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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역사다] 10월13일의 사람, 의원직을 던졌던 김영삼(1927~2015)

등록 2016-10-12 18:57수정 2016-10-12 22:08

민주주의 투사, 그의 진심이 나는 궁금하다
일러스트 오금택
일러스트 오금택

영원할 것 같던 박정희 정권이 두 달 만에 무너졌다. 시작은 1979년 8월. 와이에이치(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야당이던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했는데, 경찰이 폭력 진압을 해서 사망자가 나왔다.

당시 신민당 총재는 만 51세의 김영삼. (김대중은 가택연금 상태였다.) 그때만 해도 결기 넘치는 민주투사였다. 9월 중순에 <뉴욕 타임스> 기자와 만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미국은 박 정권을 압박하라”고 말했다. 박 정권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10월4일,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안을 밀어붙였다.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를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야당이 맞받아쳤다. 신민당 소속 의원 전원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아, 제발! 싸움은 이렇게 하는 것 아닐까?) 10월13일의 일이다.

1979년 10월4일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한 뒤 의사당에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그리고 10월13일 신민당 의원 전원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1979년 10월4일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한 뒤 의사당에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그리고 10월13일 신민당 의원 전원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 10월16일부터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부마항쟁의 시작이었다. 곧이어 터진 10·26 사건으로 박 정권은 붕괴. 김영삼은 그 후로도 민주세력의 지도자였는데 1990년에 ‘3당 합당’으로 군부 인사들과 손을 잡는다. 대통령이 되고서는 행보가 더욱 들쭉날쭉했다. 공도 크고 과도 크다. 그의 진심이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글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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