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경기도 과천 서울동물원 인공포육장에서 지난해 1월17일 태어난 새끼 오랑우탄이 자신을 촬영하는 기자를 구경하고 있다. ‘잡종’인 오랑우탄 어미인 보미가 폐사한 뒤 사육사들이 기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서울동물원, 실패한 혈통관리
서울동물원, 실패한 혈통관리
▶ 아시아에서만 사는 유인원, 오랑우탄은 ‘보르네오오랑우탄’과 ‘수마트라오랑우탄’ 두 종으로 나뉩니다. 수마트라오랑우탄이 털색이 더 밝고 털이 길고요. 얼굴이 가늘어 날씬한 느낌입니다. 보르네오오랑우탄의 털색은 진하고요. 현대보전생물학은 야생에서의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아종마다 따로 보존·관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종 보전기관인 서울동물원에서 잡종인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서울동물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지난달 6일 경기도 과천 서울동물원 인공포육장에는 수컷 새끼인 오랑우탄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지난해 1월17일 서울동물원에서 출생한 오랑우탄의 이름은 아직 붙이지 않았다. 사육사를 어미로 아는 오랑우탄은 오가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다 천장에 매달린 그네를 타며 장난을 쳤다. 까만 눈동자로 가득 찬 오랑우탄의 영롱한 눈빛은 깊고 투명했다.
처음부터 어미가 새끼를 돌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7월 서울동물원은 새끼의 어미인 오랑우탄 ‘보미’가 훈련 끝에 직접 새끼 돌보기에 성공한 것을 자축하며 이 둘을 이달의 동물로 삼아 홍보했다. 그러나 결국 보미는 새끼를 품지 못하고 떠났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많은 동물이 그렇듯 보미는 자기 새끼를 돌보는 것을 낯설어했다. 새끼에게 물릴 젖도 돌지 않았다. 이달의 동물로 소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미는 심장질환으로 폐사했다. 보미와 새끼는 순종 오랑우탄이 아닌 ‘보르네오오랑우탄’과 ‘수마트라오랑우탄’의 잡종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종 보전 기관인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잡종 오랑우탄 소식은 드러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보미와 새끼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서울동물원 오랑우탄 중 순종인
보석과 보라 사이 새끼 얻으려
임신계획 세웠는데 엉뚱하게도
잡종 오랑우탄인 보미가 임신
새끼 낳고 얼마 있다 죽음 맞아
보라는 불임 가능성이 높아서
보석의 새로운 짝 찾아줄 계획
쥬쥬동물원 오랑이가 유력 후보
외국 동물원서 짝 데려올 수도
2012년 보미는 9살이었다. 동물원은 잡종인 보미보다 다른 순종 오랑우탄의 임신에 관심이 있었다. 보석(수컷·10살 추정)과 보라(암컷·11살 추정)는 동물원에 있는 유일한 보르네오오랑우탄 순종 한 쌍이었다. 2005년과 2004년 각각 세관에서 압수된 개체로 동물원에서 출생하지 않은 유일한 개체이기도 했다. 동물원이 기대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혈연관계가 아니었던 보라와 보석이 번식을 해 보르네오오랑우탄의 종을 보전하는 것이었다. 오랑우탄은 보통 야생에서는 15살 내외에 성성숙이 이뤄지는데 야생 개체보다 먹이 공급에 어려움이 없는 동물원 개체의 경우 더 이른 나이에도 가능하다. 보통 임신 기간은 8~9개월이다. 하지만 정작 임신한 것은 잡종 보미였다. 호르몬 및 혈통 연구를 하고 있는 서울동물원 동물연구실의 정소영 박사는 말했다. “오랑우탄 암컷의 임신 가능일을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22~30일 주기로 배란을 하지만 침팬지처럼 음부가 커지거나 사람처럼 하혈을 하지 않거든요. 보라 대신 보미가 임신을 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동물원 측은 보미의 임신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래 오랑우탄끼리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보미와 보라, 보석을 합사한 것일 뿐이고, 보미가 가임기였는지도 잘 몰랐다고 해명했다. 동시에 서울동물원은 보라의 몸 상태가 특별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 박사는 에스트라디올(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하나)과 프로게스테론(동물 난소 안에 있는 황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생식주기에 영향을 주는 여성호르몬) 수치가 그려진 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보라는 여성호르몬 수치가 낮아서 불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어요. 2006년 4~5살 때는 그나마 임신이 가능한 여성호르몬이 조금씩은 나왔는데 점점 떨어졌어요. 지난해부터는 이 수치가 0에 가까워요.”
