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2월 충남 안면도 해상훈련장에서의 특전사 훈련 모습. 특전사는 하사부터 출발하는 간부 위주의 조직으로 남다른 창의성이 요구된다. 이런 특전사의 집단정신에는 지나친 과시욕이나 공명심, 인간의 한계를 성찰할 수 없는 편향성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군사
특전사 훈련 사망 사건
‘가제트 전사’들이여 한계를 성찰하라
철도노조 파업 대체인력으로
철도대 학생 대신 특전사 투입
유사시 북한 침투해 교통 장악
임무 위해 평소에 운행 연습
암살·구조·폭파 등 전천후 능력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
‘가제트 신드롬’ 구현한 전사
불굴 용기 본받을 점 있지만
인간존중 덕목 균형 갖춰야
안타까운 죽음 더 안나올것
특전사 훈련 사망 사건
‘가제트 전사’들이여 한계를 성찰하라
철도노조 파업 대체인력으로
철도대 학생 대신 특전사 투입
유사시 북한 침투해 교통 장악
임무 위해 평소에 운행 연습
암살·구조·폭파 등 전천후 능력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
‘가제트 신드롬’ 구현한 전사
불굴 용기 본받을 점 있지만
인간존중 덕목 균형 갖춰야
안타까운 죽음 더 안나올것
▶ 검은베레. 육군 특수전사령부, 줄여서 특전사의 표지입니다. 검은 베레모를 상징처럼 쓰고 다니는 이들은 전원이 하사 이상의 간부로 구성된 특수부대로, 전시에 적진 깊숙이 침투해 특수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만큼 뛰어난 자질을 지닌 사람을 선발해 고도의 훈련을 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소중한 군사자원이 모의훈련을 받다가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특전사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 노조원들의 파업이 진행되던 지난해 12월. 수도권 전동차 운행을 위해 총 450명의 군 장병이 기관사로 투입되었다. 이 중 대부분은 특전사 부사관들이었다. 최초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철도대학 학생들이 과천청사역에서 전동차 출입문에 끼어버린 80대 노인을 사망하게 하는 사고를 내자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파업 9일째 되던 날에 이들을 전부 특전사 인력으로 교체했다. 왜 특전사 부사관들이 철도대학 학생들보다 기관사 능력이 더 우수할까? 왜 철도 파업이 일어나면 특전사가 철도 운용을 책임지게 될까? 이 의문의 해답은 지하철과 철도가 주된 교통수단이라는 북한의 물류 환경에 있다. 전쟁이 나면 전선이 아닌 북한 심장부로 침투하는 특전사는 평양의 지하철을 비롯한 북한 전역의 철도를 조속히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물류를 장악하면 북한의 혈관이 마비되어 전쟁수행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되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을 점령하고 난 이후에 아군에 유리한 물류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특전사는 북한 교통을 장악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특전사 병력이 철도 파업에 투입된 것은 일종의 실전 훈련과도 같은 효과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평양 지하철 장악을 위한 기관사 양성
북한의 중심부로 침투하여 우호세력과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분란을 일으키면 북한 정권은 일대 혼란에 빠져 전쟁수행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된다. 이를 통해 국군의 북진 기동을 보장한다는 것이 국방부의 ‘제4의 전쟁’ 개념이다. 이 시나리오가 성공하려면 우리 특전사와 정보기관은 평시에 북한 내 우호세력과 접촉하는 비밀공작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지상·해상·공중으로 동시에 국경과 내륙, 비무장지대(DMZ) 북방에 특수부대를 침투시킨다. 특전요원들은 북한 내 우호세력을 조직화하여 그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북한 내에 유격기지를 구축한다. 이를 발판으로 북한 안에서 혼란을 조성하는 이른바 ‘분란전’을 수행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특수부대와 우호세력이 북한의 중심을 협공함으로써 아군 기동부대의 북진을 촉진하여 점령지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점령 후에도 북한의 사회기반을 조속히 장악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특전사는 평시에도 철도 운행을 위한 연습을 해왔던 것이고, 이것이 엉뚱하게도 철도 파업에 기관사 대체인력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결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특전사는 사격, 낙하, 암살, 래펠(현수하강), 구조, 폭파 등 다양한 기능을 평소부터 습득하여 전천후 특수작전에 대비하여야 한다.
