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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룸 토크] ‘엄마’ 아리아나 허핑턴 잃은 허핑턴포스트

등록 2016-08-14 17:28수정 2016-08-14 17:39

2014년 2월28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런칭 파티에 참여해 이야기를 하는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창립자.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14년 2월28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런칭 파티에 참여해 이야기를 하는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창립자.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아리아나 허핑턴(66)은 미디어업계 거물이다. 2005년 온라인사이트 <허핑턴포스트>(허프)를 창립해 최근까지 미국판 편집장이었다. 2011년 인터넷업체 AOL이 허핑턴포스트를 인수한 뒤에도, 2015년 통신업체 버라이즌이 그 AOL을 인수한 뒤에도 편집장 자리를 유지해왔다. 직책을 넘어 그녀는 미국·영국·독일·일본·그리스·브라질 한국 등 15개국에 뿌리뻗은 세계 허프의 상징적 보스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 그가 허핑턴포스트를 떠나 건강을 주제로 한 스타트업 매체 <스라이브 글로벌> 설립에 매진한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자회사이기도 한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김도훈 편집장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가장 먼저 보도했어요. 각국 허핑턴포스트 중에선 캐나다판이 가장 먼저 썼고요.

“극비로 진행하다가 어젯밤에야 <월스트리트저널>이 아리아나의 멘트를 포함한 보도를 제일 먼저 했고요. 허핑턴포스트 미국판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일단 링크아웃했습니다. 그 직후 아리아나 허핑턴이 전 세계 모든 허핑턴포스트 직원들에게 단체 메일을 보냈고, 그걸 토대로 허핑턴포스트에서는 캐나다판이 제일 빠르게 썼습니다. 어쨌든 1시간 안에 미국판과 한국판 등도 따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정도 사안이라도 기사의 형태와 시점은 각국 <허핑턴포스트> 에디션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그다지 없었습니다.

- 극비리에 발표했다는 데 그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땠나요.

“각국 허핑턴포스트 에디션의 모든 에디터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미국판 에디터들도 몇몇 헤드급을 제외하면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미국판 기자들의 트위터도 이 이야기로 폭발을 했거든요). 다른 나라 에디션 편집장들도 슬랙(업무용 메신저)에서 미국판 헤드들에게 “진짜냐?”고 물어보고 확인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극비였습니다.”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회장이 2014년 2월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엔에이치아트홀에서 열린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론칭 기념 토크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회장이 2014년 2월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엔에이치아트홀에서 열린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론칭 기념 토크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아리아나 허핑턴이 그만둔다는 뉴스는 국내외 미디어시장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싫어하든 좋아하든 아리아나 허핑턴은 전 세계 온라인 미디어를 허핑턴포스트 전과 후로 나눌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작은 인터넷 미디어 하나를 11년 만에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미디어 중 하나로 만든 리더가 아예 전혀 다른 스타트업으로 옮겨간다는 사실 때문에 버라이즌의 인수 이후 허핑턴포스트의 방향에 대한 억측이 (특히 한국에서는) 많이 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건 오히려 허핑턴포스트라는 회사가 이제 그녀의 그늘이 필요없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비즈니스적으로나 에디토리얼적으로 그녀 없이도 허핑턴포스트에 미치는 타격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 김도훈 편집장은 아리아나를 만난 적 있죠? 아리아나와 어떤 대화들을 나누었나요. 아리아나가 한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인 말은 무엇이었는지요.

“2014년 2월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창간 때, 그리고 매년 두 번씩 열리는 허핑턴포스트 인터내셔널 서밋에서 만났습니다. 개별적인 대화를 많이 나눌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1분이라도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거물이라서요. 그런데 그녀의 화법은 보스의 화법이라기보다는 ‘엄마'의 화법과 비슷한 게 특징인데, 아마 그게 그녀가 큰 조직을 운영하는 그녀만의 비밀 중 하나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 아리아나 허핑턴은 어떤 사람이죠.

