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뉴스AS] 손석희 사장님, 이번엔 대체 왜 그러셨나요…

등록 2015-04-16 15:53수정 2022-08-18 17:06

[뉴스 AS]
JTBC 고 성완종 전 회장의 ‘경향’ 인터뷰 파일 공개 논란
‘시청자 알권리’ 주장하지만 ‘특종 가로채기 아니냐’ 지적
경향신문 4월15일치 1면
경향신문 4월15일치 1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녹음파일이 JTBC <뉴스룸>을 통해 15일 밤 공개됐습니다. <경향신문>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박래용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경향신문 기자가 인터뷰한 녹음파일을 아무런 동의 없이 무단 방송하는 것은 타 언론사의 취재일지를 훔쳐 보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 윤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유가족의 동의 또한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JTBC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논란이 일어난 걸까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의 이기수 정책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망자의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에도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여권 핵심 실세들에게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폭로는 <경향신문> 10일자 조간을 통해 터져나왔습니다. 경향신문은 이 50분간의 단독 인터뷰를 토대로 사실 확인 취재에 나섰고, 특종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이완구 총리가 ‘음료 상자를 통해 금품을 건네받았다’는 15일치 경향신문 보도는 인터뷰가 아니라, 추가 취재를 통해 사실 확인된 보도였습니다.

인터뷰한 내용 대부분을 보도한 뒤인 14일, 경향신문은 이 녹음 파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성 전 회장 유족과 상의했다고 합니다. 유족들은 진실 규명과 수사 협조 차원에서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공하는 것에 동의했으며 전문을 싣는 데도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녹음파일의 육성이 온라인에 떠도는 것만은 반대했습니다. 이에 따라 경향신문은 검찰에 녹음파일을 제공하는 한편으로, 15일 제작하는 16일치 지면에 녹취록 전체를 그대로 싣기로 했습니다. 혹시 모를 왜곡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의 첫번째 판 마감 시간은 오후 4시30분입니다. 전문 공개 기사를 완성하는 한편으로, 경향신문은 이 파일을 검찰에 전달했습니다. 이때 ‘디지털 포렌식’(증거 추출) 전문가 김인성씨가 자진해서 경향신문에 찾아와 파일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원본 추출 작업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김씨는 경향신문 기자가 검찰청에 녹음파일을 전달하는 자리에 동석했고, 김씨는 이 과정에서 경향신문에 도움이 되는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씨가 녹음파일을 확보했고, 해당 파일을 오후 6시쯤 JTBC의 한 기자에게 넘겨줬습니다. JTBC가 15일 밤 보도한 ‘성완종 녹음파일’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JTBC는 <뉴스룸> 1부(밤 8시 시작)에서 ‘성완종 전 회장의 마지막 육성을 공개한다’는 예고를 여러차례 내보냈습니다. 김씨는 “경향이 보도하고 나면 활용하라고 넘겨준 것이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경향신문사에 찾아와 잘못을 빌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습니다.

녹음파일 유출 사실을 알게 된 경향신문은 JTBC에 연락해 “방송에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성 전 회장의 유가족도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JTBC는 <뉴스룸> 2부(밤 9시 시작)에서 녹음파일 방송을 강행했습니다.

이날 방송으로 <뉴스룸> 시청률은 급등했습니다. 그동안 시청률은 2%대(이하 닐슨코리아 집계)를 유지했고, 1부 시청률도 2.347%였습니다. 반면 녹음파일을 공개한 2부에선 4.286%로 두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지난해 세월호 특별 취재에서 5%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1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녹음파일 입수 뒤 급박하게 편집을 한 탓에 오류도 발생했습니다. 특히 자막 오류가 많았습니다. “가지치기 수사”라는 발언은 “가로치기 수사”로 잘못 쓰였고, “대통령의 재가”는 “대통령의 죄가”로 잘못 써서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습니다. “모함”이란 말은 “명암”으로, “한나절”은 “한달”로 잘못 썼고,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라는 발언은 “OO회사”로 자막 처리됐습니다.