어쩌면 전쟁의 판도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이러한 특수전 임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은밀하면서도 위대한 임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례하여 가장 위험하기도 하고 성공 가능성도 불확실한 도박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특히 북한군의 포로가 됐을 경우 아군의 침투 목적과 침투 인원, 집결지에 대한 정보는 작전 전체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적군은 고문을 가해서 이를 최대한 빨리 알아내려고 한다.
지난 9월2일에 특전사 하사 2명이 포로 체험 훈련을 받던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충북 증평에 소재한 제13 공수특전여단 예하부대에서 진행된 이날 훈련은 저녁 9시께에 시작되었다. 양팔과 발목을 뒤에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머리에는 두건을 쓴 상태로 있었다. 이윽고 밤 10시쯤부터 한계에 달한 이들은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욕을 하는 등 이상증세를 호소했지만 교관들은 훈련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를 방치하였다. 이윽고 10시30분쯤에 호흡곤란을 보인 2명의 하사가 안타깝게 사망했다. 이 사건을 통해 특전사는 올해부터 포로 체험 훈련이라고 하는 생존·회피·저항·도주 훈련(세레. SERE: Survival Evasion Resistance Escape)을 도입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이 훈련은 한국전쟁 당시 적지에 추락한 조종사들이 공산군의 위협 속에도 안전하게 아군 진영으로 복귀하도록 하는 훈련에서 유래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발전된 계기는 베트남전쟁이다. 1968년 미군이 월맹군의 포로가 되어 미국의 체제를 비판하는 등 적국을 찬양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충격으로 군사심리학자들의 연구가 더해져 오늘날의 훈련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미국의 연구가들은 포로가 되더라도 쉽게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병사와 쉽게 발설하는 병사의 차이를 뇌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코티졸) 분비량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즉 코르티솔이 적게 분비되는 병사가 고통에 둔감하여 극한의 상황을 더 잘 견뎌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코르티솔의 분비 여부는 선천적이기보다 후천적으로 학습된 결과라는 점도 밝혀졌다. 이러한 코르티솔을 억제하는 것은 통제감과 신뢰인데 1978년 몬트리올신경학회는 포로체험 실험 전에 계산 문제 등 몇 가지 테스트를 하게 되면 코르티솔이 낮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군은 이 훈련 전에 인지심리검사를 실시하여 훈련에 적합한 자와 부적합한 자를 구별한다. 훈련의 최종 목적은 적지에서 생환이 목적이지만 목적 달성을 위한 통제력과 신뢰감을 높이는 심리적 훈련도 중시된다.
이라크 군장성을 질식사시킨 바로 그 SERE
따라서 세레 훈련의 목적은 육체적 고통이라기보다 공포감을 극복하는 심리적 훈련이다. 고문을 극복하는 것이 육체적 요인이 아니라 심리적 요인에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미군을 비롯한 영국, 스페인 등의 국가들이 이 훈련을 정착시킨 것은 특수전에 임하는 심리적 요인을 강화하는 것이고, 또 훈련 중 비상사태에 대한 매뉴얼을 갖춤으로써 그 안전성도 높이려는 의도다.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면서 이 훈련을 역으로 포로 심문 과정에 적용해 논란이 된 바 있다. 2003년 11월 하미드 무후시 이라크 공군 장성을 침낭에 묶고 심문하던 중 사망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식 세레 훈련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고문 훈련이 존재했으나 최근에는 실행되지 않았다. 다만 적지 도피 및 탈출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육군보병학교 동복유격장에서 초군장교를 대상으로 비교적 낮은 수준의 고문훈련이 존재했다. 훈련은 개인별 차이는 있지만 각목주리, 이물질을 첨가한 물을 코로 넣는 고문, TA312(야전전화기)와 야전선을 이용한 전기고문 등이었다. 2002년 중단되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훈련은 숨을 참는 육체적 훈련이 아니라 복면으로 가려져 포로로서 겪는 심리적 위축과 공포를 극복하는 훈련이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통풍이 되지 않는 폴리에스테르 소재를 사용하고 끈으로 이를 밀봉하여 질식으로 2명의 부사관이 사망하였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매뉴얼에는 수용자의 두건은 통풍이 되는 소재를 써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여러모로 세심한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9월15일 본훈련을 앞둔 리허설 중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훈련을 성급하게 서둘렀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또 한국군의 훈련과 평가에 대한 인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의 경우 개별 팀이 겪은 돌발 상황에서 리더의 리더십, 그리고 각 팀원들의 협조와 희생 등 과정에서의 팀워크를 중시하지만 한국군은 팀별 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사고가 났다는 지적이다.
