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출근했다. 1층 데스크 경비직원은 특별히 더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자리에 앉으며 세상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했다. 그래야 하루가 평안하니까. 9월15일, 추석 당일이었다. 밤 11시까지 당직을 서며, 텅 빈 한겨레 편집국을 지킨 대중문화팀 구둘래 기자다.
-왜 하필 추석날 당직을….
“휴일에 누군가 한 명 나와야 하잖아요. 6~7개월에 한 번 차례 돌아오는데 추석날 당첨. 고향 갈 일 없기도 해 그냥 맡았죠. 주변 식당이 문 안 열어 식사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웠어요.”
-무슨 일을 했나요?
“전화 받는 게 주임무예요. 화장실 갈 때도 회사 전화를 휴대전화로 착신전환해 들고 갔어요.”
-전화가 많이 왔나요?
“딱 두 통. 출근하자마자 부천 산다는 할아버지 독자가 신문 배달되지 않았다고 항의전화. 연휴라 쉰다고 안내해 드렸고요. 나머지 하나는 12시경 받았는데, 어느 정신병원에 계신다는 분. 지난해 말 정신병원 문제로 한겨레 기자 만나러 갔다가 경찰한테 끌려갔다면서 정중하게 전화번호 남겼습니다.”
-아주 평온한 하루였군요.
“케이블 뉴스채널 틀어놨는데 지겹게 같은 뉴스 반복됐죠. 이혼 여성이 위자료 50% 받았다는 이야기, 안보리에 북핵 대응 촉구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어 멘트, 불난 고속도로 차량에서 아이 꺼낸 의인 전화 인터뷰, 부대찌개 라면 개발됐다는 소식이 각각 열 번도 넘게.”
-각 부서 대기조들이 인터넷 기사 올렸을 텐데.
“통일팀에서 북한 홍수 기사 썼어요. 138명 사망, 400명 실종. 미래팀에선 태풍 뉴스….”
-사실 평온한 추석이 아니었네요. 북한은 해방 후 최악 수해라는데 여기선 실감 안 나죠. 이제 4일 쉬고 다시 뉴스가 쏟아집니다.
고경태 신문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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