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7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에 출근하고 있다. 창원/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법조계 일각 “검사 시절 형소법 이용 반대신문권 보장 안해”
이번엔 “메모·녹취록은 반대신문 기회 없어 증거 안돼” 주장
이번엔 “메모·녹취록은 반대신문 기회 없어 증거 안돼” 주장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억원을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의 ‘장외 자기 변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는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아 증거로 쓰기 어렵다”더니 이번에는 “특신상태(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된 게 아니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사 출신인 그의 과거 수사기법을 들어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 지사는 1일 비서를 통해 기자들에게 쪽지를 보내 “성완종 회장의 메모나 녹취록은 허위·과장과 격한 감정이 개입돼 있어 특별히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태에서 작성된 게 아니다. 메모·녹취록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틀 전에는 “메모는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아 무조건 증거로 쓰면 안 된다”고도 했다. 성 전 회장이 숨져 법정에서 그를 반박하는 신문을 할 수 없기에, 일방적 주장을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홍 지사가 검사 시절 반대신문을 보장하지 않은 전력이 있다며 모순된 태도라고 지적하고 있다. 홍 지사는 서울지검 검사 때인 1993년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한테서 5억원을 받은 혐의로 박철언 전 의원을 기소했다. 홍 지사가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고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게 만든 사건이다.
박 전 의원 회고록을 보면, 홍 지사는 유일한 목격자 홍아무개씨가 진술을 바꿀 우려가 있다며 법원 허가를 받아 재판 시작 전 증인신문을 했다. 박 전 의원 변호인은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홍씨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만을 했고, 이는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됐다고 한다. 박 전 의원은 홍씨가 진술 이후 출국금지가 해제돼 미국으로 떠나 재판이 끝날 때까지 귀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유일한 목격 증인에 대한 공개재판장에서의 신문도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썼다.
당시 형사소송법으로는 피고인의 반박 기회 없이 검찰의 일방적 신문 내용만 담은 조서도 증거로 채택될 수 있었다. 박 전 의원은 이런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고 1996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한 변호사는 “검사 시절 해당 조항을 잘 이용해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은 홍 지사가 이제는 자신의 방어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가 바뀌었기에 홍 지사의 방어 전술을 탓할 수 없더라도, 그 말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 전 회장은 윤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통해 돈을 줬다고 했다. 윤 전 부사장은 “의원회관에서 쇼핑백에 든 1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성 전 회장은 없지만 윤 전 부사장이 유력한 증인이고, 그를 반대신문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홍 지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견해가 나온다. 홍 지사가 수사의 첫 타깃으로 지목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법조인은 “반대신문이 없어서 무조건 증거가 안 된다는 말은 (법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법조인도 “심부름꾼이 있어 메모의 신빙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앙심을 품고 남긴 메모나 인터뷰 녹취록을 특신상태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증거능력 판단은 성 전 회장의 당시 심리상태 및 객관적 자료와 정황을 살펴 궁극적으로 법원이 판단할 대목이라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한편 검찰은 부산고검 주영환 부장검사를 특별수사팀에 추가로 투입할 방침이다.
이경미 최상원 기자 kmlee@hani.co.kr
[관련 영상]성완종 리스트, 검찰은 ‘장부’가 무섭다 / <한겨레TV> 불타는 감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