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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터키판 이한열’은 한국산 최루탄에 맞았다

등록 2014-03-14 19:21수정 2014-03-18 14:19

[토요판] 군사
방위산업 수출의 실체
▶ 최근 터키에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9개월째 생사를 넘나들던 15살 소년이 끝내 사망했습니다. 문제의 최루탄을 터키에 수출한 나라는 마침 한국이었습니다. 터키 시위 현장에 나가 있던 영국 교원노조 활동가들은 이런 사실을 이유로 들어 한국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무기 수출 목표액까지 정해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무기 수출 정책을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망원동에 있는 평화운동단체 ‘전쟁 없는 세상’의 활동가들은 영국의 평화운동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이 메일에는 “한국산 최루탄이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대에 무차별로 발포되어 시민이 사망하고 있다”는 뜻밖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11년 아랍의 봄과 맞물려 중동의 왕정국가인 바레인에서는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3년째 지속되고 있다. 단지 시위 해산만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쏘아대는 최루탄은 사실상의 살상무기였다. 이 단체의 활동가인 여옥씨는 필자에게 “지난 3년간 바레인에서 최루탄으로 인한 사망자가 39명이나 발생하여 한국산 최루탄은 이미 시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라는 점을 바레인 현지 활동가들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각 이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에 착수한 시민단체들은 지난 3년간 한국의 한 생산업체가 총 150만발을 바레인에 수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정부에 수출 중단을 촉구했다. 우선 인구가 120만명에 불과한 이 작은 나라에 이렇게 많은 최루탄이 정부의 별다른 규제도 받지 않고 수출되었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까지 수출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한 채 방치하고 있었다. 국제 인권단체인 ‘바레인 워치’와 국내 평화운동단체로부터 비난이 빗발치자 올해 1월에야 방사청은 최루탄 수출을 보류하기로 하였다. 마침 바레인 정부로부터 160만발의 추가 주문이 발주된 상황에서 그나마 추가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최루탄 수출 현황 모르는 방위사업청

군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최루탄의 수출은 방위사업법 53조에 따라 방위사업청이 허가를 결정하는 주무 관청이다. 해당 업체 등은 민수용 최루탄 수출은 방위사업법 관련 사항이 아니라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9조에 따라 제조업체가 지방경찰청장 허가를 받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얼마든지 군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최루탄은 개인이 소비할 수 없는 위험물질이고, 독재국가가 인권을 유린하는 데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방산물자라는 점에서 방위사업청이 아무런 사전 조처나 감독이 없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시민단체의 이런 주장을 방사청이 수용하면서 바레인 수출은 제동이 걸렸지만 그 외의 다른 국가에 얼마나 더 수출되었는지는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마침 이 기사를 작성하는 12일에 터키에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9개월째 사경을 헤매던 15살 소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언론은 이를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사망한 사건에 빗대 ‘터키판 이한열’이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최루탄 공급자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점은 보도에서 누락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5월에 터키 시위 현장에 나가 있던 영국 교원노조 활동가들은 “터키 시위 현장에 대량으로 공급된 최루탄은 한국산”이라고 밝히며, 그 생산업체에 “(최루탄으로) 벌써 5명이나 죽었다. 도의적 책임을 느끼라”는 항의서한을 보내기까지 했다. 외국 활동가들은 “독재정권의 폭력적인 진압에 살인무기로 사용되는 최루탄을 수출한 데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단체들은 현장에서 수거된 한국산 최루탄 DK-500의 위험성과 그 파편, 부상자 사진 등을 유포하며 한국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을 조직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암암리에 수출되는 한국산 최루탄은 이미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다. 1990년대에는 동티모르 독립을 주장하는 시위에 한국산 최루탄이 대량으로 공급되었고, 이스라엘에도 수출되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민중을 탄압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해외에 수출되는 최루탄은 발사대에 따라 38㎜와 40㎜용이 있고, 과거에 국내에서는 ‘사과탄’으로 불리던 손으로 투척하는 수류탄 모양의 제품도 있다.

