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최현숙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최현숙
지난 9일 서울 마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할배의 탄생> 저자 최현숙씨는 독거노인생활관리사이자 구술기록자이다. 70대 ‘할배’들의 생애사를 기록하며 최씨는 “이들은 자기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기보다는 가진 자들, 배운 자들의 시선과 평가를 좇아서 그걸 자기정체성으로 내면화한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인터뷰 중 최씨는 독거노인에 주목한 이유로 “사회와 유리된 개인이 아니라, 자신을 사회적인 존재로 의미규정하고, 스스로 그간 어떤 역사적 사건과 조응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극우 전초병’ 노인들 생애사는
한국의 현대사와 교차한다
‘할배’들과의 소통에서
저자가 찾아낸 단서는 무엇일까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이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
사회는 ‘정상 이데올로기’ 강요
현실의 다수는 ‘다양한 비정상들’
상처와 억압 많은 사람에 꽂힌다” “저는 <국제시장>이 보여주는 그런 성공의 개념에 반대해요. 악착같이 돈 벌고, 가족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간주되는데, 이게 우리 사회의 소위 ‘정상 이데올로기’를 구성하죠. 현실에서 마주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실 ‘다양한 비정상’들이에요. 돈을 벌 수도, 못 벌 수도 있고, 이혼을 하든가, 결혼을 못하기도 하고…. 그런 이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그 기준을 내면화해서 자기 삶은 쓸모없다든가 창피하다고 여기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대상자는 어떻게 정하세요? “저의 기준은 ‘아무나’예요.(웃음) 그냥 아무나 붙잡고 생애 이야길 해도 한 세상이 나온다고 믿어요. 그 ‘아무나’ 중에서 제일 ‘꽂히는’ 사람은, 말 많고 상처와 억압이 많은 사람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고요. 얘깃거리가 많으니까요.” -인터뷰 요청을 하면 순순히 허락들을 하던가요? “대개는 오랫동안 저하고 관계가 있던 사람들이죠. 신뢰가 중요하니까. 독거노인생활관리사를 하면서 만난 노인들, 혹은 주변의 동료들 같은 경우요. 그래도 막상 하려고 하면 쉽진 않아요. 80~90대 노인은 제가 딱 3명 섭외해서 3명 다 그 자리에서 오케이를 하고 끝까지 했어요. 근데 50~60세대로 오면서는 4배수를 했어요. 12명 섭외했고 그중 딱 3명이 남았죠.” -아! 9명은 중도 포기했군요. “‘하겠다곤 했는데 집에 가서 생각해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고, ‘서방도 살아 있고, 새끼도 있고, 친척도 있고….’ 여성들의 경우엔 그래서 포기한 경우가 많아요. 뭐, 더 늙기를 기다려볼 수밖에요.(웃음)” 독거노인생활관리사로 주 25시간 일을 하는 틈틈이 인터뷰를 하고, 녹음을 풀어 녹취록을 만들고, 글로 옮기는 작업을 병행했다. 한 사람을 만나는 기간은 대개 6개월가량. 일부러 일정을 촘촘히 잡지 않는다. 이야기한 뒤 다시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이다. 남성다움의 요건은 돈, 체력, 정력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 여자 문제라든가 성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노인들이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는 주제들인데…. “아주 구체적인 생애 경험들, 섹스의 경험이든 노동의 경험이든 가족 간의 끈끈한 애증의 경험이든 그 기억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이분들이 자기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나이 드신 분이라 해도 독거 남성 노인이 연하의 여성에게 자신의 여성 편력이나 섹슈얼리티를 고백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이분들이 많이 배웠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 같으면 위선과 교양으로 포장하느라고 제대로 얘길 안 했겠죠.