다부진 체격과 다양한 능력을 보유한 특전사 대원은 일반인에게 강한 자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화제를 모은 ‘가제트 형사’에 대한 신드롬과 유사하다. 가제트 형사의 팔은 만능이다. “나와라 만능 팔”이라 외치면 모자가 열리고 돋보기, 망치, 회전날개와 같은 각종 도구를 든 로봇 팔이 튀어나온다. 금속 팔로 고층 빌딩을 오르내리는 가제트 형사는 스파이더맨의 변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가제트 형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능자, 만능맨이라는 이미지로 구성된다. 이것이 강한 것에 대한 무한 욕망을 자극하는 일명 ‘가제트 신드롬’이다. 다부진 체격과 못하는 것이 없는 특전사의 이미지와 닮아 있다. 창공을 휘저으며 낙하하는 것이라든지, 철도 파업 현장까지 뛰어들어 능숙하게 기관사 업무를 수행하는 검은 베레의 특전요원은 바로 가제트의 이미지다. 대부분 특전 병영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이나 특전사를 자원하는 동기는 “교관이 너무 멋있어서”, “흥분이 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대부분이다. 인내심, 극기심을 배양하여 강한 자로 재탄생하고자 하는 열망은 바로 특전사의 집단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귀신같이 접근하여, 번개같이 타격하고, 연기같이 사라져라”는 구호에는 일종의 신비감까지 배어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사 구호에도 드러나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강한 신념과 불굴의 용기에는 분명 우리가 본받을 점도 있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며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강한 자의 면모이다.
1979년의 해병대와 1980년의 특전사
특전사는 4년을 기본으로 하사부터 출발하는 간부 위주의 조직이다. 적 후방에서 작전을 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직업군인들로 조직을 구성한다. 적지에 침투해서는 대규모 부대 기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규모 팀별로 작전이 수행된다. 사령관은 적지에 함께 가지 못하고 후방에서 작전의 결과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팀은 자체적으로 작전을 구상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남다른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런 특전사의 집단정신에는 지나친 과시욕이나 공명심, 인간의 한계를 성찰할 수 없는 편향성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이번에 부사관이 훈련 중 사망한 사건은 바로 그런 편향성이 주범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특전사와 비견되는 조직은 바로 해병대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 근무하던 2003년에 해병대 예비역은 필자에게 놀라운 말을 했다. 1979년에 부산과 마산의 민주화 시위로 소요사태가 일어났을 당시에 진압군으로 출동한 해병대는 단 한 명의 시민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 맨 앞은 병장이 서고 맨 뒤에는 이등병이 서서 시민이 던지는 돌을 맞았다. 이윽고 부산역에 출동한 진압장교가 부산역 매표소의 직원과 이후 결혼하게 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이듬해인 1980년에 광주에 출동한 특전사 요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초기 소요사태의 강도로 보자면 부산과 마산의 과격성에 비해 광주는 매우 규모가 작았고 폭력의 강도도 낮았다. 그러나 간부로 구성된 특전사는 감히 자신에게 도전하는 시민을 용납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그것이 한국 현대사에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극단적 폭력사태로 나아갔다. 강한 조직, 강한 인간이라는 그 반대편에는 인간 존중, 겸손과 관용이라는 또 다른 덕목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이 점은 1979년과 1980년의 정치 환경의 차이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해병대와 특전사라는 조직의 속성에 대한 비교 연구를 해볼 가치가 있다. 이 해병대 예비역은 이런 논거로 “이라크에도 특전사를 파병하지 말고 해병대를 파견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론>을 지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 도덕의 논리를 개입시키지 말라”며 “전쟁이란 극단적 폭력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점대로라면 일단 특전사를 광주에 투입한 이상 더는 도덕과 인본의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광들이 자신의 말을 악용할 것을 우려했는지 “전쟁은 전쟁 밖으로부터의 목적, 정치적 목적에 종속된다”고도 말했다. 우리가 왜 북한에서 분란전을 수행해야 하는지, 북한에서 우리의 우호세력은 누구이며 파괴해야 할 적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 정치의 몫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비록 우리가 특전부대를 운용하는 안보상의 필요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국민에게 아픔이나 불편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요구를 재확인해야 한다. 진정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을 이성적으로 분별하되, 그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두 하사의 죽음이 촉구하는 자성의 교훈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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