1980년대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최루탄 사업은 군사독재가 만들어낸 기형아였다. 1987년 당시 국내 독점 최루탄 생산업체인 영영화학은 한영자 사장이 소득세 납부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해 대선을 앞둔 시기에 전두환 대통령은 정호용 국방장관으로부터 “대선 자금을 기부하고 싶어하는 기업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참 기특한 기업이다. 잘 받아두라”고 지시하여 한 사장으로부터 100억원의 자금을 수수한 사실이 훗날 재판에서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이한열뿐만 아니라 계속 최루탄 파편으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하자 이 업체는 그 이후 최루탄 사업을 포기했다. 시위대와 시민 가리지 않고 퍼부어지던 최루탄이 야만적인 독재정권의 상징으로 인식되자 범국민적으로 최루탄 추방운동이 일어났다. 최루탄으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이 업체에 달려가 거세게 항의하자 한 사장은 “최루탄은 인체에 해가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자 화가 치민 어머니들이 “그렇게 해가 없다면 한 숟가락 떠먹어 보라”고 맞받아쳤다. 극단의 공포와 고통을 느끼게 하면서 살상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는 최루탄이 인체에 해가 없다는 데 더 화가 치민 것이다. 이에 한 사장이 사과하면서 이후 이 업체는 최루탄 사업을 포기했다. 지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 업체만이 사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 이 회사 누리집에 들어가 보면 대표자의 인사말 중에 “최루탄 제품은 이미 국내외 시장에서 그 품질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라는 개운치 않은 문구가 보인다.

최루탄 머리에 맞고 사경 헤매던
15살 터키 소년이 3일전 숨졌다
최루탄 수출은 시위 진압 장비와
독재정권의 시민 제압 노하우,
눈물·고통의 수출로 이어졌다

미국 정부가 무기 수출 제동 걸어
주요 장비 수출이 어려운 한국은
최루탄 등 비인도적 재래식 무기
독재정권·분쟁지역에 파는데
이런 방위산업이 창조경제라니…

‘방산 수출액 100억달러’라는 비현실적 목표

이렇게 보면 우리가 수출한 것은 단지 최루탄만이 아니다. 우리가 오래전에 느꼈던 눈물과 한숨과 고통도 함께 수출되었다. 최루탄이 수출되면 방패, 방독면과 같은 시위 진압 관련 장비들의 수출도 덩달아 늘어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부도덕한 권력이 효과적으로 시민을 제압하는 노하우까지 함께 수출되는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대표적으로는 인도네시아의 경우가 그러했다. 지금도 자료 화면으로 보면 1990년대 동티모르 독립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데 사용된 최루탄, 방패, 방독면뿐만 아니라 트럭, 소총, 심지어 군복까지 몽땅 한국제다. 1999년에 물러난 악명 높은 수하르토 정권은 한국의 총 방산물자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구매하는 초특급 고객이었다. 시민의 저항에 대한 권력의 적대감은 구체적으로 시위 현장에서 어떤 물리력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가에 따라 그 수준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의 경우 1980년대 한국의 시위 진압 노하우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지 구매 사절단이 한국에 와서 최루탄 성능을 체험하려 했다. 그러나 한국산 최루탄의 독성에 너무 놀란 나머지 “우리같이 더운 나라에서 이 제품을 사용하면 견디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라며 수입을 포기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점점 더 독하고 폭력적으로 시위대와 시민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뿌려지는 그 최루탄이 바로 한국에서는 독재의 종말을 앞당겼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과거를 우리는 지금 해외로 수출하는 중이다.

이런 전통이 있어서인지, 우리나라의 무기 수출은 어떤 규범이나 원칙도 없이 ‘돈이 된다면 많을수록 좋다’는 인식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2010년 10월 미래기획위원회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우리나라가 무기 수출 7대 국가에 진입한다’는 구상을 담은 국방산업 선진화 전략을 보고하였다. 이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방산수출 지원센터가 설립되었고, 방사청은 수출 실적을 부풀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자 했다. 방사청의 한 청장은 방위산업체가 당시 이라크에 민수용으로 수출한 트럭이 군용 트럭을 생산한 업체가 만든 제품이라는 이유로 방산제품으로 산입하고, 민간용 디지털카메라를 수출한 것까지 포함해 방산 수출액을 부풀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건 명백히 방위사업법에 지정된 방산물자 규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였다. 그런가 하면 수출 계약이 맺어진 단계에서 계약금만 수출액에 반영해야 하는데 총금액을 반영하여 당해 연도 수출액을 부풀리는 수치 조작도 이어졌다. 당시 국내 언론에 방산 수출 20억달러를 초과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되어 있는데, 이건 방사청이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한 조작된 수치였다. 그리고 방사청은 일절 그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부임한 청장은 아예 “방산 수출액 100억달러”라는 비현실적인 수출목표액까지 제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무기 수출이란 국가정책을 목표액까지 정해 대외에 공표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밖에 없다. 이런 수출 정책은 한국 기업에 전대미문의 비극으로 다가온다.