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엔, 성관계가 노동이나 거주, 가족 관계하고 직결이 되거든요. 부자들은 가정은 가정대로 유지하고 직장은 직장대로 유지하면서 따로 여자 문제를 처리할 수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안 그래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란 말도 있는데, 섹슈얼리티는 굉장히 정치적인 것이어서 전 그분들의 성에 대한 얘길 꼭 듣고 싶었어요.” “남자는 허리 꼬부라져도 지푸라기 하나 집어 들 기운만 있으면 선다는데, 여자는 나이 들면 힘들더라구. 그래서 나는 불만이 많아. 욕구를 풀어야 하잖아… 홀애비 3년이면 이가 서 말이고 과부 3년이면 보리쌀이 서 말이래잖아. 그 말이 정말 뼈있는 말이야. 남자는 마누라 없으면 성욕을 돈으로 해결하잖아. 그러구 서방 없는 여자는 돈을 받구 해주는 거구.”(김용술 노인의 구술 중에서. 118쪽) -<할배의 탄생> 기록자로서, ‘대한민국 꼰대 할배들은 어떻게 탄생된 것인지’ 답은 찾으셨습니까? “시민단체들이 집회할 때, 마이크 소리 최대로 켜놓고 맞불집회하는 할배들을 꼰대라고 하는데, 난 애초부터 그런 시각에 의심이 좀 있었어요. 그렇게 통으로 노인세대를 규정할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통계로 잡히지 않은 개개인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이분들을 만나면서 제가 느낀 건 이래요. ‘이들은 자기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기보다는, 가진 자들, 배운 자들의 시선과 평가를 좇아서 그걸 자기정체성으로 내면화한다’는 점.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엔 자기 정체성을 독립적으로 가질 기회가 드물어요.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모방해서 자기를 평가하고, 그 잣대로 세상을 보죠.”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은 자기처럼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라기보다는 더 많이 가진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이다? “그렇죠.” -‘내가 여건이 안 돼서 저 위치에 못 이르렀지만, 내 의식은 저들과 같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단 얘기군요. 그런데 동세대의 배운 사람, 가진 사람의 언술은 대개 극우보수 편향이다 보니…. “맞아요. 그래서 자기 계급을 배반하는 정치적 선택들, 자기허상화, 이런 현상이 나오는 거죠. 이분들 구술에도 나오는데, ‘진보, 너네는 너네 걱정이나 해라. 가난한 노인들 걱정한다고 노인 기초연금 20만원으로 늘려라 어째라 떠들지 말고’ 이렇게 말해요. 이게 우리 사회 보수 정치권이 하는 말이랑 똑같은 거죠. 정작 자기들은 그 돈이 아주 절실한 처지인데도….” -책에서 ‘가부장제는 여성과 남성에게 모두 억압이자 상처’라고 쓰면서 특히 ‘가난한 남성에게 더 억압적’이라고 하셨어요.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작용할 때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서 달리 작용한단 뜻인가요? “저는 부자 남성들도 가부장제로 인해서 억압받고 피해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들은 가부장제하에서 실제로 ‘대빵’ 노릇을 할 수 있는 다른 권력이 있기 때문에, 가부장제로 인한 피해가 있더라도 자기가 누릴 권력이 더 많으니까 그냥 감수하고 가는 거죠. 반면에 가난한 남성은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돈은 남자가 벌어야 하고, 남자는 신체도 정신도 섹스도 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어요.” -‘돈과 체력과 섹스가 강해야 남자답다’는 강박관념! “그렇죠. 