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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겨레 프리즘] 강만수가 밉다지만 / 이춘재

등록 2016-09-27 17:29수정 2016-09-27 18:57

이춘재
법조팀장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지난 24일 기각되자 검찰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이튿날 이례적인 휴일 브리핑을 열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엘티이(LTE)급’ 대응보다 더 놀라운 건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강 전 장관을 ‘사익추구형 부패사범’이라고 표현했다. 아직 유죄 판결은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검찰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강 전 장관은 검찰 수사 초기에 검찰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지난달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국민이 준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 주인이 머슴에게 당하는 격”이라고 했다. 일주일 뒤 ‘취중 발언’ 핑계를 대며 사과하기는 했지만, 검찰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다.

검찰은 강 전 장관이 2011년 산업은행장 시절 당시 남상태(구속)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개인 비리를 적발하고도 비리를 묵인해주는 대가로 지인이 운영하는 바이오업체에 투자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은 “그 당시 남상태의 비리 사항에 대해 명확하게 책임을 묻고 불투명한 회계 처리에 대해서 필요한 조처를 했다면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강 전 장관이 남 전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후임인 고재호(구속)씨가 전임자의 말로를 보면서도 수조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지를 엄두는 감히 못 냈을 테니. 검찰 말대로 강 전 장관의 ‘사익 추구’가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그가 한때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분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검찰이 강 전 장관 핑계만 대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검찰은 그보다 앞서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 2009년에 남 전 사장의 금품 수수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도 ‘내사 종결’ 처리한 것이다. 검찰은 이창하(구속) 당시 대우조선해양건설 전무를 횡령 등의 혐의로 체포한 뒤, 이씨한테서 남 사장의 부인에게 거액을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씨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2004년 8~10월 두 차례 남상태 당시 부사장 집을 찾아가 그의 부인에게 현금 8천만원이 담긴 쇼핑백을 전달했다’, ‘2007년 10월 남 사장의 유럽 출장 직전에 2만유로(한화 3200만여원)를 건넸다.’ 다음날 수사팀은 보고서에 “이씨가 돈을 건넨 시기와 장소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한 점에 비춰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적었다.

하지만 검찰은 남 전 사장의 공소시효(5년)가 완성되기 직전인 2009년 9월 그의 부인만 불러 조사했다. 부인은 ‘당연히’ “이씨한테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검찰은 이 진술을 근거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때 남 전 사장을 처벌했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최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시 수사기록을 입수해 언론에 공개하자, 검찰은 ‘당시 이씨의 진술만으로는 남 전 사장의 혐의를 찾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당시 수사책임자(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는 현재 대우조선해양 수사를 지휘하는 김기동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검사장)이었다.

당시 검찰의 행태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지금은 옷을 벗은 검찰 수뇌부의 지시에 따랐다 하더라도 당시 수사 검사들의 책임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반성하는 모습 없이 ‘한물간’ 쪽만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영 보기가 좋지 않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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