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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러기 아빠의 속빈 강정 채우기

등록 2014-03-10 19:26수정 2014-08-28 17:31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우리는 절대 기러기 가족으로 살아가지 마요’라고 다짐을 했건만 둘째 출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렸다. 아내가 출산하고 산후조리까지 전주에서 하려면 적어도 두 달 이상 아내 없이 살아가야 한다. 아내 없이 살아가는 것이 과연 어떤 상황일까 가늠해보지 못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고 하니 몇몇 남자들은 “부럽다”, “생큐네”라며 다들 짧은 멘트를 날렸으나 정작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샴쌍둥이로 몇 년간 살아오다 몸 한쪽이 분리된 느낌이랄까. 마침 서귀포 새집으로 이사 오다 보니 집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절간 같다.

혼자 안방에서 자려고 하니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려서 밤에 문고리에다 옷을 걸어놓는다거나(옷이 떨어지면 누군가 침입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침 소리를 크게 내어보기도 했다. 적막감이 두려움으로 변하지 않도록 나름의 조치를 한 것인데 집이 익숙해져도 외로움은 남는다.

티브이를 마주하며 먹는 밥상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다시 그 밥상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특히 밥상에 올라갈 반찬을 정리하는 일은 귀찮고 또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여성농민회에서 생활꾸러미를 신청하여 두부와 달걀, 쌈 채소, 반찬을 조달하다 보니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몇몇 기러기 아빠 선배에게 물어보니 ‘가족과 함께여서 하지 못한 것을 이번 기회에 해보라’, ‘할 것이 없으면 둘째가 돌아왔을 때 필요한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준비하라’, ‘너의 삶을 살아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혼한 지 햇수로 6년이 지났다. 그간 ‘나의 삶=우리 가족의 삶’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늘 내 곁에는 아내와 딸아이 뽀뇨가 있었다. 가족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니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한 사람이며 ‘뽀뇨 아빠’ 이전에 누구였는지 한참을 생각해내야 했다. ‘가족과 함께여서 하지 못한 일은 무엇일까’, ‘평소에 하고 싶었으나 제약을 받은 일은 또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답변을 하고 나니 ‘아빠’라는 존재가 어찌 보면 속이 빈 강정 같은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재미없게 인생을 살았나 싶기도 하고 한 아이의 아빠로서 창피하기까지 하다. 결국 기러기 아빠로서 선택한 소소한 미션은 ‘제주에 살면서 절대 해볼 수 없는 것’으로 정했다. 다소 유치할 수 있지만 ‘제주 게스트하우스 체험’을 하기로 한 것이다. 경비가 적게 들면서도 여행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게스트하우스 체험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5년 전 제주로 이주하는 것이 꿈이었던’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베이비트리 필자 홍창욱 pporco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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