“사람, 더 나아가서 대중의 마음을 간파하는 능력이 거의 초현실적일 정도로 탁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계와 문화계 등등 다양한 유명인들과 오랫동안 깊은 사교를 이어오는 것도 그런 능력의 일부일 겁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건 아리아나가 그런 능력을 미디어를 통해서 발현하는 방식입니다. 이를테면 그녀가 지난 2년 간 허핑턴포스트 전 세계 에디션에 제시해 온 어젠다는 ‘What’s working’입니다. 한국에서는 ‘청신호’라고 번역을 했는데요, 이건 ‘미디어들은 세상이 잘못 되어가고 있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허핑턴포스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사실은 잘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줘야한다’는 취지의 어젠다입니다. 단순히 미담을 더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사회·문화·라이프스타일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세대가 올드 미디어를 왜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가(혹은 올드 미디어의 권위에 식상해하는가)를 정확하게 꿰뚫어봐야 한다는 거죠.”

- 아리아나가 그만둔 것에 대해 각국 허핑턴포스트의 편집장들은 뭐라고 하나요?

“허핑턴포스트 모든 편집장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것을 유머로 승화한다는 겁니다. 대단히 캐주얼한 대화도 자주 나누는 사이들이라, 11일엔 아리아나가 그만둔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일단은 서로의 이름을 이용해서 매체 이름 새로 짓기 농담부터 시작됐습니다. ‘도훈 데일리', ‘사블로프 트리뷴', ‘헐 헤랄드', ‘맥과이어 메일' 등등. 매우 허핑턴포스트답게 근사한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매체들이 보기에는 실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 현재 허핑턴포스트는 15개국에 뿌리를 내렸고, 곧 멕시코판도 생긴다고 들었습니다. 각국의 편집장들은 어떻게 회의를 하고 아젠다를 정하나요. 그 회의에 아리아나는 어떻게 개입하나요.

“1년에 2번 직접 만나는 인터내셔널 서밋에서 큰 방향을 설정하고, 2주에 한번씩 구글 행아웃(화상통화)으로 편집장들만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아리아나는 행아웃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인터내셔널 서밋에는 에디토리얼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 연간 계획 같은 것을 토의합니다. 이를테면, 전 세계의 극우현상과 난민 위기에 대해서 모두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기사를 쓸 것인가,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2주에 한 번 있는 행아웃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각국의 이슈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피칭을 하고, 서로의 기사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모든 게 매우 느슨하고 자유롭게 진행됩니다.”

- 아리아나가 설립에 매진한다는 <스라이브 글로벌>은 뭘 하는 회사인가요. 왜 하필 건강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저도 아주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스라이브’(thrive)는 이미 아리아나 허핑턴이 한국판을 창간하기 전부터 주력하던 이슈입니다. 그녀는 이 주제를 생각하게 된 것이 어느날 오피스에서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다가 쓰러져서 크게 다친 이후라고 종종 말을 해왔습니다. 2014년 한국에도 출간된 그녀의 책 <제3의 성공>의 원제가 ‘스라이브’였듯이, 지속적으로 지난 몇 년간 그녀는 허핑턴포스트를 통해서 ‘성공'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 공을 들여왔습니다. 최근에는 ‘수면혁명'이라는 책을 쓴 뒤 전 미국 대학 투어를 다니기도 했고요. 제 생각에 그녀의 새로운 스타트업은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한국 같은 국가에서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 마지막으로, 못한 말.

“오늘(12일) 허핑턴포스트 CEO가 메일을 전체로 보냈습니다(허핑턴포스트는 누가 그만두고 누가 떠나고 누가 새로운 직함을 맡았다 등등 사소한 이야기도 전세계 모든 에디터에게 전체 메일을 보냅니다). 거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전세계 허핑턴포스트의 다이버스(diverse)한 독자들의 시선을 통해 동시대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보이스’(허핑턴포스트의 지면. 퀴어 보이스, 블랙 보이스, 우먼 보이스 등등)분야를 더욱 성장시킨다.” 그리고 “삶의 건강함, 독자들에게 진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다른 미디어들과 구별된 길을 간다.” 이건 결국 아리아나 허핑턴이 일종의 ‘엄마’로서 제시하던 것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간다는 의미일 겁니다. 어쨌든 이름은 영원히 ‘허핑턴포스트’일테니까요.”

고경태 신문부문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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