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의 사진을 봅니다. 1987년, 2008년, 2016년,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 광장에 나선 이들의 사진입니다. 사진이 포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들여다봅니다. 이미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민주주의는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87년 6월항쟁 30돌을 앞두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민주주의에는 기성품이 없다는 것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2008년 촛불집회에 참석했을 때 정예슬씨는 고등학교이었다. 당시 그는 광우병보다 0교시 부활이나 영어몰입교육 같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더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촛불 들게 돼
“그때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참여할 때 고민했겠죠. 그런데 뭐 마땅히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이니까요. 정치적인 이야기에 관심 갖고, 촛불도 드는 게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기사로 일하고 있는 정예슬(24)씨는 한때 ‘촛불소녀’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가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직후부터 촛불을 들었다.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찾아봤는데, 국민들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밀어붙이는지 이해가 안됐어요. 촛불집회에 꽤 많이 참석했고, 피켓도 들고 시민들도 만나고 그렇게 활동했었죠.”
처음 집회에 나간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튀는 행동’에 부정적이었다. “그래도 저는 사회적인 문제에 목소리 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광우병도 광우병이지만, 0교시 부활이나 영어교육 같은 이슈도 많았고요. 청소년이 자기 고민 이야기 하는 게 왜 문제가 되나요?” 그는 홀로 나갔던 촛불집회에서 또래 청소년들을 만나 함께 토론을 하기도 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대화도 나누며 고민을 이어갔다고 한다.
보수언론 왜곡이 더 화나
물론 약간의 대가가 뒤따랐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정씨의 사진이 언론에 나오자 학교 선생님한테 꾸중을 듣기도 했고, 다니는 교회에서 집사님들의 관심도 집중됐다. 그런데 그보다 화가 났던 것은 보수언론의 왜곡이었다. 촛불 집회가 끝나고 1년 뒤, 그와 그의 친구는 한 보수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당시 기자는 그들이 1년 전 무대에서 읽은 ‘촛불 선언문’을 시민단체 선배들이 써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뭐 좀 도와줬던 것도 같은데요.” 이 한마디에 그들은 운동권한테 이용당한 멋모르는 10대가 됐다. 그 언론보도로 곤욕을 치른 탓일까, 정씨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사진 촬영을 극구 거부했다.
0교시 부활, 영어몰입 교육이 더 문제
“미친소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언론의 프레임 아닌가요? 저는 당시 광우병보다도 오히려 0교시 부활이나 영어교육 같은 교육문제에 더 민감했던 것 같아요. 수도 민영화 같은 이슈도 걱정스러웠고요. 어느 순간 미친소 논란으로 우리들을 가두고 마치 선동에 당한 것처럼 폄훼하는 언론에 정말 속 상했어요.”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는 언론, 그리고 언론이 동원하는 ‘침묵하는 다수’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100만명이 넘게 모인 2016년의 촛불집회에도 가능한 참석하고 그 사실이 누구보다 자랑스럽지만, 집회에 나오지 않은 4900만명 역시 ‘우리편’으로 만들고 싶단다. “2008년보다 평화적이고 발랄하고 더 밝은 것 같아요. 그때는 조금은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저변이 넓어진거죠. 또 그래야 집회에 나오지 않은 4900만명도 동의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에요.”
정치적 발언은 솔직하고 활발하게
그는 밝고 평화적인 2016년 촛불 시민혁명의 에너지를 만끽하고 있었다. “2008년엔 조중동이 ‘광우병 선동’이라고 하면 스스로 위축됐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요.” 이런 자신감 탓일까. 그는 직장에서도 ‘박근혜 게이트’와 촛불집회를 종종 화제로 올린다고 한다. “동의하는지 여부는 각자의 판단이겠지만, 제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나누는 것도 의미있다는 생각이에요.”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도 의미있는 언론 기사를 공유한다고 한다. “좋은 기사 쓰는 언론사에 클릭수와 좋아요 숫자라도 보답하고 싶거든요.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공개하려는 편이에요.”
그는 활동 범위를 점차 넓히며 ‘참여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는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에 당원에도 가입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에 놓였단 느낌에 강한 리더십을 가진 당대표를 뽑고 싶었단다. “당비를 6개월 이상 납부해야 투표권이 생기더라고요. 당대표는 못뽑았지만 대선후보는 뽑을 수 있겠죠 뭐”라며 그는 웃었다.
“민주주의 첫단추는 언론 정상화”
지난 17일 <한겨레>와 만난 정씨는 오후 인터뷰를 마친 뒤 제8차 촛불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전에 부모님과 함께 김장을 담그고, 오후엔 인터뷰, 저녁엔 촛불집회까지 강행군이다. “탄핵으로 만족하지 않아요. 정말 이번엔 끝까지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첫번째 단추는 언론 정상화다. “누구나 자기 판단은 있잖아요. 나이가 어리건 많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균형잡힌 정보를 전달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그 판단의 근거가 너무 쏠려 있는 것 같아요.”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한겨레> <경향> <조선> <동아> <매일경제>를 구독매체로 설정해 뒀다는 그는, 씩씩하게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현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