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노예 해방 후 백년이 지났지만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백인도 있다. 1964년 여름, 흑인 차별에 반대하던 청년 운동가 세 명이 미국 남부에서 납치된 후 피살.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 <미시시피 버닝>.) 이 지역 큐클럭스클랜(KKK) 단원들이 체포됐다. 유죄, 유죄, 유죄. 다만 이 단체 간부였던 에드거 레이 킬런은 석방. 배심원 한 명이 끝까지 “기독교 성직자가 살인자일 리 없다”며 고집을 부렸기 때문. 레이 킬런은 전도사였다.
21세기에 이 사건을 버르집은 사람은 고등학생 세 명과 역사 선생님. 수업 시간에 레이 킬런을 인터뷰했다. 자료 공개 이후 들끓는 여론. 그가 다시 체포된 날이 2005년 1월6일.
여든 살 노인이 된 레이 킬런. 두 다리와 오른손을 못 쓴다며 동정에 호소하고 보석을 받았으나, 걷다가 들통나 다시 수감되는 추태도. 판결은 유죄. 세 건의 살인에 각각 20년, 모두 60년형. 레이 킬런은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다.
2005년 1월12일 필라델피아 네소바 카운티의 법정으로 들어서는 에드거 레이 킬런(오른쪽). 흑인차별에 반대하던 청년운동가 3명을 피살한 사건 41년 만에 법정에 섰다. AP 연합뉴스
41년 만의 정의 실현? 그러나 레이 킬런은 단체의 지역 간부였을 따름. ‘몸통’은 여전히 건재. 큐클럭스클랜은 이번 대선에서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글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