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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적응자 수용소’는 또 다른 암흑시대 신호탄

등록 2014-08-15 18:37수정 2014-08-16 10:44

선임병의 구타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이 밝혀진 직후인 지난 8월8일 전군의 각급 부대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특별지시로 전 장병이 참여하는 특별인권교육을 실시했다. 사진은 육군 30기계화 보병사단 장교와 병사들의 교육 모습. 일시적 인권교육을 넘어, 군이 나서서 사람을 구별하고 나누고 격리시키는 도덕의 임계상황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사진공동취재단
선임병의 구타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이 밝혀진 직후인 지난 8월8일 전군의 각급 부대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특별지시로 전 장병이 참여하는 특별인권교육을 실시했다. 사진은 육군 30기계화 보병사단 장교와 병사들의 교육 모습. 일시적 인권교육을 넘어, 군이 나서서 사람을 구별하고 나누고 격리시키는 도덕의 임계상황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사진공동취재단
[토요판] 군사
병사들의 왕국, 관심병사의 허상
▶ 올해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을 시작으로 28사단 윤 일병 살해사건, 잇따른 ‘관심병사’들의 자살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진짜 사나이>의 판타지에 가려져 있던 군대 병영생활의 맨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1970년대에도 없었다는 일이 지금 발생하는 것일까요? 지금 군대 내무반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성인 남성 대부분이 군대를 다녀왔지만 우리는 그동안 군대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었습니다.

육군의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 참여한 필자는 최근 전방 부대를 방문하면서 병사들 사이에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뜻밖에도 병사들에게 계급은 그리 절대적인 인간관계의 기준이 아니었다. 이병-일병-상병-병장-하사로 구성된 위계서열은 병영 안에서의 형식적인 구분일 뿐이다. 휴가를 나가면 이 서열은 나이순으로 바뀐다. 예컨대 나이가 어린 병장이 나이가 많은 상병을 “형”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다. 윤 일병 살해 사건이 벌어진 28사단의 한 의무대에서 방조자인 유 하사는 가해자인 이 병장을 사석에서 형으로 불렀다고 수사기록은 밝히고 있다. 필자는 이게 어쩌다 있는 특별한 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당히 많은 부대에서 보이는 일반화된 현상이다. 그런 사적 관계가 병영의 공적 관계와 공존하면서 병사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재구성한다. 병사들이 그들의 헌법으로 통치하는 독자적인 왕국,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고위 간부들은 그런 내막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나중에 알더라도 묵인한다.

놀랄 만큼 합리적인 이 관습헌법 제1조는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무임승차자’에게 나누어 줄 파이는 없다”는 것. 과중한 임무와 잡다한 일로 휴식이 모자라는 병사들에게는 대답이 느리고 행동이 굼떠서 동료들에게 짐이 되는 낙오자를 배려할 만한 잉여자원이 없다. 누구나 고되고 피곤한 병영에서 자기 할 일을 못하면서 똑같이 혜택을 누린다면 “거저먹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렇게 ‘날로 먹는’ 개인에 대해 관습헌법 제2조는 “공동체는 개인을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금 20대들에게 일반화된 하위문화로서 ‘왕따’가 등장한다. 마치 없는 개인인 것처럼 투명인간 취급(기수열외)을 하거나 집단이 한 사람을 처벌한다. 이 점이 40, 50대 기성세대들이 가장 놀라는 대목이다.

병사들이 그들의 헌법으로
통치하는 독자적인 왕국
우리가 모르는 또다른 세계
그들만의 관습헌법 제1조는
“어디서 거저먹으려고?”

정신이상자, 부적응 나약자 등
수용하는 군부대 ‘그린 캠프’
사적 처벌 위험성 완화시키는
합리적인 조처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도덕성 문제 불거질라

‘구타 유발자’ 존재에 대한 암묵적 동의

기성세대가 군대 생활을 한 80, 90년대에는 그래도 군에 ‘연대 책임’이라는 게 있었다. 이 시절에 한 명이 잘못을 하면 선임병이 여러 명의 후임을 세워놓고 두들겨 팼다. 여기에는 위험이 있다. 후임이 집단으로 반발하면 때리는 선임병 한 명이 거꾸로 당할 수도 있다. 고참은 그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비로소 권위를 세우게 된다. 지금은 선임병 여럿이 후임병 한 명을 두들겨 팬다. 이건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우선 간부들에게 들킬 위험이 적다. 폭행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자기 잘못도 아닌데 같이 얻어맞는 부당함이 없다. 때리는 자는 반발에 직면할 위험도 없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과거 병영의 ‘연대 책임’이라는 집단의 원리가 ‘개인 책임’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해병 2사단 총기난사 사건에서 드러난 기수열외, 올해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에서 드러난 집단무시, 그리고 28사단 윤 일병 살해사건의 공통점은 집단이 한 개인을 처벌한다는 점이다.

