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효리씨가 2014년 12월 19일 오후 제주 애월읍 장전리 하루하나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쌍용차 해고 노동자 고공 농성’ 응원한 이효리 제주 인터뷰 (상)
“좌효리? 다 같이 사회에 관심을 갖자고 말하면 좌인가요?”
“좌효리? 다 같이 사회에 관심을 갖자고 말하면 좌인가요?”
‘청순 글래머’는 한국 남성이 욕망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이다. 몸은 빵빵하고 얼굴은 예쁘되 남성을 압도하지 못하는 수동성을 지닌 여성. 그런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다’는 평을 호평으로 듣는 여성은 흔치 않다. 가수 이효리는 그런 흔치 않은 여성 중 하나다. 이효리는 섹시함과 당당함을 공유한 스타임에도 팬층의 지지는 젠더를 막론한다.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여성 역시 한국 사회에서 환대받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가 그렇듯, 여성 역시 권리를 요구하는 주체로 나서는 순간 배척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가수 이효리에게는 정치적 발언마저 트렌드로 만드는 힘이 있다. 채식을 하고 동물권을 외치는 이효리의 행동은 채식의 철학과 동물 보호의 정치 위에 세련된 스타일을 입힌다. 심지어 직접 기른 작물을 먹고사는 귀농의 삶 위에도 트렌드를 칠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고 노동자 문제다. 이효리는 70m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을 응원하며 “해고자들이 복직하면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겠다”는 글을 18일 트위터에 남겼다. 노동 문제는 한국에서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최전선이다. 그는 여전히 당당함이나 세련됨으로 호평받을 수 있을까?
우선 이효리의 말을 들어봐야 했다. 1년쯤 전 제주도에 이주한 뒤로는 처음 하는 일간지 인터뷰다. 한달음에 달려가 지난 19일 제주시 장전리 하루하나 카페에서 만난 이효리는 그러나, 당당함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미칠 파급을 걱정하는 얼굴로 “그 트위트를 쓴 뒤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가수 이효리씨가 19일 오후 제주 애월읍 장전리 하루하나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가수 이효리씨가 19일 오후 제주 애월읍 장전리 하루하나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친구들이 모두 유치원 가면 혼자 놀았죠
중·고교 때까지 줄곧 어렵게 생활했어요
저희 식구들은 그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 막내라서 부모님이나 언니, 오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건 아닌가요? = 부모님이 함께 일을 하시니까 대화를 한다거나 케어를 해주신다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큰언니가 봐줬고, 조금 크면서부터는 모든 걸 제 스스로 해결했죠. 유치원도 못 갔어요. 친구들이 모두 유치원 가면 저는 혼자 돌아다니며 놀았죠. 막내라서 부모님에게 찡찡대며 애교를 부린다거나 했던 경험이 없었어요. 저희 식구들은 그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 그런 환경이 효리씨의 지금에 영향을 어느 정도 끼쳤나요? = 저는 돈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이나 멸시당해 힘들어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불끈불끈 솟구쳐 오르고 막, 그런 마음이 있죠. 동물 보호를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제일 약한 것이 동물이니까요. - 그런 환경에서 연예인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요? = 어렸을 때는 그냥 ‘아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정말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야지’라는 쪽으로 시선이 더 갔죠. 완전히 올인했죠, 10~15년. 그러면 부유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계속 마음속에 공허함이 생기고,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도 않고, 계속 불안했죠. 어느 순간 ‘아, 이건 아니구나’ 싶었고, 그때부터 저만의 시각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아요. - 어린 시절부터 “쟤 섹시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뭇 소년들의 성적 판타지 대상이었는데요. = 저는 그런 시선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를 뭔가 우러러보는 것 같고. 어디 가도 더 대접받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불편해졌어요. 광고 같은 것을 찍으면 광고주들이 “가슴을 더 모아라”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죠. 그런 요구를 받으면 너무 상품 취급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되게 기분이 안 좋았어요. 27~8살 때쯤이었죠. 그런데 더 나중에는 어차피 돈을 주고 나를 팔면서 뭔가 일말의 자존심이라도 지키려고 하는 모습 자체가 좀 모순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광고를 하지 말아야겠다 했어요. - 어느 순간 매트릭스를 탈출한 거군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 때문에 여전히 견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탈출보다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 네. 그런데 어차피 개선의 여지가 없는 거니까요. 우리는 돈을 받고 광고주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시스템이니까…. - 효리씨는 자신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요. = 저는 그런데 사실 진보가 뭐고 보수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편하게 강자 편에 서기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할 말을 하고 사는 것이 진보라고 한다면 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어요. - 트렌드를 세팅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 제가 정혜신 박사님께 심리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있는데, 5감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해요. 촉이 남달라서 그냥 해도 그게 곧 유행이 되고 그런 게 있을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예전에는 그랬어요. 그런데 동물 보호 등과 관련한 발언을 할 때는 생각보다 따라와 주지 않더라고요. 전에는 제가 뭘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그래서 ‘아 이제 내가 이런 걸 하면 사람들이 이걸 많이 해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쪽 분야는 반응이 적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인기가 있을 때 더 일찍 시작할 걸’(좌중 폭소) 했죠. 예전에 좀 더 일찍 이런 걸 알았다면, 사람들이 더 나를 좋아할 때 그때 내가 시야가 넓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어요. - 사람들이 여전히 가수 이효리나 방송인 이효리를 보고 싶어해요. = 앨범 작업은 계속 하고 있어요. 곡도 쓰고 가사도 쓰고 그래요. 그런데 최근 종영된 ‘매직아이’를 오랜만에 하면서 예전에는 못 느꼈던 것을 많이 느꼈어요. ‘공중파 예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 시청률이나 광고가 따라붙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내가 진짜 궁금한 이야기를 물어볼 수도 없고, 내가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러면서 공중파 예능에 대한 회의가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연예인’ 이효리 “공중파 예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
시청률이나 광고가 따라붙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그래서 회의가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 그럼 가수 생활은 공연 위주로? = 그렇게 꼭 한정 짓고 싶진 않지만 이 상태로 생활하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웃음) 뭐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는 TV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이젠 사실 그렇고요. 지난번 활동 때도 그런 곳에 나가는 게 불편했어요. ‘1번 눌러주세요’라며 투표해달라고 호소하고 이러는 게 사실 음악과는 아무 의미와 연관성이 없는데, 방송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 하니까요. 왜 해야 하지? 이러면서도 말이죠. ‘아 이젠 이런 데 못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수 이효리씨가 19일 오후 제주 애월읍 장전리 하루하나 카페에서 남편 이상순씨와 함께 대화를 하고 있다. 테이블 아래 반려견 석삼이가 있다. 제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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