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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정원, 스마트폰 감청 어렵게 되자 ‘해킹 프로그램’ 도입한 듯

등록 2015-07-12 20:07수정 2015-07-13 10:26

서울 마포구 공덕동 나나테크 사무실을 알리는 안내판.
서울 마포구 공덕동 나나테크 사무실을 알리는 안내판.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도입 사실상 시인
지난 2010년 나나테크 통해
해킹팀 ‘RCS’ 우회 구입 추진
2012년 ‘대선개입’ 논란 때도
안드로이드·아이폰 해킹 관련
기술개발·운영 요청 드러나
‘휴대전화 감청 설비가 없어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며 통신업체에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해온 국가정보원이, 뒤에선 스마트폰 도·감청이 가능한 강력한 해킹 프로그램(RCS)을 사들여 수년간 비밀리에 운영해온 정황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이번 파문이 ‘안기부 엑스(X)파일’ 사건처럼 무차별 사찰 의혹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정원 관계자는 12일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이 제작한 해킹 프로그램 ‘아르시에스’ 구입·운용과 관련해 “우리 원의 입장에서 구입한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며 사실상 이를 시인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국정원이 밝힌 휴대전화 감청 건수는 ‘공식적으로’는 ‘0건’이다.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을 계기로 자체 개발한 이동식 이동통신 도청장비 ‘카스’(CAS) 등을 모두 폐기했으며, 이후로 단 한 건의 휴대전화 감청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국정원의 공식 입장이었다. 국정원의 다른 관계자는 “2005년 김승규 국정원장이 ‘우리가 감청 장비를 가지고 있으면 불법 감청의 유혹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모두 폐기하라고 했다. 그 이후로 휴대전화 감청은 단 한 건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을 대신해 해킹 프로그램 ‘아르시에스’(RCS)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공덕동 나나테크 사무실 문이 12일 굳게 잠겨 있다.
국가정보원을 대신해 해킹 프로그램 ‘아르시에스’(RCS)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공덕동 나나테크 사무실 문이 12일 굳게 잠겨 있다.
국정원은 유선전화 감청은 연간 수천건(지난해 5531건)씩 하고 있지만,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휴대전화, 특히 스마트폰 감청은 한 건도 하지 못해 국가안보 관련 수사와 방첩 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해왔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법원의 영장을 받은 휴대전화 통신제한조치(감청)를 허용하고 있는데, 관련 감청 장비가 없어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국정원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면서 합법 감청 쪽은 좀체 ‘동력’이 붙지 않았다. 아르시에스를 개발·판매하고 있는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의 내부 이메일을 보면, 국정원은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이 있고 5년이 지난 2010년 9월, 국내 중소업체인 나나테크를 통해 아르시에스 구입 의사를 밝히며 ‘휴대전화 음성 대화 모니터링 기능’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해킹팀이 이런 요구를 어느 수준까지 충족시켰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공개된 이메일을 보면 이후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의 기능에 만족하고 있다’는 반응을 나나테크를 통해 여러 차례 이탈리아 업체에 전달했다.

특히 국정원은 2012년 대선 개입으로 국회 차원의 국정원 개혁이 진행되던 지난해 3월, 안드로이드폰·아이폰 해킹과 관련한 기술 개발과 프로그램을 운용할 요원의 훈련을 이탈리아 업체에 요청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지난해 1월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통신업체에 휴대전화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서기도 했다.

정보인권단체인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국정원이 겉으로는 휴대전화 감청을 못 한다고 국민을 속이면서 은밀히 휴대전화 도·감청을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불법 행위가 확인되면 관련자들을 즉각 처벌하고 해킹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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