JTBC의 이번 보도를 계기로 ‘취재 윤리’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김씨와 JTBC에 법적 대응을 할 방침입니다. 디지털 포렌식의 경우 민감한 디지털 정보를 추출해내는 작업으로 작업 수행자가 자료를 훼손하거나 유출하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요. 무단 유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씨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해당 파일은 경향신문 기자가 직접 취재한 내용으로, 권한이 없는 제3자가 다른 언론사에 전달할 권리는 없습니다. JTBC가 이 사실을 알고서도 방송을 강행했다면 법적 책임 문제까지 불거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했다”고 말했지만 갸웃거려지는 대목도 많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라고 말할 수 있을 때는, 대개 공공기관 등에서 숨기거나 감추려 하는 자료이지만 공개했을 때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나 JTBC의 이번 녹음파일 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로 포장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꾸준히 보도해왔습니다. 경향신문이 외압 등의 이유로 사안을 축소했다거나,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었다면 JTBC가 ‘알 권리’를 근거로 인터뷰 전문을 공개하는 등의 보도를 할 수 있겠으나, 경향신문은 이미 16일치에 전문 공개를 예고한 상태였습니다. 검찰에 녹음파일도 전달했습니다. 경향신문 쪽에서 자료의 일부를 감추려 했거나, 검찰 일방에서 사건을 유야무야하려 들 우려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이미 상당 부분이 공개되고 보도된 상태로 JTBC가 보도한 내용 중 새로운 사실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즉 전체 공개는 분초를 다투는 화급한 사안도 아니었습니다. 시청자에게 공개 시각이 몇시간 당겨진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시청자의 알 권리’보다는 ‘특종 가로채기’ 아니냐, 더군다나 입수 과정의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면 ‘취재 윤리보다 시청률을 우선시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고인의 음성을 그대로 방송하는 데 대해 유족이 반대한 것도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지난해 JTBC는 세월호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단원고 학생들이 숨지기 전 찍었던 휴대전화 동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마음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자칫 시청률 위주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진실 규명을 촉구한다는 취지에 유가족 당사자들이 동의했기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 전 회장의 유족들이 방송 전 “전문 공개는 고인의 뜻이나 방송에서 음성을 공개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직접 JTBC에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물론 유족들이 반대한다고 해도 보도해서 얻는 공익성이 더 크다고 판단될 때 언론은 보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JTBC가 내보낸 녹음파일은 이미 공개돼 보도된 자료였고, 유족의 동의 아래 전문 또한 공개될 예정이었습니다.

혹자는 ‘종이 신문보다 방송 매체의 영향력이 큰 만큼, 조간에 보도하기보다는 방송에서 공개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으냐’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방송의 파괴력을 몰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일간지 중에서도 소위 ‘영향력이 큰’ ‘부수가 많은’ 매체가 아닌 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지점을 잘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언론은 ‘취재윤리’를 지키면서 취재원의 신뢰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고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킵니다.

물론 시청자나 독자에게 경향신문이 공개했든 JTBC가 공개했든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개 시점이나 주체가 조금 달라졌다고 해서 사안의 중대성이나 앞으로의 진행이 달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사건으로 JTBC가 쌓아왔던 ‘신뢰’에 다소 금이 갔다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피하기·미루기·조건 달기’...윤석열 노림수는 불구속 재판 1.

‘피하기·미루기·조건 달기’...윤석열 노림수는 불구속 재판

공수처, 윤석열 체포…‘경호처 무력화’ 압도적 경찰력 투입 태세 2.

공수처, 윤석열 체포…‘경호처 무력화’ 압도적 경찰력 투입 태세

[속보] 검찰, ‘국회 봉쇄’ 조지호·김봉식 구속 기소 3.

[속보] 검찰, ‘국회 봉쇄’ 조지호·김봉식 구속 기소

군인권센터 “윤석열 체포 방해는 제2 내란”…경호 담당 군 간부 고발 4.

군인권센터 “윤석열 체포 방해는 제2 내란”…경호 담당 군 간부 고발

‘대왕고래’ 시추 성공해도…“탄소 비용 2400조, 지진 가능성까지” 5.

‘대왕고래’ 시추 성공해도…“탄소 비용 2400조, 지진 가능성까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