가장 감탄을 자아내는 관습헌법 3조는 “모든 잡일에는 반드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금 20대 병사들은 풀을 베는 낫질이나 땅을 파는 삽질이 뭔지 모른다. 전방에는 무수한 잡일이 널려 있다. 누군가는 시설을 복구하고 풀을 베야 한다. 그냥 일을 시키면 안 된다. 반드시 “그 일을 하면 무슨 혜택이 있다”는 걸 설명해주어야 제대로 일이 된다. 교육이나 임무를 감면시켜 준다든지, 아니면 다른 휴식을 보장하다든지 뭔 보상이라도 있어야지 “왜 나만 고생하는가?”라는 반발을 무마할 수 있다.

지휘관들은 20대가 남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고 국가관도 없는 개인주의자들이라고 개탄하지만 그건 헛소리다. 20대 병사들은 ‘일과 보상’이라는 분명한 합리성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애국심을 강조하면 병사들은 속으로 비웃는다. 최근 병사들에게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고 피시방 이용도 활성화하며 지오피(GOP·일반전초)에서 면회도 허용하는 등 더 많은 혜택을 주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대책이다. 그보다는 병영이 일한 만큼 보상받고 거저먹는 사람이 배제되는 분명한 합리성을 요구한다. 이런 병사의 요구를 잘 조정하는 지휘관이 바로 능력 있는 지휘관이다. 이렇게 병영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시점은 국제구제금융 사태(IMF 사태) 이후 대학을 다닌 세대가 군에 입대하는 2000년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오직 경쟁과 생존이라는 전쟁에 내몰린 신자유주의 시대의 젊은이들은 모든 서열이 수능점수표로 판가름 난다. 이 시절에 집단성, 도덕성은 제거되고 그 자리를 개인의 능력과 학력에 따른 새로운 차별에 의한 서열이 차지했다. 병영에 새로운 왕국이 탄생하는 혁명이 일어나고 새로운 헌법이 선포되었다.

여기서 병사들과 간부, 심지어 고위 군 지휘관까지 관통하는 공통의 인식이 발견된다.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하는 피해 병사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이다. 이것은 병사와 간부 사이에 체결된 일종의 정서적 공감대이자 최소한의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이유가 없는 구타는 없다. 반드시 병영 내에는 ‘구타 유발자’가 존재한다고 본다. 필자가 만난 한 군단장은 “구타는 잘못되었지만 구타를 유발하는 요인은 분명히 있다”며 “그 요인을 제거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 구타 유발 요인은 조직이 요구하는 과업에 따라오지 못하는 낙오자의 행태를 말한다. 이렇게 집단의 가치를 우선시하다 보면 비록 한 개인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한 행위 자체는 잘못이지만 목표를 달성하려는 집단의 속성 자체는 잘못이 없다. 병사들의 관습헌법이 묵인되는 이유다.

히틀러의 게토가 우리에게 던지는 것

이러한 합리성에 대한 예찬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그 도덕성에 있다. 히틀러는 근대 서구의 합리주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진아, 정신병자, 장애인을 살해했다. 우선 경제적으로 피폐한 독일이 그런 낙오자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는 것이고, 이들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잠식하는 국가의 오염원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유대인에 대한 정책도 매우 합리적이었다. 애초부터 유대인을 집단학살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첫번째 유대인 정책은 독일 밖으로 ‘추방’이었고 두번째 유대인 정책은 게토라고 불리는 수용소, 즉 ‘수용’이었다. 그나마도 유대인 수가 너무 많아 수용이 곤란해지자 아프리카의 섬 마다가스카르에 유대인을 이주시켜 자기네들끼리 살게 하려고 했다. 그 많은 유대인을 운송할 배가 없었다. 그래서 세번째로 나온 ‘최종해결책’이 있다. 가스실로 보내는 것이다. 이 정책은 여러모로 합리적이었다. 우선 가스실로 들어가는 유대인은 자기가 죽으러 가는지 모른다. 둘째로 죽은 뒤에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 위생적이고 편리하다. 그러므로 가스실은 유대인에 대한 배려라고 인식될 수 있었고, 독일 국민들에게 도덕적 책임감도 느끼지 않도록 해주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를 수행하는 수용소의 관리들에게는 전혀 죄책감이 없다. 그저 국가의 행정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이것이 얼마나 합리적인가는 그 집행 과정에서 나타났다. 가스실로 끌려가는 유대인 그 누구도 저항하지 않았던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춰 들어가 자신의 죽음 후에 시체 처리까지 배려하는 것처럼 가지런히 서서 죽음을 맞이한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국가가 이런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걸 전쟁이 끝날 때까지 까맣게 몰랐다.