동물원은 보라의 불임 가능성을 보라 스스로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서울동물원에서 다른 오랑우탄들이 번식을 잘 해온 것을 볼 때 번식이 불가능한 환경은 아니라는 분석이었다.
보미는 어쩌다 잡종이 되었을까. 서울동물원이 제공한 ‘오랑우탄 혈통도’를 보면 1970년대 창경원에는 오랑우탄 4마리가 사육되었다. 이들은 모두 서울동물원 개원 전에 폐사했다. 이후 1984년 서울동물원 개원을 전후로 10마리의 오랑우탄이 외국에서 들어왔다. 수입한 대부분의 오랑우탄은 보르네오오랑우탄과 수마트라오랑우탄의 잡종이었다.
순종과 잡종의 구분이 없던 시절이었다. 1996년에야 학계는 미토콘드리아디엔에이(mtDNA) 연구를 통해 둘이 서로 다른 종임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약 150만~170만년 전에 두 종이 분리됐으며 그 결과 두 종은 침팬지와 보노보보다 더 먼 사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보미의 엄마인 잡종 오순이(1977년생)도 아종을 구분하기 전인 1983년 11월 수입됐다. 잡종 오순이의 번식력은 매우 강했다. 오순이는 동물원에서만 6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같은 시기에 서울동물원에 들어온 잡종 레지(수컷·1969~2011)와의 사이에서 3마리를, 2002년 5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들여온 보르네오오랑우탄 순종 ‘아롱이’(수컷·1984년생·폐사)와의 사이에서 3마리를 더 낳았다. 오순이는 잡종이므로, 그가 낳은 새끼는 모두 잡종이 됐다. 오순이가 낳은 보미(암컷·2003~2013), 보람(수컷·2005년생), 백석(수컷·2009년생)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동물원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순종과 잡종을 가려낸 것은 2006년의 일이었다. 2009년에 태어난 백석이와 지난해 태어난 보미의 새끼까지, 2마리의 잡종 오랑우탄이 2006년 이후 서울동물원에서 태어났다.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잡종의 경우, 번식을 막기 위해 피임을 시키는 게 원칙이다. 일본 교토대학교 영장류연구소에서 오랑우탄을 연구중인 김예나(30) 박사과정 연구원은 “연구소도 잡종 암컷에게 평생 피임약을 먹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종 보전을 위한 노력을 설명했다. 서울동물원은 잡종의 피임을 하지 않았다. 잡종의 임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지만, 임신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 이면에는 번식은 곧 동물자원의 확보라는 동물원의 기본 인식이 깔려 있다. 동물원의 동물을 자원으로 보는 이상 번식은 동물원에서 중요한 목적이다. 국내 오랑우탄 혈통 관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은 없었다.
서울동물원은 오랑우탄 혈통을 바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보르네오오랑우탄의 종 보전 계획을 수립중이다. 지난해 10월31일~11월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영장류의 합리적인 종 보전을 위한 회의’에 참석해 근친교배와 잡종의 출산을 막기 위한 제도 등을 논의했다. 서울동물원 동물연구실 어경연 실장이 말했다. “솔직히 최근까지 동물들 혈통 관리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보르네오오랑우탄 보석이의 순수혈통을 잘 이어간다면, 외국에서 비싼 돈 주고 순종을 들여올 필요가 없어요. 또 실제로 순종을 번식해가다 보면 야생 서식지에 사는 순종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동물원에서 지켜온 순종을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고요. 종 보전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겠죠.”
