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이어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두 집회 참여자들의 생각을 비교, 정리한 글을 보내왔다. 신 교수는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대학원생들과 함께 총 62명의 참여자를 현장에서 심층면접했고, 2016년 촛불집회에서는 현재까지 56명을 면접한 상태다. 2008년 면접참여자는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포함했고, 직업도 학생, 회사원, 교사, 공무원, 일용노동자, 노점상, 출장안마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2016년 면접조사는 10대에서 30대까지를 대상으로 했고, 대부분 고교생과 대학생, 회사원이다. 이후 집회에서 40~50대 연령층 면접을 보완할 계획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학생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혁명.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혁명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시민혁명, 명예혁명, 민주혁명, 촛불혁명. 이것은 혁명일까? 글쎄다. 혁명은 낡은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는 거대한 구조 변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 시민항쟁에 지금 혁명의 칭호를 붙이는 건 아직 이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것을 기꺼이 혁명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 이것은 아직 혁명이 아니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분노와 희망을 함께하는 수백만 시민이 있음을 알았고, 평범한 사람들의 결집된 행동이 얼마나 거대한 물결이 되는지 보았고, 너무나 견고해 보였던 부패한 권력을 시민의 힘으로 뒤흔드는 경험을 했다.
그런 경험은 역사 속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1960년 4·19 혁명과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 결실로 독재는 사라졌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민주주의가 퇴보하면서 시민들은 또다시 대항쟁에 나섰다. 2008년과 2016년의 촛불집회다. 여기서 시민들이 생각하고 원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계속되고 있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2008년 촛불집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가장 오래 지속되고, 우리 사회의 문제와 대안에 관해 가장 치열하게 학습하고 토론했던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는 이후 망각되고, 왜곡되고, 폄훼당해 왔다. 그것의 혁명성과 주체성은 거세되고, 광우병 공포에 사로잡힌 광기의 순간으로만 기록됐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시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동기는 단지 ‘쇠고기’가 아니었다. 국민의 다수가 선출한 권력이지만, 그 권력의 잘못된 정책을 국민의 힘으로 바꾸겠다는 거였다.
“후보 시절에는 서민을 위한 대통령 이런 콘셉트로. 하지만 보수정권이 성립되자마자 재벌 집단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으니까, 속인 거잖아요.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 거죠.”(18·남·고2)
“이명박 정부의 재벌을 위한 정책들과 쇠고기 수입, 한-미 에프티에이(FTA), 대운하, 이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봐요. 이런 정책들을 국민의 힘으로 바꾸는 계기라고 생각해요.”(40대·남·철도공사 직원)
“강자들의 정부, 강자들 편만 드는 정부죠. 가진 자들한테만 좋게 해주는. 국민이 주인이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해야겠지요. 국민의 권익을 신장하고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그런 역량.”(20대·여·맹인 출장안마사)
2008년 촛불
촛불의 동기는 쇠고기가 아니라
권력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토
“강자·재벌 위한 정책 펴고 있어”
처음 집회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
시민들이 ‘나라의 주인’임을 경험
2016년 촛불불법·부패·권력남용·헌법유린을
가능케 한 거대 담합구조에 분노
“국민 공격하고, 희생시킨” 국가
“상위계층끼리 노는 집단” 인식
스스로 ‘혁명의 불씨’ 되려 일어나
2016년 촛불집회에서 달랐던 것은 정부의 정책, 편향성, 이런 것 이전에 우선 너무도 “어이없고 기가 막힌” 사실들로부터 받은 충격이다. 최순실이라는 사인의 무한권력, 태반주사·백옥주사·비아그라 이야기, 박근혜 대통령의 기이한 행적과 과거사 같은 것들 말이다.
“최순실의 꼭두각시였다는 거잖아요. 어이가 없죠. 허탈하고.”(17·여·고1)
“성형주사, 비아그라, 그런 거, 정말 충격이었죠.”(20대·여·회사원)
“세월호 사고 나고 머리 올리고 어쩌고 하느라 7시간이나 지나고 나타나선 엉뚱한 소리나 했다는 거. 이게 말이 돼요?”(18·남·고2)
하지만 시민들은 단지 박근혜, 최순실 때문에 거리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진짜 충격은 그 엄청난 불법과 부패, 권력남용과 헌법유린을 가능하게 한 거대한 담합구조였다.
