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1945, 희망 2045] ② 소셜픽션-20대가 그리는 대한민국
20대들이 만든 ‘불만합창’
20대들이 만든 ‘불만합창’
“서류에 면접에 난 푹 쩔어버렸어/ 그때는 몰랐어/ 다 붙을 줄 알았어/ 어릴 적 내 꿈 해외배낭여행/ 미쳐 미쳐, 생각지도 못하네. 오 당장 당장 알바 뛴단 말이야/ 오 여행 나에겐 사치란 말이야~.”
지난달 28일 경기 안산시의 대부도 끝자락에 위치한 경기창작센터 강당은 20대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소셜픽션 콘퍼런스’에 참여한 이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율동이 곁들여진 노래로 거침없이 풀어냈다. 가사들은 자뭇 심각했지만 분위기는 노래 경연 오디션인 ‘슈퍼스타케이’처럼 뜨거웠다. ‘불만 합창’은 본격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에 앞서, 나를 둘러싼 제약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노래에 담아 토로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20대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을 담아 개사한 노래 가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단어들을 빈도에 따라 크기와 명암(색깔)을 달리해 표현했다.
현실 제약·사회 불만 노래담아 “서류에 면접에 난 푹 쩔어버렸어”
“나는 열정페이 일노예…징글징글”
“갑뚜기 월드 오신 걸 환영합니다” ‘냉면’, ‘정주나요’, ‘말하는 대로’ 등 20대들에게 인기있는 ‘무한도전 가요제’ 노래 6곡을 놓고 6개 팀들은 마루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머리를 맞댔다. 프로그램 사회를 맡은 송하진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사회에 갖고 있는 다양한 불만을 노래로 만들어 불만을 토로하고 해결책을 도모하자. 불만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며 운을 뗐지만, 이날 처음 본 참가자들은 서먹서먹해했다. 하지만 각자가 안고 있는 고민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율동으로 몸을 부대끼면서 이런 서먹함은 금세 사그라졌다. 노래를 빌려 표현한 청년들의 고민은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가 압도적이었다.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의 가장 큰 장벽이 일자리 문제라는 방증이다. 여기에 학자금 대출과 주거비용 등으로 과도한 빚에 허덕이고, ‘갑질’에 우는 청년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압구정 날라리’를 개사한 팀에서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여행가/ 돈이 없어도 오늘만은 상상해/ 내가 배낭 메고 가는 곳은 열람실”이라는 가사를 담아, 여행의 상징인 배낭을 메고 취업 준비를 위해 열람실을 가야 하는 청춘들의 현실을 풍자했다. ‘말하는 대로’ 팀에서도 높은 대학등록금으로 허리가 휘지만 취직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20대들의 좌절감을 가사에 담았다. “나 졸업 동시에 삼천을 빚지고/ 불안한 이력서를 넣을 때면/ 연락 없었지/ 연락 없었지/ 걱정을 했지/ 사회는 나에게 도전을 강요해/ 보태준 것 하나도 없으면서/ 삼포세대래/ 달관세대래/ 박선민데.” ‘메뚜기 월드’를 개사한 팀에선 저임금을 주며 청년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악용하는 ‘열정 페이’를 고발했다. “나는 열정페이 일노예/ …징글징글 따지는 건 많아…/ 불금에는 야근 주말에도 출근/ … /내일 일은 오늘로 땡겨버리고 월급날짠 다음달 이월해요.” 이들은 노래 제목인 ‘메뚜기 월드’에 빗대 ‘갑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갑뚜기 월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비꼬기도 했다. “갑뚜기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서로서로 경쟁해서 이겨야 해욥/ 경쟁해서 이긴 사람 누구 있나요/ 갑뚜기만 좋은 일 우린 호구.” 특히 ‘메뚜기 월드’팀은 노래를 마친 뒤 여성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의 무릎을 꿇리며 물병을 집어던지는 ‘땅콩 회항’ 퍼포먼스를 벌여 다른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불만에 갇힌 20대들은 답답한 현실의 족쇄를 벗어나 꿈꿀 수 있는 사회를 간절히 갈망했다. 이들이 30년 뒤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상상하는 자리에 참석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 아직 창창하단 말이야/ 이런 사회에선 꿈꿀 수 없어/ 스펙은 제쳐두고 떠날래/ 가슴이 뛰는 일을 찾을래/ 내 바람이 이뤄진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야~.” ‘정주나요’팀이 ‘가슴이 뛰는 일을 찾을래’라는 대목을 부르자, 무대 아래에선 “우와~ 잘한다”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간혹 손발의 움직임이 어긋나는 어색한 율동이 나왔지만, 달아오른 분위기에 감칠맛을 더하는 양념이었다. 행사에 참가한 나대엽(22)씨는 “사실 (노래 가사 바꾸기나 율동은) 해보지 않은 것이라 처음에는 부끄러웠다”면서도 “개사한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안산/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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