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략선이라는 말이 있다. 사사로울 사(私), 노략질할 략(掠). 정부와 계약을 맺은 채 적국의 배를 공격하는 민간 선박을 이른다. 면허 받은 해적, 해군력의 아웃소싱. 대표적인 인물이 엘리자베스 1세와 계약을 맺은 프랜시스 드레이크. 에스파냐 배를 약탈하느라 세계 일주까지 했다(1577~1580년). 사상 두 번째 세계 일주이자 살아서 돌아오기로는 첫 번째 선장.
적국 에스파냐의 재산을 빼앗았고 일부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상납. 공을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해적이자 노예상인이 이름에 ‘경’(sir)이 붙는 귀족이 된 것. 에스파냐 정부는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1587년에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 ‘아르마다’가 출정하기 직전 카디스를 습격하여 물자를 불태웠다. 개릿 매팅리의 책 <아르마다>에 따르면 이 일이 훗날 에스파냐의 패배에 결정적 계기가 된다고. 1588년 아르마다가 영국을 쳐들어올 때 화공법으로 타격을 입힌 것도 그다. 해적이 귀족이 되더니 나라까지 구했달까. 이후로도 대서양을 누비다 숨을 거둔다(1596년 1월27일). 파나마 앞바다에 수장. <비비시> 보도에 따르면 요즘도 그의 시신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글 김태권 만화가, 1면 일러스트 오금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