히틀러의 유대인 정책은 여러모로 합리적이지만 도덕적이지 않다. 인간을 지배자와 복종자,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양분하였기 때문이다. 배제와 차별이 한번만 정당화되면 그다음엔 ‘합리적 처리 과정’이 저절로 따라온다. 도덕적인 문제는 이미 그 이전에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집행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병영문화에 대한 국방부의 각종 대책을 보면 일단 병영 내에서 차별을 묵인하면서 그 이후 처리 과정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개선할 것인가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신이상자, 부적응자, 나약한 자, 우울증 환자, 자살 기도자 등을 수용하는 ‘그린 캠프’가 그것이다. 지금은 물러난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은 최근 사단 단위에서 운영되던 비전 캠프를 폐지하고 군단 단위에서 이들을 수용하는 그린 캠프를 만들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 조처는 여러모로 합리적이었다. 우선 일선에서 관심병사 처리에 전전긍긍하던 지휘관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병사들끼리의 사적 처벌 위험성도 완화해준다.

이 캠프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지휘관과 본인의 동의가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게다가 각종 심리치료와 체력단련을 담당하는 상담사, 치료사들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사실 이 캠프에 들어오는 인원들 대다수는 군대는커녕 사회 적응도 어려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심각한 병사가 어떻게 군에 입대했는지 믿기지도 않는다. 이걸 군대가 치료해 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캠프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덕적 과제를 제시한다. 이 캠프에 입소하는 순간 비정상인으로 분류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명확해진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린 캠프에서는 정상인으로 상당한 치료 효과를 거두고 막상 자대로 복귀하면 다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가 있다. 캠프에 입소했었다는 그 사실이 비정상인으로 낙인을 찍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방문한 모 군단의 경우는 그린 캠프 입소자의 50% 정도가 현역 부적응자로 처리되어 제대하고 있었다. 비정상인들의 수용소까지 운영해야만 하는 군의 지휘관들은 사회에 대해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질이 낮은 병사’들을 군에 대거 유입시켜 자신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질이 낮은’이라는 그 용어가 마음에 걸린다. 사람의 질을 평가하는 일률적 기준이라는 게 있는지, 생명의 가치에도 등급이 있는지, 자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서 치료를 담당하는 상담사들에게는 대략 월 160만원의 보수가 주어지고 일선 부대의 관심병사 상담까지 추가로 떠맡긴다. 문제는 산악이 많고 이동거리가 먼 일선 부대를 돌아다니는데 차량을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이 자비로 지출하는 월 유류비가 80만원이다. 이런 상담사가 1개 사단에 4명 정도 배치되어 있다. 그 인력의 부족과 열악한 처우를 고려하면 상담과 치료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고 믿기에는 회의적이다. 그보다는 비정상인을 정상인들로부터 격리한다는 수용 개념이 아직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그린 캠프’는 치료소 역할을 해낼까

전체주의 국가일수록 비정상인에 대한 수용소가 잘 발전되어 있다. 우리 군에 최근 이런 수용의 공간이 확대되고 있는 건 어떤 면에서 군에 새로운 도덕성의 문제가 불거지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거의 모든 20대가 군에 입대해야 하는 징병의 현실에서 군이 나서서 사람을 구별하고 나누고 격리하는 그런 행태를 어쩔 수 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도덕의 임계상황이 닥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타와 가혹행위 건수는 줄어들었지만 그 수법은 매우 교활하고 은밀하게 진화하고 있다. 다수가 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처벌의 메커니즘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에 대한 저항으로 각종 총기사고와 자살의 형태로 구체화되면 이제껏 우리가 몰랐던 암흑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게 된다. 그러나 굉장히 합리적인 왕국이라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한국 징병제에서 이 악마는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나친 경쟁과 이기심에 서식하며 치사율 높은 그런 형태로의 진화다. 여기에는 과연 어떤 도덕의 백신이 있을까? 우리는 저 왕국을 전복시킬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 이런 도덕의 질문에 이제는 우리가 답변을 해야 한다.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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