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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때 박 대통령 지지해서 젊은이들에 미안하다”

등록 2016-11-08 23:22수정 2016-11-09 20:26

이것이 민심이다 ④ 3050 직장인

“상식과 국가시스템 믿음 붕괴” 분노
서울 종로 30대 “주권 찾으려 촛불”
건설업무 40대 “이런 나라라니…”
50대 임원 “오랜 지지, 이제 철회”
건설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성태(49)씨는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귀가하는 재수생 아들(19)에게 입버릇처럼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제 아무런 말을 해 줄 수가 없게 됐다. 이제 그런 응원은 자신도 아들도 믿기 힘든 말이 돼 버린 탓이다. 김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을 짓밟았다”며 “아직도 아무런 노력 없이 권력에 빌붙고, 권력에 줄 잘 선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자식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준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씨가 특히 분노하는 대목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0)씨가 2014년 자신의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것으로 알려진 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이다. 김씨는 “나와 내 아이가 조롱당한 기분이다. 성실하게 살아온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가 나와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가정과 회사를 위해 묵묵히 성실하게 일해온 직장인들 사이에서 상식과 국가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붕괴되면서 허탈함과 절망,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유통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아무개(37)씨는 “‘오너 리스크’가 있는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며 “일개 기업도 이런데, 민간인이 수년 동안 국정을 농단하는데도 국가의 공적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게 과연 국가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하야가 답”이라고 못박았다.

직장인 박준규(44)씨는 지난 5일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 손을 잡고 서울 광화문 일대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 아이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유지한(35)씨는 “책으로만 접했던 1987년 6월 항쟁 때의 ‘넥타이 부대’가 당시 어떤 마음에서 거리로 나섰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며 “‘도둑맞은 주권’을 되찾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씨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 대한 ‘뒷북수사’ ‘황제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에 대한 분노도 쏟아졌다. 직장인 이기열(37)씨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선거를 통해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청와대 눈치만 보는 검찰은 방법이 없다”며 “통제되지 않는 권력을 가진 검찰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 가장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지해온 이들은 이번 파문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 물류회사 임원인 김아무개(54)씨는 박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딸(25)이 대통령을 비판할 때마다 “너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 대통령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김씨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김씨는 “‘내가 세상을 너무나 몰랐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하고, 자식에게 부끄럽다”며 “회사에서도 젊은 직원들이 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때 지지자였다는 자괴감 때문에 주눅이 든다”고 말했다.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가 아닌 ‘여성 대통령’의 실패로 잘못 해석되면서 직장의 성차별 문화를 악화시킬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아이티(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34)씨는 “박 대통령이 ‘비선실세 국정농단’이란 최악의 부정·부패를 드러내면서 엉뚱하게 여성 정치인과 여성 리더십을 공격하는 반응이 이어질까 봐 걱정된다”며 “이번 사태는 성별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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