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가족
▶ 엄마와 딸은 애증의 관계입니다. 때론 친구처럼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주다가도 사소한 일상 문제로 전쟁을 치르곤 하죠. 특히 딸자식의 ‘순결’ 문제를 대할 때 엄마든 아빠든 방어적이 됩니다. 집에 들어오는 통금시간을 두고 딸의 밤 시간을 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겠죠. 언니는 이런 엄마의 보호를 간섭을 넘어 집착으로 느꼈습니다. 마침내 가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엄마와 딸의 전쟁 들어보실래요?
언니가 가출했다. 집에서 자는 횟수가 현저히 줄더니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한 달 전 전화를 했을 때 친구 집에 얹혀산다고 했다. 그새 짐도 꽤 옮긴 듯 보였다.
“엄마한테 허락은 받았어?”
“내가 뭐 애냐? 말은 안 했는데 대충 알고 있을걸? 짐이 없어지는 게 보이잖아.”
언니는 올해 스물아홉 먹었다. 나이로 보자면 ‘독립’이 더 적합한 말일 테다. 그래도 몰래 짐을 하나둘 옮기는 모양새는 ‘가출’에 가깝다. 언니는 사실 독립해 살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작은 중소도시에 있는 고향집은 부모님이 잠을 자는 시골집과 언니와 남동생이 잠을 자는 시내집 두 곳이 있다. 시내집은 부모님이 낮에 나와 장사를 하는 가게인데, 방 2개와 화장실, 부엌이 딸린 상가였다. 낮에는 부모님이 장사를 하고, 밤에는 언니와 동생이 숙소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9개월 전 남동생이 일본으로 관광취업을 떠나고는 온전히 언니 혼자만의 숙소이기도 했다. 언니가 출근한 뒤에 부모님이 가게에 나왔고, 부모님이 퇴근한 뒤에야 언니는 퇴근해 가게로 왔다. 사실 ‘가출’할 이유가 없었다.
주말이면 2시간 간격으로
언니에게 “어디냐”는 문자
안 받으면 20통씩 부재중전화
하다 하다 안되면 나에게 연락 애인 데려온 언니 동거 암시에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딸 둘 데리고 순결 일장연설
가출 소식에 난리가 났지만… 언니는 ‘엄마의 집착’을 탓했다. 엄마는 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집에서 자라.” 엄마가 가게로 출근한 뒤인 아침 10시에도 문자가 왔다. “어디서 잤니?” 화장실에 씻고 난 흔적이 없거나, 언니 방에서 옷을 갈아입은 흔적이 없으면 엄마는 언니가 집에서 자지 않았다고 의심부터 했다. 두 달 전 고향집에 갔을 때도 엄마는 내게 물었다. “이 지지배 안 들어왔냐? 씻은 자국이 없는데?”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같이 잤지. 야식 먹고 늦게 일어나서 아침에 후다닥 튀어나갔어.” 엄마는 항상 두 딸의 외박에 민감해했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수련회나 친척 집이 아니고서는 집밖에서 자본 일이 없었다. 연년생인 남동생은 그전부터 친구 집이든 찜질방이든 잘만 자고 다녔다. 지금도 엄마는 저녁마다 ‘어디’라는 두 글자를 찍어 보낸다. 취침 전 전화를 걸 때면 “집이니?”라는 물음이 첫번째다. 이 정도에서 끝났다면 언니는 “엄마가 나한테 너무 집착해”라고 말하진 않았을 거다. 엄마가 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은 1년 전부터다. 엄마는 주말이면 2시간 간격으로 언니에게 “어디냐”는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안 받으면 20통씩 부재중전화를 남기기도 했다. 전화를 하다 하다 안 받아 울화통이 치밀면 내게 전화를 할 때도 있었다. “이 연놈들이 뭘 하길래 전화도 안 받고….” 그런 전화는 항상 이렇게 시작했다. 그때쯤 언니에겐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 사귄 지 한 달도 안 돼서 언니는 결혼할 거라며 엄마에게 애인을 소개했다. 엄마는 탐탁해하지 않았다. 더 사귀어본 다음에 결정하라 했다. 그리고 6개월 뒤 언니는 “어차피 결혼할 건데 같이 살다 식 올리면 안 돼?”라고 물었다. 엄마는 “개소리”하지 말라며 눈을 치켜떴다. 아마 이때부터 엄마는 언니를 더 예의주시했을 터다. 