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만 3~5세 어린이집·유치원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둘러싼 갈등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불안한 학부모들이 보육료 지원 중단에 따른 자부담을 피하고자 아예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지 않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부 어린이집 원장들은 보육교사 감원을 검토하는 등 보육료 결제일(15일 전후)이 도래하기 전부터 사실상 보육대란이 시작된 모양새다.
8일 서울·경기 지역 보육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보육료 지원 중단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지원이 된다고 언론에 나오면 당장 내일이라도 보내겠다”며 자녀를 아예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지 않는 학부모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ㄱ어린이집 원장은 “현장에서는 이미 여파가 시작됐다”며 “벌써 3명이 못 나오겠다고 한다. 혹시라도 보육료 지원이 중단되면 1월 보육료를 자부담하게 될까봐 미리 등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평년이라면 신입학을 문의하는 학부모들로 분주할 어린이집은 상담이 뚝 끊겼다. 경기도 ㄴ어린이집 원장은 “유치원 등으로 빠져나간 인원을 충원하기 위해 대기명단에 있던 어머님들한테 전화를 하면 ‘지원이 될지, 안 될지 몰라서 걱정이 된다’, ‘5만원, 10만원이 아쉬운데 22만원 내고는 못 다닌다’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동네는 서울에서 전셋값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온 경우가 많아 가계 사정이 안 좋아 더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학부모들은 당장 22만원 정도 되는 누리과정 보육료를 자부담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4살 자녀를 3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게 된 직장인 강아무개(35)씨는 “출산 직후 대기했다가 3년 만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마당에 첫해부터 지원금이 끊긴다니 분통이 터진다”며 “집주인이 월세로 바꿔 월세 부담까지 생겼는데, 보육료까지 내게 되면 소득이 얼마나 떨어지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육교사들은 임금 삭감 우려와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실제 어린이집 원장들은 원아들이 줄면서 보육교사를 감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기도 ㄱ어린이집 원장은 “원래 교사가 7명이었는데,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3명 정도는 내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자 보육교사총연합회장은 “고용 불안은 물론이고, 당장 교사 1인당 30만원의 누리과정 수당이 끊기면, 가뜩이나 임금이 낮은 보육교사들에게는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학부모에게 지원되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는 교사의 보육수당(1인당 30만원)과 어린이집 운영 경비 등으로 쓰인다.
2013년 이후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둘러싼 갈등은 3년째 반복됐지만, 해를 넘기도록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전례는 없어 보육현장의 불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어린이집과 달리 누리과정 예산이 미편성된 것이 이번이 처음인 유치원들은 당장 1월 교직원 월급 줄 걱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관계자는 “교사들은 처우개선비가 따로 나와 사정이 그나마 나아도, 교직원 중에 교사만 있는 게 아니다. 조리사, 보조교사, 행정직, 차량 운전 기사들 월급은 누리과정 지원금이 들어와야 나가는데 속이 타들어간다”며 “당장 다음주까지 해법이 나오지 않으면 학부모에게 자부담 안내문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립유치원의 경우 종일반은 누리과정 지원비 29만원에 기존에 이미 자부담하던 비용 20만~30만원을 더하면 많게는 60만원 이상 유치원비를 부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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