한국이 개발한 전차를 터키가 먼저 만든 이유

2008년 전차 강국인 독일을 따돌리고 한국이 터키에 전차 흑표(K-2)를 수출하게 되었다는 놀라운 뉴스가 터졌다. 개발중인 한국의 차기 전차가 어떻게 터키에 수출될 수 있었을까. 업체가 수출 마케팅을 하러 터키에 협상단을 보냈을 때 방위사업청의 한 간부가 이들과 동행하였다. 그는 현장에서 터키의 무리한 요구를 업체가 수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고, 그 결과 업체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감수하며 “무조건 수출”을 추진하게 된다. 이 계약은 한국이 터키에 전차 생산사업의 기술을 지원하되, 터키가 전차 사업에 실패하면 이를 몽땅 보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독소조항 때문에 우리는 국산 엔진과 변속기 개발이 늦어져 아직 전차를 양산하지 못하고 있지만, 터키는 우리 기술에다가 독일제 변속기와 엔진을 달아 벌써 전차가 운용되고 있다. 우리가 개발한 전차를 터키가 사용하고, 우리는 아직 양산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리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국가이익의 손실로 직결된 경우다.

무기 수출이라는 정책 목표가 공표되자 놀란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이때부터 한국에 대한 집중 감시에 들어간 미국 정부는 국산 무기에 미국 기술이 무단으로 사용되었다는 트집을 잡아 국내 업체의 연구개발에 제동을 걸며 사사건건 감시한다. 그 결과 2011년 공군 전투기에 부착된 센서 장비인 타이거 아이를 한국 공군이 미국 허락 없이 무단으로 분해해 기술을 탐지했다고 주장하며 미 국방부 수석차관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을 한국에 급파했다. 미국의 그런 압력은 전 방산업계로 파급되었다. 국내 한 방산업체가 파키스탄에 ALQ-200이라는 재밍 포드를 수출하기로 했다. 계약이 성사되자마자 미국 방산기술보안청은 “파키스탄은 중국 전투기를 사용하는 나라인데 어떻게 미국 기술이 활용된 센서 장비가 수출될 수 있느냐”며 한국 정부에 수출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다. 계약을 하고도 수출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진 틈을 타서 이번에는 미국 업체가 파키스탄에 유사 장비를 수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방산 기술의 종주국으로서 미국이 한국의 수출에 전면 제동을 건 것은 미 대사관의 ‘블루 랜턴’이라는 암호명의 기술보안 업무 수행의 산물이다. 최근 우리의 고등훈련기 T-50 수출이 일부 성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여전히 미국의 수출허가(E/L) 사항으로서 철저히 미국의 그늘 아래 종속되어 있다. 이 점에서 미국은 결코 동맹국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주요 장비를 수출하기 어려운 한국이 방산 수출을 하려면 중저가 재래식 장비 분야밖에 없는데, 이런 건 선진국에 수출할 수 없고 주로 분쟁지역이나 독재정권이 주요 고객이 된다.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로 꼽히는 확산탄(자탄이 공중으로 확산되어 폭발하는 포탄)은 파키스탄에 수출되었다. 가장 은밀하게 거래되는 권총과 같은 소형 무기류 수출에 한국은 세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 거래 투명성은 31위라고 국제 평화단체 ‘스몰 암스 서베이’는 2012년에 평가하였다. 결국 비인도적 무기 수출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무기 수출이 국가이익이라는 점에도 큰 기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런 재래식 무기 수출은 최루탄과 같이 국제적 비난이라는 국가의 짐만 키우는 중이다. 그런데도 최근 박근혜 정부는 방위산업을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얼 창조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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