서울동물원은 보라가 임신이 불가능할 경우 보석의 새 짝을 찾을 계획이다. 유전자 검사 결과 순종으로 밝혀진 경기도 고양시 테마동물원 쥬쥬에 사는 오랑우탄 ‘오랑이’가 유력한 후보다. 하지만 오랑이가 임신이 불가능할 경우 외국 동물원에서 보르네오오랑우탄 순종을 들여와 번식시킬 계획이다. ‘브리딩론’이라 부르는 방식으로, 동물원끼리 새끼를 나눠서 기르는 일종의 교환체계다.
최근 들어 확산된 동물보호론에 대항하면서 선진 동물원들은 ‘종 보전 기관’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켜왔다. 영국 포트림동물원이 고릴라 9마리를 원서식지인 아프리카 가봉으로 돌려보내는 등 선진 동물원들은 동물 번식의 목적을 ‘전시’에서 ‘멸종위기종 연구와 방사’로 바꾸고 있다. 이항 서울대학교 교수(수의학)는 “순종 멸종위기종을 번식시키는 것은 종 보전 차원에서 바람직하지만, 잡종의 교배는 동물자원을 확보하려는 수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서울동물원 오랑우탄 중 순종인
보석과 보라 사이 새끼 얻으려
임신계획 세웠는데 엉뚱하게도
잡종 오랑우탄인 보미가 임신
새끼 낳고 얼마 있다 죽음 맞아
보라는 불임 가능성이 높아서
보석의 새로운 짝 찾아줄 계획
쥬쥬동물원 오랑이가 유력 후보
외국 동물원서 짝 데려올 수도
2012년 보미는 9살이었다. 동물원은 잡종인 보미보다 다른 순종 오랑우탄의 임신에 관심이 있었다. 보석(수컷·10살 추정)과 보라(암컷·11살 추정)는 동물원에 있는 유일한 보르네오오랑우탄 순종 한 쌍이었다. 2005년과 2004년 각각 세관에서 압수된 개체로 동물원에서 출생하지 않은 유일한 개체이기도 했다. 동물원이 기대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혈연관계가 아니었던 보라와 보석이 번식을 해 보르네오오랑우탄의 종을 보전하는 것이었다. 오랑우탄은 보통 야생에서는 15살 내외에 성성숙이 이뤄지는데 야생 개체보다 먹이 공급에 어려움이 없는 동물원 개체의 경우 더 이른 나이에도 가능하다. 보통 임신 기간은 8~9개월이다. 하지만 정작 임신한 것은 잡종 보미였다. 호르몬 및 혈통 연구를 하고 있는 서울동물원 동물연구실의 정소영 박사는 말했다. “오랑우탄 암컷의 임신 가능일을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22~30일 주기로 배란을 하지만 침팬지처럼 음부가 커지거나 사람처럼 하혈을 하지 않거든요. 보라 대신 보미가 임신을 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동물원 측은 보미의 임신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래 오랑우탄끼리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보미와 보라, 보석을 합사한 것일 뿐이고, 보미가 가임기였는지도 잘 몰랐다고 해명했다. 동시에 서울동물원은 보라의 몸 상태가 특별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 박사는 에스트라디올(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하나)과 프로게스테론(동물 난소 안에 있는 황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생식주기에 영향을 주는 여성호르몬) 수치가 그려진 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보라는 여성호르몬 수치가 낮아서 불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어요. 2006년 4~5살 때는 그나마 임신이 가능한 여성호르몬이 조금씩은 나왔는데 점점 떨어졌어요. 지난해부터는 이 수치가 0에 가까워요.”
서울동물원 오랑우탄 실내사육장에서 비닐포대를 뒤집어쓴 보라(암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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