엄마의 이런 ‘집착’에 언니가 폭발한 때도 있었다. “내가 밖에 나가면 뭐 나쁜 짓 하고 돌아다녀? 내 나이가 애 배서 결혼하는 게 남사스러울 때도 아냐. 내 친구들 다 그렇게 결혼해. 어디서 뭐 하고 다니는지는 왜 그렇게 캐묻는 거야. 정말.” 전화를 받자마자 격앙된 목소리가 내게 쏟아졌다. 세태는 변했지만 엄마에겐 통하지 않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런 꼴은 못 봐”라는 것이 엄마의 입장이었다. 세상 어느 엄마가 딸이 결혼 전에 임신부터 한 모습을 보고 싶겠냐는 것이다. 엄마는 여느 보수적인 어른들처럼 여성의 순결주의를 강조했다. 내가 상경할 때도 딱 한마디 했다. “몸 간수 잘해라.” 상경 직후에는 두 시간마다 전화를 받았다. “뭐 하니, 어디니?” 한 달 동안 기숙사에 일찍 들어가고, 연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야 일주일 서너 통화로 줄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는 “몸 함부로 굴리면 안 되는 거 알지?”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을 들었다. 연락도 부쩍 늘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얀 거짓말을 시작했다. 학교 주변에서 데이트할 때는 “도서관에서 공부 중”이라 했고, 한참 노는 중일 때도 “곧 집에 갈 거야”라고 말했다. 남자친구를 그냥 친구로 둔갑시키는 것도 흔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엄마는 내가 항상 일찍 집에 들어가고, 남자친구와 자주 만나지도 않는 줄 알았다. 같이 살지 않으니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덕분이었다. 언니는 밤늦게 남자친구랑 있거나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고 애써 숨기는 법이 없었다. 언니 성격도 그렇지만 워낙 작은 중소도시라 거짓말은 들키기도 쉬웠다. 그러니 엄마는 언니에게 일장연설하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나도 언니의 가출이 탐탁지는 않다. 나도 동생도 없는 집에서 갱년기인 엄마를 챙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언니 아닌가 싶어서다. 생각보다 엄마는 언니의 가출을 싱겁게 받아들였다. 언니는 “욕하고 소리치고 장난 아니었어”라고 했지만, 내게 분노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고 동생도 모르는 눈치였다. 가족 채팅방에서 엄마는 태연히 “맥주 한잔 하고 싶다. 시골집으로 맥주 한 병 사와라”라고 언니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물론 언니는 “나 벌써 친구들이랑 한잔했는데 ㅋㅋㅋ”라며 응하지 않았지만. 미안해진 언니가 “맥주가 아니라 나 보고 싶은 거지?”라며 장난을 치자 엄마도 응수했다. “아니, 치킨집에 시켰어. 안 와도 돼”라고. 가출한 언니의 동생
언니에게 “어디냐”는 문자
안 받으면 20통씩 부재중전화
하다 하다 안되면 나에게 연락 애인 데려온 언니 동거 암시에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딸 둘 데리고 순결 일장연설
가출 소식에 난리가 났지만… 언니는 ‘엄마의 집착’을 탓했다. 엄마는 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집에서 자라.” 엄마가 가게로 출근한 뒤인 아침 10시에도 문자가 왔다. “어디서 잤니?” 화장실에 씻고 난 흔적이 없거나, 언니 방에서 옷을 갈아입은 흔적이 없으면 엄마는 언니가 집에서 자지 않았다고 의심부터 했다. 두 달 전 고향집에 갔을 때도 엄마는 내게 물었다. “이 지지배 안 들어왔냐? 씻은 자국이 없는데?”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같이 잤지. 야식 먹고 늦게 일어나서 아침에 후다닥 튀어나갔어.” 엄마는 항상 두 딸의 외박에 민감해했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수련회나 친척 집이 아니고서는 집밖에서 자본 일이 없었다. 연년생인 남동생은 그전부터 친구 집이든 찜질방이든 잘만 자고 다녔다. 지금도 엄마는 저녁마다 ‘어디’라는 두 글자를 찍어 보낸다. 