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자원외교 수사가 성공불융자 지원을 받은 민간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19일 낮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직원들의 모습이 청사 유리에 비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성공불 융자’ 수사 확대…1곳서 최대 2245억 탕감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기업에 총 350억 지원하기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기업에 총 350억 지원하기도
※성공불융자: 정부가 해외 자원개발 자금을 저리로 지원하는 것으로, 사업에 실패하면 융자금을 탕감해주고 성공했을 때는 원리금보다 많은 금액을 상환하는 제도.
검찰이 성공불융자 심의를 담당하는 해외자원개발협회 심의자료 전체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이 19일 확인되면서, 자원외교 수사가 성공불융자 지원을 받은 민간기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수순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공식적으로는 경남기업과 성완종(64) 회장의 성공불융자 횡령·사기 의혹을 조사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수사 확대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19일 “검찰은 범죄 혐의가 있거나 범죄 혐의가 포착된 부분만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재로서는 경남기업 한 곳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선 인적 물적 여건이 제한되어 있지 않냐”며 “성공불융자를 받은 기업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선긋기에도, 검찰 안팎에서는 자원외교 수사가 성공불융자를 연결고리로 다른 기업들로도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폭 늘어난 성공불융자 지원금이 업계에서는 사실상 ‘눈먼 돈’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된 정황이 여럿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전정희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석유개발 융자는 1984년부터 2013년까지 총 46개 기업에 26억달러가 지원됐지만, 회수된 것은 13억달러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금까지 진행된 석유개발 사업과 광물개발 사업을 통틀어 ‘성공’으로 판정된 사업은 16건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위험성이 높은 자원개발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형편없는 회수율을 보인 것이다. 한국석유공사·에스케이(SK)이노베이션·한국가스공사 등은 2011년 이후 4년 동안 성공불융자를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2245억원까지 탕감받았다.
‘나랏돈이 투입된 기업과 사업에서 일어난 부실 책임을 엄히 묻겠다’는 정부의 기조 역시 자원외교 수사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싣는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해외 자원개발과 관련한 배임, 부실 투자 등은 어려운 국가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며 주요 수사 대상으로 적시한 바 있다. 검찰 수뇌부 역시 지난해부터 재정 투입 사업에서 일어나는 부실 실태를 수사 테마로 잡고 관련 첩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특히 나랏돈이 쓰인 사업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문해왔다”며 “최근 진행되는 포스코와 자원외교 수사는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1차 수사 타깃이 된 경남기업은 2009년에 이어 2013년에 연거푸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지난해에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정도로 재정 상황이 부실한 기업이다.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감당할 여력이 안 됐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경남기업은 2009년 이후에만 14억원 남짓 성공불융자를 지원받았고, 전체 성공불융자 350억여원 중 일부는 사주인 성완종 회장에게 흘러간 혐의가 포착됐다.
이번 수사가 경남기업을 넘어 얼마나 확대될지는 검찰이 확보한 해외자원개발협회 심의자료 분석 결과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의자료에는 성공불융자를 신청하면서 각 기업이 제출한 투자계획서와 실제 자원개발 사업이 진행된 경과 등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이 자료들과 실제 자원개발 진행 현황을 비교·대조하면서 부실 여부를 우선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성공불융자 심의가 비합리적으로 진행된 경우들이 확인된다면 수사는 심의위원회 쪽으로 번질 수도 있다. 또 이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들의 금품수수는 물론 정치권과 관련된 로비와 외압 사실이 튀어나올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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