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은 개인 몫을 훔치지만 고위공직자의 부패는 국가 기강을 무너뜨린다. 검사의 임무는 이러한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끝없이 감시하고 처단해야 하는 데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신의 검사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홍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에서 한 말이다. 책 제목에서는 외압에 굴하지 않고 권력 비리를 들춰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실제로 그는 권력 핵심 인사를 여러명 구속해 스타 검사로 이름을 날리다, 이를 발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런 그가 이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억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의 피의자로 8일 옛 직장인 검찰청을 찾게 됐다.
홍 지사는 노태우 정권 초기인 1988년 10월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조카인 김영도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사기 혐의로 구속된 최아무개씨를 풀어주겠다며 285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였다. 이 일은 홍 지사가 5공 비리 수사를 본격화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척이 권력 실세를 동원해 노량진 수산시장 경영권을 강탈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게 된다. 홍 지사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큰형 전기환씨가 청와대 민정수석, 서울시장, 치안본부 간부 등을 동원해 수산시장 경영권을 강탈했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했다. 하지만 사건을 축소하려는 대검의 압박으로 결국 전기환씨만 횡령 혐의로 구속해야 했다고 홍 지사는 밝혔다.
홍 지사는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언론 플레이’에도 능했다. 홍 지사는 당시 윗선의 압력으로 수사팀에서 하차할 지경에 몰리자, 자신을 찾아온 기자에게 사건 내용을 흘린 뒤 언론 보도를 등에 업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책에서 말했다. 현재 불법자금 수수 사건의 피의자인 그가 적절히 언론을 통해 자신을 변론하는 것과 닮아 있다.
홍 지사는 광주지검 강력부에 있을 때는 ‘범죄와의 전쟁’ 분위기에 맞춰 조직폭력배를 잡아들였고 국제-피제이파의 여운환씨를 기소했다. 여씨는 대법원에서 두목의 고문급 간부로 범죄조직을 결성한 혐의가 인정돼 유죄를 확정받았지만 지난해 무죄를 주장하는 책을 펴낸 데 이어 “양심과 진실에 대한 판단은 남아 있다”며 홍 지사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뒤 서울지검 검사로 발령난 홍 지사는 1993년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한테서 5억원을 받은 혐의로 ‘6공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을 기소했다. 여씨 사건과 박 전 의원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소재로 차용돼 홍 지사가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고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발판이 됐다. 고위공직자 부패를 처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홍 검사’는 이제 ‘부패한 고위공직자’란 오명을 뒤집어쓸지 모르는 처지에 놓였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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