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김윤식. 김영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등 아름다운 시를 지었다. “…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 강물이 흐르네.” 소리 내어 읽을 때마다 우리말이 입에 감겨 즐겁다.
말씨가 예뻐 여린 샌님이 아닌가 싶지만, 굳세고 곧은 기백의 시인이었다.(용모도 다부지다.) 3·1운동 때는 고향 강진에 돌아와 만세운동을 이끌고 옥살이를 했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도 끝까지 거부했다. 해방 이후에는 민족주의 진영에서 활동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도 했다. 강직한 성격 때문인지 한국전쟁 기간에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는데, 유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1950년 9월29일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젊은 시절에 용아 박용철과 친했다. “나 두 야 간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박용철의 대표작 <떠나가는 배>다. 번역도 하고 평론도 썼다. 그런데 그가 꿈꾸던, 우리말이 살아 있는 시를 짓는 재능은 정작 김영랑에게 있었다. 박용철은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친구의 시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다. 두 사람의 우정이 우리 상상력을 자극한다.
글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