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06년 9월27일(현지시각) 유럽 방문 중 독일 베를린 장벽 현장을 방문해 수행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오른쪽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베를린/연합뉴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는 ‘얼굴 아는 정도’라고 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실장 재직 당시 성 전 회장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2006년 10만달러 수수 의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의원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벨기에 방문에 동행한 김 전 실장은 “항공료와 체재비를 초청자가 부담해 돈 쓸 일이 별로 없었다”며 금품 수수 의혹을 부인했지만, 다른 인사는 “비행기표는 내 돈으로 냈다”고 말해 대조를 이뤘다. 이 때문에 당시 유럽 방문 비용을 누가, 얼마나 댔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성 전 회장은 목숨을 끊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2006년 9월 김 전 실장이 브이아이피(박 대통령)를 모시고 벨기에와 독일에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은 이를 적극 부인하고 있다. 롯데호텔 헬스클럽에 다니는 것도 맞고 독일에 간 것도 사실이지만, 성 전 회장 돈을 받았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출국에 앞서 내 돈으로 5000유로를 환전한 영수증이 있다”고 했다. 그는 16일 통화에서도 재차 “(성 전 회장한테서) 돈을 받은 일이 없다. 당국에서 확인한다면 (환전영수증을 제공)하겠다”며 검찰 조사에 적극 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당시 초청한 쪽(아데나워재단)에서 항공료와 체재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안다. 개인 돈을 많이 써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의 초청 형식으로 출국해 8박9일의 일정을 소화했다. 한나라당 의원 신분이던 김 전 실장 외에 최경환 의원(현 경제부총리), 심재엽 의원, 이정현 공보특보(현 새누리당 의원), 보좌진, 취재진이 동행했다. 한나라당 대표직을 내놓은 지 석달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방문 일정과 방문단 규모에 비춰 볼 때 ‘국가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대권 행보라는 분석이 많았다. 당시 아데나워재단 공식 일정 외에도 파독 간호사·광부 등이 참여한 환영 행사,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프랑크푸르트 기자간담회 등의 행사도 진행됐다.
이에 김 전 실장은 “재단이 어디까지 지원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 항공료와 체재비는 재단에서 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교민 행사 비용에 대한 질문에는 “재단이 거기까지는 돈을 안 댔을 것”이라고 했다.
아데나워재단 한국사무소 행정실장은 “독일 본사 초청 프로그램의 경우 행사 일정과 관련한 항공료와 숙박비, 교통비 정도를 지원한다. 당시 어떤 비용이 집행됐는지는 본사에 직접 문의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김 전 실장과 동행한 심재엽 전 의원은 <한겨레>와 만나 “전체 비용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내 비행기표는 내가 끊었다. 숙소는 한국으로 말하면 모텔급으로 굉장히 열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김 전 실장과 다소 다른 말을 했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초청받은 쪽에서 비용을 대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경우 경비를 측근들이 알아서 조달해야 한다. 당시 수행원 규모와 행사, 참석 규모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남일 김규남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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