“한 사람이 잘못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그걸 다 알면서도 방치해왔다는 게 제일 충격적이에요.”(19·여·고3)
“뭔가 쌓여서 썩은 정치판이 된 것 아닌가. 지금 정치하시는 분들 정치판 더럽다는 거 다 아실 텐데 거기서 수혜 받는 것이 있기 때문에 침묵해오신 거 아닌가.”(20·여·대1)
“치밀하게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게 놀랍죠.”(18·여·고2)
“정경유착이 두껍잖아요. 그리고 행정, 사법, 입법이 독립이 안 되고 서로 다 엮여 있다는 게 충격적이에요.”(18·여·고2)
문제는 그냥 한 명의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아니었다. 불법국가, 범죄국가, 약탈국가였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물었을 때 10대, 20대 참여자들이 한 얘기는 실로 놀라웠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소위 말하는 상위계층들끼리 노는 집단 같은?”(22·남·대3)
“국민의 뜻을 잘 들어주고 보호해줘야 할 존재가 저희를 공격하고, 보호는 못 해줄망정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있으니까.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18·여·고2)
“국가란 원래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세월호처럼 희생만 시키고, 재벌들한테만 세금 깎아주고 눈감아주고, 세금 걷어서 국민 위해 배분해야 하는데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자기들만 살고 국민은 내던지겠다, 그런 거 아녜요?”(18·남·고2)
지금 10대, 20대의 청년들은 이 나라 국가가 국민을 “공격하고” “희생시키고” “내던지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렇게 ‘참 나쁜 국가’를 갖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 되어 국가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2008년 촛불집회에선 많은 시민이 처음으로 집회라는 데를 나와서 스스로를 나라의 주인, 정치의 주체임을 경험했다. 노점상이라 아는 게 없다며 처음엔 인터뷰를 거절한 한 40대 여성의 얘기다.
“저희는 뭐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막상 와서 보니까 참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허네요. 정부의 정치에 대해선 아직 모르지만 만약에 정치를 잘못한다든가 그러면 우리 같은 시민들이 또 촛불을 들고 나올 거예요.”
80년대 대학 시절부터 정치집회에 많이 참여했다는 40대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주최 측에서 초청장을 받아 나온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많은 계층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나왔다는 게 가장 큰 의의라고 봐요. 이 거대 도시 속에서 이런 연대의식을 만들어냈다는 게 놀랍고. 무질서한 듯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지켜내는 질서, 그런 모습들.”
2008년과 비교했을 때 2016년의 참여자들은 국가와 정치에 더 깊은 불신을 보였지만, 동시에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한 자신감과 정치적 자의식, 낙관과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 집회 나와서 보니까 우리나라 앞으로 나아질 것 같아요. 다들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바꿀 수 없다고.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이 좌시할 수 없다, 그러는 걸 보고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구나, 거기서 희망을 본 것 같아요.”(20대·여·직장인)
“이승만, 전두환 때도 그렇고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을 해서 결국 민주주의가 왔잖아요. 우리 국민이 노력하면 변할 거라고 믿어요.”(18·여·고2)
“저희들이 계속 참여하면서 어른들의 의식을 일깨워주면서 정신 차려라 해줘야지, 국민이 주인인데 혼자 하면 아무것도 안 돼요. 이렇게 뭉쳐서 가면 변화할 거예요.”(18·남·고2)
국민이 주인인데 국가는 국민을 내던졌다. 그래서 국민이 일어나서 국가를 바꾸기로 했다. 이것이 촛불의 메시지다. 1987년 이후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이토록 깊은 병이 들었건만, 민주주의의 주인인 시민들의 생명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1960년과 1987년 사이에 27년의 세월이 있었고, 1987년과 2016년 사이에 29년이 있다. 1980년 5월 항쟁 이후 7년이 무르익어 1987년이 왔고, 2008년 촛불집회 이후 8년이 지나 2016년이 왔다. 이것은 혁명일까? 아직은 아니다. 만약 이것이 혁명이 될 것이라면, 혁명은 이제 시작되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