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운동 지도자였던 그가 반민족행위에 앞장섰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최린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1. 최린과 손병희 - 일본 유학 중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와 교유. 손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에 감화되었다고. 그러나 처음부터 이념 없는 야심가였다고 보기도 한다.
2. 최린과 민족대표 -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 낭독을 주도.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 그러나 재판과 옥살이를 거치며 변절, 세상에 충격을 줬다. 결국 다른 운동가까지 낯이 깎인 셈. 한용운은 최린을 퍽 경멸했다고 한다.
3. 최린과 나혜석 - 1928년 파리에서는 나혜석과 사랑에 빠진다. 당대의 스캔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남편과 이혼하고 힘들어하는 나혜석을, 정작 최는 모른 척했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4. 최린과 변영로 - 1940년 전후로는 적극적 부역, 공분을 샀다. 젊은 날의 변영로가 술에 취한 척하고(정말로 취했을 수도!) 최의 바둑판을 엎어버린 사건이 있다.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았다고, 훗날 변영로는 회고. “최에게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었을까.”
5. 최린과 반민특위 - 해방 이후 우여곡절 끝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결성. 1949년 1월13일에는 최린을 체포. 법정에서 최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진정성은 보였다는 평가. 물론 때늦은
후회였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