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관련 홍준표 지사의 발언 변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그동안의 소극적 행보에서 벗어나 폭로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적극 반박하기 시작했다. 일정을 관리하는 비서가 검찰에 출석하는 등 수사의 칼끝이 다가오자 본격적으로 수사와 재판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 지사는 29일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여론재판하고 달리 사법절차는 증거 재판이다. 성완종 회장이 자살하면서 쓴 일방적인 메모는 반대신문을 통해 진실을 따져봐야 하는데, 성 전 회장이 사망해 이를 따질 기회가 없다. 그래서 메모를 무조건 증거로 사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폭로 19일 만에 처음으로 ‘재판’을 염두에 둔듯한 언급을 한 것이다.
홍 지사는 지난 10일 ‘성완종 리스트’가 폭로된 뒤 다른 의혹 당사자들과는 달리 무조건 부인하기보다는 단계별 대응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돈 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배달 사고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이제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에서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잘 아는 검사 출신다운 대응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주말 사이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조사를 받고, 이후 자신의 비서도 검찰에 출석하자 법률적 관점까지 가미해 좀더 적극적인 방어 전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홍 지사는 성 전 회장의 폭로 동기가 “앙심”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성 회장의 <경향신문> 인터뷰 내용을 보고 앙심이라고 판단했다. 성 회장 측근도 메모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갖는 인터뷰를 했다. 검찰도 이 부분을 감안해서 수사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대응에 대해 한 부장판사는 “언론 등을 통해 성 전 회장 주변인물들의 발언이 많아지면 발언의 허점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를 노리면 반박하기가 수월하다. 홍 지사도 그런 점을 잘 아는 것 같다”고 했다.
한편 ‘리스트 8인’ 중 친박 정치인이 아닌 사람은 홍 지사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성 전 회장이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이 김진태 검찰총장의 사법시험(24회) 동기이면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의 대학 선배인 홍 지사에게 모종의 ‘기대’를 걸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자 몹시 서운함을 느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은 목숨을 끊기 직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홍 지사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뭐 그때 공천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 조건 없이 그렇게 했는데 그러고 하니까 너무 배신감이 들고… 세상에 그럴 수가 있나요”라고 했다. 홍 지사는 “2013년 성 회장이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선거법 위반 재판을 도와달라고 했는데, 내가 거절한 일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경미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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