데, 공부를 하려면 잘해주기도 어려울 테고. 포기하는 게 맞을 테니까.
학습된 무기력, 그런 게 있는 거 같아. 바빠 죽겠는데 우리가 왜 나라까지 구해야 하나, 그런 얘기 많이 하지. 삶에 대한 피로도가 높으니까 굳이 사적 자리에서까지 토론하고 싶지 않지. 최순실에 대해서도 왜 이렇게 됐고, 뭐가 문제이며, 그럼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냥 ‘호스트바 얘기 들었냐?’ 정도?
나는 민주주의가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거라 생각하거든. 재잘거리든, 집회에 나가든 아니든, 형식은 상관없이. 어떤 회사 인턴 할 때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녔어. 꽤 오랫동안. 인식도 못했어. 그 회사 선배가 ‘이 리본을 떼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왜 떼야 하냐고 하니까 ‘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해. ‘진짜 나’와 ‘사회가 원하는 나’가 일치하지 않아. 계속 괴리를 느끼지. 이상하게 너무 바른 소리만 해도 비판받고, 너무 저열한 소리만 해도 비판을 받아. 사람들은 적절하고 튀지 않고 무난한 수준을 기대하는 것 같아.
“민주주의는 제게 수동태예요. 누군가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스스로 성취한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죠. 누가 이뤄낸 것에 고마워해야 하고, 지키지 않아 반성해야 하고.”(강릉대 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젊은 세대가 패러디를 하는 게 난 너무 좋고 재밌거든. 살면서 대통령 패러디 사진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걸 처음 보잖아. 그런 얘기를 나이 든 선배에게 하면 ‘너희들은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 아, 이건 예전 이야긴데 ‘너네 최장집 교수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읽어봤냐’는 선배도 있었어. ‘그것도 안 읽어보고 민주주의를 논해? 풋(비웃음)’ 이렇게. 내가 그것까지 읽어야 하나? 싶더라고. 최장집 교수 책은 일개 개인의 의견인데, 그걸 바이블로 삼아야 하나? 되게 신성시해. 그걸 신성시하는 문화, 공동체가 있잖아. 민주주의는 나한테 수동태야. 누군가 이뤘지만, 내가 이룬 것도 경험한 적도 없으니까.
이상하게 계속 얘기하게 되네. 그런데 이런 말을 계속해도 되나? 이거 기사 나가요?”
강릉·광주·대구·대전·서울/박유리 정은주 노현웅 김남일 기자 nopimul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