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시민이 꾸린 지진 비상배낭. 물, 손전등, 침낭, 겉옷, 비상식량, 속옷, 행동요령 매뉴얼 등이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사는 박아무개(35)씨는 경북 경주에 계신 부모님께 보낼 지진 대비용 ‘비상 배낭’을 꾸리고 있다. 담요와 비상약품, 휴대전화 보조배터리 등이 배낭에 들어간다. 온라인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일본 도쿄도에서 만든 지진 대처 안내 책자인 ‘도쿄 방재’ 한글판을 참조했다. 박씨는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쓰긴 하지만 검색을 잘하거나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어서 정보에 제한이 있다“며 “12일 이후 여진이 계속 이어져 마음이 급하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역대 최대인 규모 5.8 지진이 경주에서 발생한 데 이어 19일 또 지진이 발생했지만, 국민안전처 누리집은 마비되고 재난 문자 통보도 늦어지자 다양한 정보에 접근 가능한 젊은 자녀들이 지방에 있는 부모를 위해 직접 나서고 있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 사는 윤지형(33)씨는 잇따른 여진에 가족들이 걱정돼 국민안전처 누리집에서 ’지진발생시 국민행동요령’을 찾아 읽다가 크게 실망했다. 9쪽 분량의 국민행동요령엔 ‘집 안에선 테이블 밑에서 몸을 보호하자’, ‘서로 협력해서 대피하자’ 등의 10가지 행동요령이 나와 있었다. 윤씨는 “‘근거 없는 소문이나 유언비어를 믿고 행동해선 안 됩니다’라는 식의 추상적인 문구에 어이가 없었다. 페이스북에서 ‘도쿄 방재 한글판’이 공유돼 읽어보니, 삽화도 큼직하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도쿄 방재엔, 간이 손전등을 만드는 방법부터 지진 때 필요한 비축 물품 목록과 양, 지진에 대비한 가구 고정 방식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국민안전처의 국민행동요령엔 전혀 없는 내용이다. 윤씨는 도쿄 방재를 출력해 부모님께 급한 대로 우편으로 보낼 계획이다.
경기 성남에 사는 김서영(30)씨도 지난 추석 연휴 때 울산 부모님 댁에 들러 페트병 생수와 부탄가스를 구비해뒀다. 부모님께 손전등 위치도 확인해 알려드리고 지진 대처 방법 등도 설명해드렸다. 김씨는 “지진이 났을 때 운동장이 안전할지 주차장이 안전할지도 몰라 외지에 있는 자식으로서 무력감을 느꼈다”며 “최소한의 대비는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비상배낭에 넣을 물품 목록도 적어 부모님께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김씨는 “재난영화 <터널>이나, 세월호 사건 등을 보면 재난상황이 처참하던데,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김영욱 이화여대 교수(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는 “정부나 전문가의 공신력 있는 지진 관련 정보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에스엔에스 등도 이용하지 않는 중장년층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더욱 제한돼 ‘정보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진이 실질적인 위험으로 드러난 만큼 정부가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보 전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박수진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