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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절망이 커져갈 무렵…상상에서 희망 봤어요

등록 2015-03-13 20:40

지난달 28일 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소셜픽션 콘퍼런스’에 참여한 이 주무관이 행사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소셜픽션 콘퍼런스’에 참여한 이 주무관이 행사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소셜픽션-20대가 그리는 대한민국 ④
[소셜픽션 그 후] 공무원 이지연씨의 하루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게 복지다.”

지난달 28일부터 1박2일 동안 열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소셜픽션 콘퍼런스’에 참가한 이지연(27)씨가 누군가 포스트잇에 적은 이 문구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이씨는 서울 강북구청 주민생활지원과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주무관)이다. ‘그래, 맞벌이로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 결손가정의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 복지였지….’ 이씨 마음속에 복지의 의미가 새롭게 스쳐갔다.

구청 사회복지 담당 3년차
사회 밑바닥 현실에 절망의 시간
대회 참가 뒤 자라난 희망
“가슴으로 이해하니 공감 커져
그분들에게도 희망 찾아줄 것”

이 주무관은 2013년 1월 임용장을 받고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고등학교 때부터 간절히 꿈꿔온 길이었다. 밤새는 줄도 모르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지원사업 지침’과 같은 500여쪽 분량의 지침서 10여권을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정작 지침서 밖에 있었다. 부족한 예산과 인력에 매일 허덕이고, 그 어떤 복지 서비스로도 사회 제일 밑바닥 현실은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빈곤 문제는 정말 나라님도 해결할 수 없는 걸까.’ 희망보단 절망이 커져갈 무렵, 이 주무관이 만난 것이 바로 이번 소셜픽션 콘퍼런스였다.

이 주무관은 콘퍼런스에 제대로 참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정책 자료를 읽으면서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대비도 했다. 그런데 콘퍼런스에선 현실은 잊고 ‘백지’상태에서 희망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예산, 인력 같은 현실적인 제약 조건은 일단 휴지통에 집어던지세요.” 사회자의 시원한 일갈에 되레 마음이 편해졌다. “그동안 저 스스로 저한테 꿈꿀 자유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여기 와서 느꼈어요.” 그는 자신에게 무작정 꿈꿀 기회를 줘보니, “집단상담처럼 지친 것도 치유되는 느낌이 들면서 다시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셜픽션 행사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지난 2일 오후, 회색 운동화를 신은 이 주무관이 지도를 들고 강북구청 본관 2층 주민생활지원과를 나섰다. 여느 때처럼 기초생활수급 실태를 조사하러 구민들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단순히 돈이나 물리적 지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삶의 향기를 전하는 게 복지 아니겠어요?” 소셜픽션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온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사진①)

이날 이 주무관이 처음 만난 실태조사 대상자는 청년단독가구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아무개(30)씨의 부모다. 이혼 뒤 심리적 충격을 받아 정신분열을 겪고 있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부모는 이미 1억7000여만원을 썼다. 5개의 연금보험을 해약(1억3000여만원)한 것도 모자라 여동생에게까지 900여만원을 빌려 치료에 썼지만 아들은 여전히 차도가 없다.

실태조사는 이어졌다. 이번엔 충북 음성의 시골마을에서 서울로 이사 온 박아무개(88) 할머니였다. 박씨는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에 갇혀 지내고 있다. 이 주무관을 본 박씨가 “전화만 와도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고 반가워했다.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는 주민이 있으니 보람을 느끼는 거지요.”(사진②, ③)

사실 이 주무관은 ‘내가 낸 세금이 얼마인데 기초수급이 이것밖에 안 되냐’, ‘딸보다 어린 것이 왜 사생활을 간섭하냐’며 화내는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기운이 쭉 빠지기도 했다. “사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양가적 감정이 있었죠. ‘복지공무원이 아니면 이분들이 누구한테 이런 하소연을 하겠느냐’며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소셜픽션에 참가한 뒤 그는 가슴으로 조금 더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얼마나 희망이 없고 답답하면 화를 내겠어요. 그간은 저도 지쳐 있는 상태여서 그분들의 ‘힘들다’는 말에 100% 공감하긴 힘들었어요. 하지만 소셜픽션에 참가하면서 저부터 희망을 갖게 되니까 공감이 더 잘되는 것 같아요. 이분들에게도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것들을 열정적으로 찾게 됐거든요.”

이 주무관이 실태조사를 끝내고 구청으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6시15분.(사진④) “앞으로 2시간 정도, 조사 내용을 정리해야 퇴근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이 주무관은 밝게 웃었다. <끝>

글·사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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