취침 전 전화를 걸 때면 “집이니?”라는 물음이 첫번째다. 이 정도에서 끝났다면 언니는 “엄마가 나한테 너무 집착해”라고 말하진 않았을 거다. 엄마가 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은 1년 전부터다. 엄마는 주말이면 2시간 간격으로 언니에게 “어디냐”는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안 받으면 20통씩 부재중전화를 남기기도 했다. 전화를 하다 하다 안 받아 울화통이 치밀면 내게 전화를 할 때도 있었다. “이 연놈들이 뭘 하길래 전화도 안 받고….” 그런 전화는 항상 이렇게 시작했다. 그때쯤 언니에겐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 사귄 지 한 달도 안 돼서 언니는 결혼할 거라며 엄마에게 애인을 소개했다. 엄마는 탐탁해하지 않았다. 더 사귀어본 다음에 결정하라 했다. 그리고 6개월 뒤 언니는 “어차피 결혼할 건데 같이 살다 식 올리면 안 돼?”라고 물었다. 엄마는 “개소리”하지 말라며 눈을 치켜떴다. 아마 이때부터 엄마는 언니를 더 예의주시했을 터다. 엄마의 이런 ‘집착’에 언니가 폭발한 때도 있었다. “내가 밖에 나가면 뭐 나쁜 짓 하고 돌아다녀? 내 나이가 애 배서 결혼하는 게 남사스러울 때도 아냐. 내 친구들 다 그렇게 결혼해. 어디서 뭐 하고 다니는지는 왜 그렇게 캐묻는 거야. 정말.” 전화를 받자마자 격앙된 목소리가 내게 쏟아졌다. 세태는 변했지만 엄마에겐 통하지 않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런 꼴은 못 봐”라는 것이 엄마의 입장이었다. 세상 어느 엄마가 딸이 결혼 전에 임신부터 한 모습을 보고 싶겠냐는 것이다. 엄마는 여느 보수적인 어른들처럼 여성의 순결주의를 강조했다. 내가 상경할 때도 딱 한마디 했다. “몸 간수 잘해라.” 상경 직후에는 두 시간마다 전화를 받았다. “뭐 하니, 어디니?” 한 달 동안 기숙사에 일찍 들어가고, 연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야 일주일 서너 통화로 줄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는 “몸 함부로 굴리면 안 되는 거 알지?”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을 들었다. 연락도 부쩍 늘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얀 거짓말을 시작했다. 학교 주변에서 데이트할 때는 “도서관에서 공부 중”이라 했고, 한참 노는 중일 때도 “곧 집에 갈 거야”라고 말했다. 남자친구를 그냥 친구로 둔갑시키는 것도 흔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엄마는 내가 항상 일찍 집에 들어가고, 남자친구와 자주 만나지도 않는 줄 알았다. 같이 살지 않으니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덕분이었다. 언니는 밤늦게 남자친구랑 있거나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고 애써 숨기는 법이 없었다. 언니 성격도 그렇지만 워낙 작은 중소도시라 거짓말은 들키기도 쉬웠다. 그러니 엄마는 언니에게 일장연설하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나도 언니의 가출이 탐탁지는 않다. 나도 동생도 없는 집에서 갱년기인 엄마를 챙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언니 아닌가 싶어서다. 생각보다 엄마는 언니의 가출을 싱겁게 받아들였다. 언니는 “욕하고 소리치고 장난 아니었어”라고 했지만, 내게 분노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고 동생도 모르는 눈치였다. 가족 채팅방에서 엄마는 태연히 “맥주 한잔 하고 싶다. 시골집으로 맥주 한 병 사와라”라고 언니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물론 언니는 “나 벌써 친구들이랑 한잔했는데 ㅋㅋㅋ”라며 응하지 않았지만. 미안해진 언니가 “맥주가 아니라 나 보고 싶은 거지?”라며 장난을 치자 엄마도 응수했다. “아니, 치킨집에 시켰어. 안 와도 돼”라고. 가출한 언니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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