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수 대통령 특별감찰관이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특별감찰관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반전의 연속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전격적인 특별감찰 착수 소식에 이어 터져나온 감찰 내용 유출 의혹, 청와대의 ‘국기문란’ 언급으로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둘러싼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왔다.
특별수사팀의 전방위 압수수색이 이뤄진 2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전격 사표를 제출했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에 따라 설치한 제도의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여당 추천인사인 그를 낙점할 때만 해도, 17개월 뒤 이런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합리적이지만 보수이자 공안통으로 꼽힌 인물이라, 허울뿐인 특별감찰관이 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특별감찰관으로 추천한 이는 사법시험 한 해 후배인 우 수석인 것으로 법조계 안팎엔 알려져 있다.
이날 저녁 사무실을 나오다 기자들을 만난 그는 “여러모로 특별감찰관이란 자리를 감당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시겠지만 압수수색도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 직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는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 또 검찰 수사도 앞두고 있고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잘 조사받도록 하겠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19일 청와대의 ‘국기문란’ 발언이 나온 뒤인 22일까지만 해도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히던 이 특별감찰관이 일주일 만에 전격 사표를 제출한 이유가 ‘부족한 점이 많았다’라는 발언 액면 그대로라고 보긴 어렵다.
그는 이날 낮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오늘 압수수색을 받고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사표는) 검찰 압수수색 전에 내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국기문란’ 발언이 나오고 그런 상황에 꼬리 내리는 것처럼 밀려서 내는 것 같아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뭐만 있으면 와서 들고 가는 상황에선 이런 기관은 일 못 한다. 민정수석실도 뭐만 있으면 압색한다면 일이 되겠나. 이건 이 기관(대통령 특별감찰관)을 없애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감찰 내용 유출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부르면 나가겠다”(22일 발언)는 뜻까지 밝힌 상태에서 압수수색부터 들어온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을 감찰 대상으로 삼는 특별감찰관은 직무상 독립성이 강하게 요구될 수밖에 없는데, 특별수사팀이 일반 고발 건 다루듯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은 ‘특별감찰관 흔들기’ 아니냐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은 지난 16일 밤 <문화방송>(MBC)의 첫 보도 뒤 우파 성격의 한 시민단체가 고발하며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됐다.
이와 함께 이 특별감찰관의 사표 제출은 온갖 의혹이 제기되고 특별수사팀의 압수수색까지 받는 상황인데도 현직에서 버티고 있는 우병우 수석을 겨냥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는 지난 22일엔 사퇴 의사를 묻는 기자들에게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이 아닙니까?”라고 청와대와 우 수석을 겨냥한 듯 되물었다. 사표를 낸 이날 “일반 시민 자격으로 잘 조사받겠다”고 언급한 것도 우 수석과 대조적인 모습을 부각한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청와대가 이 특별감찰관의 ‘기밀 누설’ 의혹을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규정한 상황에서, 자칫 그의 거취를 언급할 경우 불필요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특별감찰관이 인사혁신처에 사표를 제출했고, 이후 절차에 따라 박 대통령이 수리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이 특별감찰관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사표를 곧바로 수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내부에선 이 특별감찰관의 ‘독자행동’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청와대 주요 참모들은 사의 표명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특별감찰관이 청와대와 조율 없이 특별감찰에 착수했고, 특정 언론사와 ‘내통’했으며, 사표 제출까지 모두 청와대를 ‘뒷전’에 둔 것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최현준 최혜정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