그래서 여기 미달하면 자기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깊은 상실감이나 자괴감에 빠져버려요.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가난한 남성은, ‘남자다움’의 기준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거지요.” “결혼도 못 했고, 돈도 없고, 고시원에서 살고, 평생 노가다나 했고, 그런 건 다 창피한 거잖아요. 누구도 제대로 된 사람으로 안 보지요. 최 선생이나 달리 생각하지, 백이면 백 다 비정상이고 뭔가 모질란 걸로 봐요….”(이영식 노인의 구술 중에서. 256쪽) -이영식 노인은 왜소한 체구에 여자가 없다는 것이 남성으로서 더 큰 자격지심이 되는 거 같은데, 김용술 노인은 가난해도 꽤 자신감이 넘치는 걸로 보여요. “제가 김용술 노인한테 이영식 노인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 나한테 좀 데리고 와, 내가 교육 좀 시킬게’ 하시더라고요.(웃음) 자기는, 다 안다 이거지. 자기도 이혼해서 혼자 사는 처지지만, 자신은 그래도 ‘잘한다’, 섹스에 자신 있다는 거예요. 무엇이 남성다움인가에 대한 왜곡된 기준인 거죠.” 호기심으로 경계를 넘다 -저도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지만, 매번 쓸 때마다 어려워요. 인터뷰 쓰느라고 밤샘한다고 하면 제 주변에 있는 사람도 “녹취한 거 그냥 옮기면 되는데 왜 밤을 새워?” 그래요.(웃음) 특히 노인들의 얘기는 더 힘들죠. 두서없고 산만하고, 주어가 빠진 채로 같은 얘기 반복하기 십상인데, 쓰신 걸 보니 기록자가 구술자에게 충분히 감정이입을 해서 그분들 속을 다 읽어내고 있단 느낌이 들어요. “감정이입이 필요할 때가 있죠. 이분들의 구술 내용을 독자에게 최대한 그대로 드러내주기 위해서 이 양반들한테 빙의를 하려고 노력을 해요. 그분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도 녹음기를 켜두고요. 혼자서 길을 걸을 때도, 폐휴지 줍는 노인은 이 길거리를 걷는 게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면서 혼자 녹음기 켜서 중얼거리며 다니기도 해요.” -폐지 줍는 노인 입장이 돼서 혼잣말을 한다고요? “최대한 빙의를 하려고 노력하고 같은 입장이 되어보려고 하죠.” -사실 우리 사회에서 할배는 또 다른 혐오의 대상이 되었어요. 아무데서나 호령하고 막무가내로 뻔뻔하게 굴고. 연장자의 권위로 볼품없는 권력을 휘두르는 무뢰배가 될 때가 많아요. 전철에서 노약자석 양보 안 한다고 임신부랑 싸우기도 하고.(웃음) “가부장제에 짓눌린 가난한 이들
가진 자, 배운 자의 시선을
자기정체성으로 내면화한다
계급 배반하는 정치적 선택과
자기허상화 현상 여기서 나온다” “10대 때부터 인생은 혼돈과 수렁
‘정상 이데올로기’에 저항했지만
아버지의 폭력은 내게도 전해져
지난 삶의 해석이 남은 삶에 중요”
‘성찰 없는 나이듦’이 걸림돌일 뿐 “할배들이 그런 진상을 부리거나, 혹은 할머니들이 전철에서 마주 앉은 전혀 모르는 할머니들한테 ‘어디 갔다 오세요?’ 말 걸다가 딸 얘기, 사위 얘기 하는 거 보면, 전 일단 녹음기 눌러요. 전혀 걸러지지 않은 그분들의 생생한 이야기잖아요. 이쁘건 밉건 간에. 저 양반들이 왜 그러는지 좀 알고 싶은데, 그 자리에서 파악하긴 어렵더라도 최대한 잘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그 정도 관심을 기울인다는 건 애정 없인 불가능해요. “그분들에 대한 저의 기본 입장은 ‘옹호’예요. 가난과 고난을 겪어왔다는 자체로 그분들은 내게 선생님이에요. 가난과 고난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선 난 그분들과 생각이 다르지만…. 그리고 궁금하잖아요.(웃음)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성질이 못됐을지, 저 여자분들은 왜 저렇게 떠드는지, 내 속의 가장 큰 동력은 호기심인지도 몰라요. 두려움과 호기심이 늘 같이 있는데, 호기심이 더 강해서 두려움을 넘어서 버리는 거죠. 경계를 넘는 것에 대해 겁을 덜 내는 편이랄까.”
헐렁한 후드티에 검은 점퍼를 걸친 최현숙씨가 <한겨레> 사옥 내 나선계단 위에 섰다. 그는 독거노인생활관리사이자 <할배의 탄생>을 포함해 지난 3년간 세 권의 책을 낸, 필력 좋은 작가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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