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나는 역사다] 1월13일의 사람, 반민특위에 체포된 최린(1878~1958)

등록 2017-01-12 20:03수정 2017-01-12 22:31

독립운동에서 친일부역으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민족운동 지도자였던 그가 반민족행위에 앞장섰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최린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1. 최린과 손병희 - 일본 유학 중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와 교유. 손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에 감화되었다고. 그러나 처음부터 이념 없는 야심가였다고 보기도 한다.

2. 최린과 민족대표 -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 낭독을 주도.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 그러나 재판과 옥살이를 거치며 변절, 세상에 충격을 줬다. 결국 다른 운동가까지 낯이 깎인 셈. 한용운은 최린을 퍽 경멸했다고 한다.

3. 최린과 나혜석 - 1928년 파리에서는 나혜석과 사랑에 빠진다. 당대의 스캔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남편과 이혼하고 힘들어하는 나혜석을, 정작 최는 모른 척했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4. 최린과 변영로 - 1940년 전후로는 적극적 부역, 공분을 샀다. 젊은 날의 변영로가 술에 취한 척하고(정말로 취했을 수도!) 최의 바둑판을 엎어버린 사건이 있다.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았다고, 훗날 변영로는 회고. “최에게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었을까.”

5. 최린과 반민특위 - 해방 이후 우여곡절 끝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결성. 1949년 1월13일에는 최린을 체포. 법정에서 최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진정성은 보였다는 평가. 물론 때늦은

후회였다.

김태권 만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속보] 윤석열 쪽 “대통령, 21일부터 헌재 모든 변론기일 출석” 1.

[속보] 윤석열 쪽 “대통령, 21일부터 헌재 모든 변론기일 출석”

경호처, 윤석열 체포 전 기관총 2정·실탄 80발 관저 배치했다 2.

경호처, 윤석열 체포 전 기관총 2정·실탄 80발 관저 배치했다

[속보] 경찰, ‘삼청동 대통령 안가’ 압수수색 또 불발…경호처 거부 3.

[속보] 경찰, ‘삼청동 대통령 안가’ 압수수색 또 불발…경호처 거부

[속보] 김용현 쪽 “계엄 때 김 전 장관이 ‘비상입법기구’ 쪽지 작성” 4.

[속보] 김용현 쪽 “계엄 때 김 전 장관이 ‘비상입법기구’ 쪽지 작성”

[속보] 공수처 ‘조사불응’ 윤석열 강제구인 불발…구치소서 철수 5.

[속보] 공수처 ‘조사불응’ 윤석열 강제구인 불발…구치소서 철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